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예상보다 좀 더 빨리 정점 이를 수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한은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며 최근 국내 경제가 외부 충격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0%로 0.25%포인트(p) 인상한 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7월 단행한 사상 첫 '빅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한 번 더 밟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물가와 관련해서는 "내년초까지 5∼6%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최근 두 달 동안 국제 유가가 상당 폭 하락한 영향으로 물가 정점은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최근 약 13년 4개월 만에 1,340원대로 올라서면서 시장의 우려와 불안이 커진 데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재는 높은 환율이 과거처럼 외환보유고나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현재 국내 고용이 견조한 상황인데, 경제가 연착륙하면서 물가가 한은의 목표치(2%)대로 안정될 수 있다고 보나.
▲ 한은은 정부로부터는 굉장히 독립적이라고 보지만 연준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다고 한 금통위원이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외부충격을 한은이 통제할 수는 없고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착륙 가능성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다만 현재는 외부충격이 없을 때 임금과 물가가 서로 끌어올리는 상호작용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오는데, 이에 따른 한은의 추가 빅 스텝 가능성은.
▲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어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원칙적으로는 빅 스텝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아니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한미 금리는 더 큰 폭으로 역전된다.
이것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자본 유출을 촉진하지 않겠냐는 우려도 충분히 이해하나, 과거 한미금리차 역전에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다.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모니터링은 해야 하지만, 단순히 한미 금리차 역전만으로 시장의 우려가 실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지난 7월 금통위 회의에서 올 3분기 말 또는 4분기 초에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도 같은 입장인가.
▲ 7월 회의 이후 두 달 동안 국제유가가 상당 폭 하락했다.
그래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월보다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점이 언제일지에 대한 판단은 어렵지만, 물가상승 정점이 3분기 말보다는 조금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정점을 통과한다고 해서 물가가 안정적인 추세가 되리라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내년 초까지는 5%대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물가 정점과는 상관없이 당분간은 물가를 중심으로 한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 그렇다면 올 연말 기준금리가 2.75∼3.00%가 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에 여전히 동의하는지.
▲ 7월에 예상한 경로와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말 기준금리가 2.75∼3.00%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는 여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40원대까지 올랐다.
이런 변동성이 이번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쳤나.
▲ 최근 원화가 약세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이번 주 열리는 미국 잭슨홀 회의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겨울을 맞은 유럽의 에너지 가격이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한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추세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이번 결정에 반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에 환율 상승을 제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환율 상승을 우려하는 이유를 지금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은이 높은 환율을 우려하는 원인은 환율 수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수입 가격이 오르는 데 따른 물가상승, 수입 기업의 부담 증가 등과 같은 가격 변수 때문이다.
우리나라 통화 가치만 절하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외환보유고나 국가 신용도를 우려하는 상황과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연간수출액, 광의통화(M2), 외국인 투자금 등을 합한 금액의 150% 수준까지 외화보유액을 유지하라고 권고했고 우리는 그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는데, 내가 IMF 출신이다.
IMF에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쌓으라고 한 적도 없고, 하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규모가 작은 신흥국의 경우 적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외화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다.
또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상시적인 통화스와프가 있는 영국과 유로존, 캐나다에서도 달러가 강세다.
현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로 달러 강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결국 경기 침체가 동반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 우크라이나 사태나 선진국의 경제가 훨씬 나빠지는 등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떨어지면 물가 상승 속도도 느려지고, 그렇게 되면 금리 인상 속도를 재검토해야 할 것. 하지만 이는 연말쯤에야 점검할 수 있다고 본다.
일단은 당분간 물가상승률이 5%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므로 7월에 말한 대로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기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여전히 아니라는 입장인지.
▲ 내년 성장률 2.1%를 달성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것이다.
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면 잠재성장률을 웃돌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 지난 간담회에서 당시 금리(2.25%)가 중립금리의 하단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수준은 어떤가.
▲ 현재는 중립금리의 중간 수준까지 와 있다고 본다.
향후 성장률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 5%대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도 장기화한다면 중립금리 상단 수준까지 올려 물가부터 꺾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커져 버리면 물가를 통제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 시장에서는 한은이 내년이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나.
▲ 현재는 불확실성이 워낙 큰 상황이라서 3개월 이후의 기조에 대해 지금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
연말이나 돼야 내년 정책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연말 이후 기준금리를 안 올릴 것이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다면 자기 책임하에 손실이나 이익을 봐야 한다.
일단은 3개월 단위로 시장과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정부와 한은의 인식이 격차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 정부와 한은은 굉장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올 초 정부가 소상공인을 지원하면서 추경을 늘리긴 했지만, 재정적자 수준을 내년엔 3%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등 내용이 담긴 재정정책안을 발표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정부와 협조가 잘 되고 있으며, 그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