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4990원"…대형마트에 '치킨런' 벌어졌다 [박종관의 유통관통]
지난 16일 전국 홈플러스 매장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초복을 맞아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를 4990원에 특가로 판매한다는 입소문이 나 소비자들이 매장으로 몰려들면서다. 오후 3시 치킨을 판매하기 전부터 매장엔 긴 줄이 늘어섰다. 전 점포에 한정 수량으로 준비한 5000마리는 판매를 시작한 지 한 시간여 만에 동났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외식 물가 급등으로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소비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치킨런(치킨+오픈런)'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당당치킨, 18일 만에 16만 마리 팔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외식 물가는 물론 배달비까지 급등하면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하는 대신 대형마트 델리(조리식품) 코너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맛과 가격을 모두 잡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델리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며 소비자를 매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홈플러스가 지난달 30일 선보인 초특가 치킨 '당당치킨'이 대표적인 예다. 홈플러스는 '당일조리, 당일판매'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은 당당치킨을 한 마리에 6900원(프라이드 기준)에 팔고 있다. 배달비까지 고려하면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의 가격이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당당치킨은 출시 18일 만에 누적 판매량 16만 마리를 돌파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에 홈플러스도 놀라는 분위기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당초 목표로 잡았던 3개월 판매 물량이 3주일도 안 돼 팔려나갔다"며 "생닭 물량을 추가로 확보해 판매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델리 코너 중에서도 초밥 카테고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밥만 많고 회는 작다'는 기존 마트 초밥의 편견을 깨기 위해 초밥용 횟감 중량을 늘려 전문점 수준으로 초밥 품질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이마트 초밥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0% 가량 늘었다.

대형마트가 외식 프랜차이즈에 비해 싼값에 치킨과 초밥 등을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 실현에 더해 유통 마진과 광고비를 아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 프랜차이즈라 할지라도 대형마트의 바잉 파워를 따라갈 순 없다"며 "원재료를 싸게 들여오는 데다 본사와 가맹점주가 각각 따로 가져가는 마진과 불필요한 광고비도 없앴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델리 메뉴를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 시장과도 경쟁

대형마트는 최근 배달앱과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배달비 급등에 따른 소비자 불만이 커지자 빈틈을 파고들어 델리 메뉴를 집으로 바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부터 회·초밥 바로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롯데온 내 롯데마트몰에서 회와 초밥을 주문하면 주문 장소 근처 롯데마트 매장의 수산물 전문가가 바로 손질한 상품을 두 시간 내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다른 생필품 등을 포함해 4만원 이상 구매하면 배송비도 무료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초밥과 치킨, 샐러드 등 각종 델리 메뉴를 온라인몰에서 판매하고 있다. 두 업체 역시 4만원 이상 구매 시 지정한 시간에 상품을 무료로 배송해준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배달앱에서 배달비를 내고 시켜 먹느니 간단히 장도 보면서 배달비 없이 저렴한 가격에 델리 메뉴를 주문해 먹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델리 코너 경쟁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즉석 조리식품은 쿠팡과 컬리 등 신흥 유통강자로 떠오른 e커머스(전자상거래)업체가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살아나기 시작하던 소매유통 시장 체감경기는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다시 급랭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3분기 경기전망지수는 86으로 전 분기(97)에 비해 11포인트 떨어졌다. 경기전망지수는 100을 기준점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이 부정적임을 의미한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