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인도네시아에서 끝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합의문(코뮈니케) 채택이 불발됐다. 최근 경제위기 원인으로 ‘전쟁’을 꼽는 서방 국가 의견에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아서다. 올 4월 G20 재무장관 회의와 지난 8일 G20 외무장관 회의에 이어 잇따라 합의문이 채택되지 않으면서 G20 체제가 균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참석한 인도네시아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문 채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17일 밝혔다. 추 부총리는 “전쟁을 둘러싼 회원국(G7과 러시아) 간 갈등으로 합의문 채택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논의 내용은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의 ‘의장 요약문’으로 대체돼 발표됐다. 요약문에는 코로나19, 인플레이션 등으로 세계 경제 회복세가 크게 약화됐다는 내용이 언급되면서 전쟁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쟁이 수요·공급 불일치, 공급망 차질, 식량·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단에 러시아 등이 동의하지 않아 합의문 채택이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국가 재무장관들의 러시아 비판 목소리도 거셌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15일 첫날 회의에서 현재 세계가 직면한 경제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러시아의 잔인하고 불공정한 전쟁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재무장관도 러시아 대표단을 향해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장군들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고 지속되게 하는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한 만큼 전쟁 범죄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G20 재무·외교장관들의 합의문 채택이 잇따라 불발되면서 1999년 시작된 G20 국제 공조 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G20의 행동과 소통 능력이 크게 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문 채택 여부가 G20 체제의 운명을 가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쟁이 연말까지 계속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지속되면 정상회의 합의문 채택도 어려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합의문조차 내지 못하는 국제 공조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G20은 1999년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시작으로 출범했다. 한국 등 아시아 지역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G8 재무장관 회의에서 신흥국을 포함한 회의를 열기로 결정한 결과다.

G8은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5개국으로 시작한 G5가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추가해 G7이 된 뒤 소련 해체를 계기로 러시아를 초청하면서 구성된 협의체다.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한 2008년 시작돼 2011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