이사회 다양성 의무화에 성공한 나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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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를 갖고 만든 제도라도 상세한 법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 나스닥의 이사회 다양성 규정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충분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치며 규정위반 시 직접적 제재가 없는 대신 준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다. 곧 시행을 앞둔 노동이사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한경ESG] ESG와 법 ⑩
회사의 이사회가 특정 성별이나 인종의 이사로만 구성된 경우가 많다는 반성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가 이사회 내 다양성을 위해 일정 성별·인종의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거나 선임 현황을 공시하게 하는 법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별뿐 아니라 인종, 성소수자도 고려하는 내용의 입법을 통해 주목받아왔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캘리포니아주에 본사가 소재한 상장회사에 이사회 규모에 따라 1인에서 3인 이상 여성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법률(SB-826)을 통과시켰다. 이어 2020년에는 백인을 제외한 소수 인종과 성소수자 같은 소수 그룹 출신 이사를 이사회 규모에 따라 1인에서 3인 이상 선임하도록 하는 법률(AB-979)을 입법했다(2021년 말 시행).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도록 해 강제력도 확보했다.
그런데 지난 4월 1일 소수 그룹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AB-979가, 5월 13일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SB-826이 캘리포니아주 헌법에 위반된다는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1심 법원의 판결이 연달아 선고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AB-979나 SB-826처럼 특정 계층을 우대하는 입법에는 캘리포니아주 헌법 원리상 엄격 심사 기준(strict scrutiny test)이 적용되기에 이 기준에 따라 이러한 입법을 할 중대한 공익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며,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한의 차별 수단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원의 주된 논리다.
캘리포니아주 국무장관이 이 판결에 항소 의사를 표시했기에,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또 이 글에서는 앞선 판결이 캘리포니아주 헌법상 과연 타당한지 자세히 논의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좋은 의도를 갖고 만든 제도라 해도 상세한 법적 검토 없이 설계되는 경우 의도한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나스닥의 다른 접근 방법
이러한 점에서 나스닥의 이사회 다양성 관련 규정은 상당히 정교하다. 나스닥 규정도 상장회사로 하여금 여성 이사나 소수 인종 또는 성소수자 이사를 선임할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캘리포니아주법과 비슷하다. 다만 회사가 이를 위반해도 직접적 제재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고, 준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근래 들어 대부분의 연기금이나 기관투자자들은 이사회 다양성 문제를 의결권 행사 등에 반영할 것을 표명했기에, 이사회 다양성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회사들은 주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압박에 따라 별도의 제재가 없더라도 회사들이 관련 규정을 준수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논리다.
이 규정을 도입하면서 나스닥 시장 사무국과 감독기관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충분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쳤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나스닥은 이 규정안에 대한 200여 개 의견에 대해 일일이 검토한 뒤 입장을 밝혔다. 나스닥은 상세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사회 다양성 규정이 회사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회사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시장에 충분히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스닥의 이사회 다양성 규정은 지난해 8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노동이사제의 도입과 찬반론
근로자대표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이른바 노동이사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공동의사결정제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부터 광산·철강 기업에서 시행했고, 이제는 모든 산업으로 확대해 상시 근로자 규모에 따라 감독이사회 3분의 1이나 절반을 근로자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기업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8월부터 근로자대표를 비상임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노동이사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노사 간 정보 불균형 해소를 제도의 장점으로 든다. 노사갈등은 신뢰 부족에서 야기되는 경우가 많기에 노동이사를 통해 회사의 경영 상황이 근로자에게 상세히 알려지면 이러한 문제가 줄어든다고 본다. 주주 또는 채권자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회사에서 이탈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근로자들은 이직이 어렵고 현재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다른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도 어렵기에 근로자의 특유자산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채권자, 소비자, 협력업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 중 근로자에게만 경영 참여 기회를 줄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거나, 노동이사는 근로조건에만 관심을 둘 뿐 기업가치 증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노사갈등이 오히려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법 문화 차이 때문에 독일에서 잘 작동하는 노동이사제가 미국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노동이사제 도입 여부가 기업가치에 긍정적 영향도, 부정적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사 경영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보호 측면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회사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를 추진하는 데도 해당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다른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ESG 열풍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여러 제도가 추진되고 있는데,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현행 법체계하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법 제도가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별뿐 아니라 인종, 성소수자도 고려하는 내용의 입법을 통해 주목받아왔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캘리포니아주에 본사가 소재한 상장회사에 이사회 규모에 따라 1인에서 3인 이상 여성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법률(SB-826)을 통과시켰다. 이어 2020년에는 백인을 제외한 소수 인종과 성소수자 같은 소수 그룹 출신 이사를 이사회 규모에 따라 1인에서 3인 이상 선임하도록 하는 법률(AB-979)을 입법했다(2021년 말 시행).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도록 해 강제력도 확보했다.
그런데 지난 4월 1일 소수 그룹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AB-979가, 5월 13일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SB-826이 캘리포니아주 헌법에 위반된다는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1심 법원의 판결이 연달아 선고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AB-979나 SB-826처럼 특정 계층을 우대하는 입법에는 캘리포니아주 헌법 원리상 엄격 심사 기준(strict scrutiny test)이 적용되기에 이 기준에 따라 이러한 입법을 할 중대한 공익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며,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한의 차별 수단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원의 주된 논리다.
캘리포니아주 국무장관이 이 판결에 항소 의사를 표시했기에,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또 이 글에서는 앞선 판결이 캘리포니아주 헌법상 과연 타당한지 자세히 논의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좋은 의도를 갖고 만든 제도라 해도 상세한 법적 검토 없이 설계되는 경우 의도한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나스닥의 다른 접근 방법
이러한 점에서 나스닥의 이사회 다양성 관련 규정은 상당히 정교하다. 나스닥 규정도 상장회사로 하여금 여성 이사나 소수 인종 또는 성소수자 이사를 선임할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캘리포니아주법과 비슷하다. 다만 회사가 이를 위반해도 직접적 제재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고, 준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근래 들어 대부분의 연기금이나 기관투자자들은 이사회 다양성 문제를 의결권 행사 등에 반영할 것을 표명했기에, 이사회 다양성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회사들은 주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압박에 따라 별도의 제재가 없더라도 회사들이 관련 규정을 준수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논리다.
이 규정을 도입하면서 나스닥 시장 사무국과 감독기관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충분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쳤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나스닥은 이 규정안에 대한 200여 개 의견에 대해 일일이 검토한 뒤 입장을 밝혔다. 나스닥은 상세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사회 다양성 규정이 회사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회사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시장에 충분히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스닥의 이사회 다양성 규정은 지난해 8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노동이사제의 도입과 찬반론
근로자대표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이른바 노동이사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공동의사결정제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부터 광산·철강 기업에서 시행했고, 이제는 모든 산업으로 확대해 상시 근로자 규모에 따라 감독이사회 3분의 1이나 절반을 근로자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기업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8월부터 근로자대표를 비상임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노동이사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노사 간 정보 불균형 해소를 제도의 장점으로 든다. 노사갈등은 신뢰 부족에서 야기되는 경우가 많기에 노동이사를 통해 회사의 경영 상황이 근로자에게 상세히 알려지면 이러한 문제가 줄어든다고 본다. 주주 또는 채권자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회사에서 이탈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근로자들은 이직이 어렵고 현재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다른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도 어렵기에 근로자의 특유자산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채권자, 소비자, 협력업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 중 근로자에게만 경영 참여 기회를 줄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거나, 노동이사는 근로조건에만 관심을 둘 뿐 기업가치 증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노사갈등이 오히려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법 문화 차이 때문에 독일에서 잘 작동하는 노동이사제가 미국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노동이사제 도입 여부가 기업가치에 긍정적 영향도, 부정적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사 경영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보호 측면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회사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를 추진하는 데도 해당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다른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ESG 열풍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여러 제도가 추진되고 있는데,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현행 법체계하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법 제도가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