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原乳)값 개편을 둘러싼 정부와 낙농업계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낙농육우협회가 대안 없이 정부 측 설명회를 거부하고 있다”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낙농업계는 “사료값이 올라 원유값을 더 올려야 할 판인데 정부안대로면 오히려 소득이 감소한다”며 원유 납품 거부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양측이 ‘벼랑 끝 대결’을 펼치면서 낙농업계가 원유 납품을 중단하는 우유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낙농업계 원유값 차등제 충돌…'우유대란' 오나

정부-낙농업계 대치

갈등의 발단은 농식품부가 추진 중인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다. 현재 낙농업계가 유가공업계에 납품하는 원유 가격은 용도와 관계없이 L당 1100원이다. 유가공업계는 연간 220만t의 원유를 낙농업계로부터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정부는 마시는 우유는 L당 1100원,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가공유는 L당 800원으로 납품가격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195만t까지는 L당 1100원이 유지되며, L당 800원이 적용되는 원유는 10만t 정도에 그치는 만큼 “낙농업계도 손해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또 유가공업계에는 L당 200원의 보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유가공업계가 실질적으로 L당 600원에 원유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추진하는 것은 국내 원유 공급가격이 외국에 비해 너무 높아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원유값은 2001년 L당 629원에서 2020년 1083원으로 72.2% 뛰었다. 이에 반해 미국산 원유 가격은 이 기간 439원에서 491원으로 11.8%, 유럽산은 393원에서 470원으로 19.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고비용 구조는 국내 낙농업계 쇠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유제품 소비량은 2001년 305만t에서 2021년 458만t으로 증가했지만 낙농업계의 원유 생산량은 이 기간 234만t에서 203만t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원유 수입량은 65만t에서 251만t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원유 자급률은 77.3%에서 45.7%로 떨어졌다. 유통기한이 짧아 수입이 어려운 생우유를 제외한 유제품 시장 대부분이 외국산에 점령된 것이다.

게다가 2000년 이후 낙농업계와 유가공업계의 협상으로 결정돼온 원유 가격이 2013년부터 현재의 생산비 연동 방식으로 바뀌면서 국내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출산율이 낮아지며 마시는 우유 수요는 줄어드는데, 원유 생산비에 연동된 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수급 상황이 더 왜곡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했고 윤석열 정부도 이런 기조를 이어받았다.

“현재 원유 납품가는 수요 반영 못해”

원유 가격 협상 시한은 원칙적으로 8월 1일이다. 정부와 낙농업계의 갈등으로 합의가 지연되면서 원유 공급가는 지금처럼 L당 1100원이 유지된다. 하지만 낙농업계와 유가공업계 모두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낙농업계는 “사료값 인상과 고물가 등으로 원유 납품가격을 더 올려도 모자랄 판”이라며 정부가 납품가 인하를 강행하면 원유 납품 거부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낙농협회 관계자는 “현재 가격 체계에서도 사료 가격 폭등과 고령화 심화로 젖소 사육 두수가 40만 마리 이하로 떨어졌고 폐업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공업계도 불만이다. 수요를 초과하는 원유를 외국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가격에 의무적으로 사야 하다 보니 여분의 원유는 생산 수율이 낮은 분유로 만들어 원가의 반값에 파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유가공업계의 지적이다. 유가공협회에 따르면 유가공업계는 2020년 유제품의 70%를 차지하는 백색우유 사업에서 평균 5.7%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낙농가는 이미 충분히 큰 마진을 보장받고 있다”며 “수요를 고려해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