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한 달 새 11% 폭락…러시아 경제 비관론 나오는 이유 [조미현의 외환·금융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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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러시아 경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쟁으로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에너지 강대국인 러시아 경제가 호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2022년 7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달러당 러시아 루블화 환율(9일 기준) 지난 6월에 비해 11% 가치가 하락했다. 한은은 "러시아 루블화는 정책금리 인하와 천연가스 수출 둔화 등으로 약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달러 가치는 1.6% 올랐다. 한국 원화(-0.5%), 인도 루피화(-0.7%), 중국 위안화(-0.8%) 등은 소폭 약세를 나타냈다.
러시아 증시를 대표하는 MOEX 지수는 같은 기간 3.1% 내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7.8%,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 6.5%, 일본 니케이225 지수 6.1% 등 선진국은 물론 한국 코스피 7.3%, 인도 센섹스 11% 등 신흥국의 주식 시장이 일제히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러시아 국채 금리 역시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내림세를 보인 것과 달리 소폭 상승했다. 이 기간 러시아 국채 금리는 0.04%(10년물 기준) 올랐는데 미국(-0.23%), 한국(-0.47%), 일본(-0.06%), 중국(-0.07%) 등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채는 수요가 늘어날 때 금리가 내려간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대체로 호조를 보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월 러시아 경상수지가 올해 1~4월 95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약 12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75억달러)과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제한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치솟는 원자재 가격에 더해 중국과 인도 등이 '고객'이 돼 주면서 러시아가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러시아의 석유 수익이 연초보다 50% 늘어난 월 200억달러(25조3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연구팀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선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대체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푸틴이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잘못 알려진 논란거리"라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 가스 수출의 대부분은 유럽으로 향하는 고정 파이프라인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구팀은 "러시아 송유관의 대부분은 유럽으로 흐른다"며 "서부 러시아에서 시작되는 송유관은 동부 시베리아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별도의 송유관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한 천연가스는 165억㎥ 규모였는데 이는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한 천연가스 규모(1700억㎥)의 10%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연구팀은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량은 이미 전년 대비 3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럽에 대한 푸틴의 에너지 관련 협박(blackmail)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상당한 재정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에너지 강대국으로서 기세등등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에너지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에 우랄산 원유를 수출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전 가격에서 배럴당 최대 35달러 할인된 가격에 파는 걸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유조선이 유럽까지 도달하는 데는 평균 2~7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아시아까지 오려면 평균 35일이 걸린다. 러시아는 다른 주요 산유국과 비교하면 고비용 산유국이기 때문에 마진 압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연구팀은 언급했다.
연구팀은 "중국은 많은 사람이 우려한 만큼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 세관총서의 최근 월간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연초부터 4월까지 월간 81억달러에서 38억달러로, 50% 이상 급감했다. 연구팀은 "중국에는 미국이 러시아보다 7배 큰 수출시장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의 기업들은 경제적으로 미미한(marginal) 러시아 시장보다 미국의 제재에 대해 더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중국을 과연 신뢰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달 물리학자인 드미트리 콜케르 박사를 체포했다. 그가 중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루블화 역시 전례 없는 엄격한 자본 통제에 의한 인위적인 방법으로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올해 GDP의 2%에 해당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사위크는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당초 올해 1조3000억 루블 흑자를 예상했으나 전쟁 변수로 최소 1조6000억 루블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털어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러시아는) 높은 에너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낸 유일한 사례 중 하나"라며 "푸틴은 군사비 지출의 급격한 증가 외에도 분명히 재정 적자에 의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지난 10일 포린 폴리시에 푸틴 대통령을 '폭군'이라고 표현하며 '폭군을 쓰러뜨리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들은 "경제적 압력이 권위주의 정권을 변화시키거나 종식할 수 없다는 것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일 뿐"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제재를 받는 러시아를 고립시킬 것 △정부 제재와 (기업 철수 등) 민간 부문의 조치를 병행할 것 △정부 제재를 부문 간, 그리고 국가 간 포괄적으로 만들 것 등 세 가지를 조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2022년 7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달러당 러시아 루블화 환율(9일 기준) 지난 6월에 비해 11% 가치가 하락했다. 한은은 "러시아 루블화는 정책금리 인하와 천연가스 수출 둔화 등으로 약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달러 가치는 1.6% 올랐다. 한국 원화(-0.5%), 인도 루피화(-0.7%), 중국 위안화(-0.8%) 등은 소폭 약세를 나타냈다.
러시아 증시를 대표하는 MOEX 지수는 같은 기간 3.1% 내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7.8%,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 6.5%, 일본 니케이225 지수 6.1% 등 선진국은 물론 한국 코스피 7.3%, 인도 센섹스 11% 등 신흥국의 주식 시장이 일제히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러시아 국채 금리 역시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내림세를 보인 것과 달리 소폭 상승했다. 이 기간 러시아 국채 금리는 0.04%(10년물 기준) 올랐는데 미국(-0.23%), 한국(-0.47%), 일본(-0.06%), 중국(-0.07%) 등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채는 수요가 늘어날 때 금리가 내려간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대체로 호조를 보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월 러시아 경상수지가 올해 1~4월 95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약 12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75억달러)과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제한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치솟는 원자재 가격에 더해 중국과 인도 등이 '고객'이 돼 주면서 러시아가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러시아의 석유 수익이 연초보다 50% 늘어난 월 200억달러(25조3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아시아가 러시아의 대체시장?
하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경제가 붕괴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미국 포린 폴리시에 공개한 논문에서 러시아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조목조목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우선 러시아에서 공표하는 경제 지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연구팀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선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대체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푸틴이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잘못 알려진 논란거리"라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 가스 수출의 대부분은 유럽으로 향하는 고정 파이프라인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구팀은 "러시아 송유관의 대부분은 유럽으로 흐른다"며 "서부 러시아에서 시작되는 송유관은 동부 시베리아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별도의 송유관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한 천연가스는 165억㎥ 규모였는데 이는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한 천연가스 규모(1700억㎥)의 10%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연구팀은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량은 이미 전년 대비 3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럽에 대한 푸틴의 에너지 관련 협박(blackmail)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상당한 재정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에너지 강대국으로서 기세등등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에너지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에 우랄산 원유를 수출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전 가격에서 배럴당 최대 35달러 할인된 가격에 파는 걸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유조선이 유럽까지 도달하는 데는 평균 2~7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아시아까지 오려면 평균 35일이 걸린다. 러시아는 다른 주요 산유국과 비교하면 고비용 산유국이기 때문에 마진 압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연구팀은 언급했다.
중국은 러시아 편이 맞나
중국이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실제 경제적 교류는 크지 않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불과 몇 주 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우정에 "한계는 없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다. 지난 6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전화 통화로 협력 관계를 과시했다.연구팀은 "중국은 많은 사람이 우려한 만큼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 세관총서의 최근 월간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연초부터 4월까지 월간 81억달러에서 38억달러로, 50% 이상 급감했다. 연구팀은 "중국에는 미국이 러시아보다 7배 큰 수출시장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의 기업들은 경제적으로 미미한(marginal) 러시아 시장보다 미국의 제재에 대해 더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중국을 과연 신뢰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달 물리학자인 드미트리 콜케르 박사를 체포했다. 그가 중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에서 탈출하는 다국적 기업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한 다국적 기업은 1000개 이상에 달한다. 러시아 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다국적 기업은 러시아 전체 노동력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팀은 "50만명의 사람이 러시아를 탈출했는데 대부분 고학력에 기술적으로 숙련된 노동자들"이라며 "심지어 모스크바 시장도 기업이 완전히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인정했다"고 밝혔다.루블화 역시 전례 없는 엄격한 자본 통제에 의한 인위적인 방법으로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올해 GDP의 2%에 해당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사위크는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당초 올해 1조3000억 루블 흑자를 예상했으나 전쟁 변수로 최소 1조6000억 루블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털어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러시아는) 높은 에너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낸 유일한 사례 중 하나"라며 "푸틴은 군사비 지출의 급격한 증가 외에도 분명히 재정 적자에 의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지난 10일 포린 폴리시에 푸틴 대통령을 '폭군'이라고 표현하며 '폭군을 쓰러뜨리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들은 "경제적 압력이 권위주의 정권을 변화시키거나 종식할 수 없다는 것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일 뿐"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제재를 받는 러시아를 고립시킬 것 △정부 제재와 (기업 철수 등) 민간 부문의 조치를 병행할 것 △정부 제재를 부문 간, 그리고 국가 간 포괄적으로 만들 것 등 세 가지를 조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