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나온 청년, CEO 출신 중년…그들은 왜 창업에 나섰나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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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costs to being an entrepreneur. In doing something meaningful, you’ll have to pay for part of the work.(창업가로서의 대가는 크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을 요구한다.)”
2006년 트위터를 창업한 잭 도시의 말처럼 창업은 위험 부담이 상당한 일입니다. “But you will also enjoy it for a long time after.(하지만 그 이후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이다.)”는 뒤이어 강조되던 표현입니다. 그래서 창업은 매력적입니다. 부와 명예, 자아실현, ‘내 사업’에 대한 동경을 이룰 수 있죠.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가치에 골몰할 수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벤처캐피털(VC) 앤틀러는 지난 7월부터 한국에서 초기 창업자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대 청담동 바 주인부터 중견기업 전문경영인 출신 50대 중년까지 다양한 예비 창업가가 서울창업허브 4층에 자리를 마련한 상태입니다. 약사·변호사 등 소위 ‘전문직’도 눈에 띕니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삶을 살면서도 '전장'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왜 창업하는가”를 수없이 들었을 이들에게, 창업의 이유를 한경 긱스(Geeks)가 다시 물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투자하는 인생은 아깝지 않다”는 것이 공통되어 돌아온 말입니다.
1998년생, 올해로 25살의 황태웅 씨는 위스키 바 ‘퍼밋 청담’의 젊은 사장입니다. 미국에서 입국한 지난해 5월부터 가게 운영을 시작한 그는 술에 ‘진심’입니다. 와인은 하루 한 병씩 맛보길 즐겼고, 소주는 두 병 반을 먹습니다. “많이 마시는 것보다 술맛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술과 가게는 그에게 한국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공간이자, 창업을 준비하는 전초 기지였습니다. 7살부터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 호주 등에서 살았던 그는 사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창업 명문’ 뱁슨 칼리지의 창업학 전공자 출신입니다. 스타트업을 일구겠다는 꿈은 처음부터 있었던 셈입니다. 고교 시절 미국에서 열린 공학 경진대회 수상을 계기로 입학한 대학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습니다. 뱁슨의 수업은 독특하기로 유명합니다. ‘창업 금융’ 수업은 황 씨가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수업입니다. 팀별로 회사와 VC 역할을 맡아 협상하고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훈련을 하는데, “기업 가치 산정부터 소위 투자사에 ‘당하지 않는’ 실무적 기법까지 배운다”는 설명입니다. 주마다 팀별로 특정 문제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교수가 학기 내내 ‘가상의 돈’으로 투자를 집행하는 수업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적 투자금은 성적과 직결됐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창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 역시도 엑시트(Exit)에 성공한 창업가입니다. 2018년부터 고가의 패션 아이템을 출시 전부터 경매에 부치는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공동 창업자로서 매각한 지분은 비자 문제로 한국에서 돌아와야 했던 그에게 새 출발을 시작할 밑거름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던 가족을 보며 술집을 차렸는데, 강남구에 위치하다 보니 VC나 스타트업 업계 인사들을 손님으로 자주 만나기도 했습니다. 직원이 3명이지만 그는 여전히 손님들 만나기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7시에 일어나 앤틀러가 위치한 서울창업허브 공덕으로 출근하고, 저녁 9시쯤에는 위스키 바에 도착해 새벽 1시까지 근무합니다.
발명가가 꿈이었던 황 씨가 다시 창업을 준비하는 연유엔 그만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재밌습니다. 하지만 사업까지 연결되지 못하면 거기서 끝나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미국 본토에 한국의 빠른 이커머스 배송 시스템을 접목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내 아이디어가 실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래서 영향력을 끼치는 광경을 목도하고 싶다”가 황 씨의 창업 이유입니다.
연세대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약 2년을 근무하고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늦기 전 문과적 소양을 기르고 싶다”가 이유였다고 합니다. 입학 1년 차, 2014년 카카오와 다음의 M&A는 황 씨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다음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정보기술(IT) 업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동기들이 관련 내용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내가 조금 다르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2017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5월 퇴사를 하고 본격적 창업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그의 관심사는 대체불가능토큰(NFT)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개발자를 구하려고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PM) 부트 캠프도 수강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찾지 못해 좌초 위기에 놓였습니다. 8월부터는 직접 ‘코딩 배우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서울산업진흥원(SBA)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해 기초 개발자 과정을 이수하고, 이후엔 외주까지 해가며 실력을 늘렸습니다. 올해 초엔 문득 “어차피 고생하는 것은 같은데, 이쯤 하고 창업하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앤틀러 프로그램에 지원한 계기였습니다.
“변호사 일이 재미 없어서”가 그의 창업 이유입니다. 모든 업무가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소회입니다. “‘다이내믹’하지 않고, 다시 취직해도 금방 싫증 낼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황 씨는 현재 변호사들의 법률 문서 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IT와 인공지능(AI)이 대세가 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변호사 역할은 영속될 것이란 믿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그는 살아 숨 쉽니다.
성균관대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 학예사를 꿈꿨습니다.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직장 생활을 경험해보라”는 은행원 출신 아버지의 권유에 광고대행사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1999년엔 ‘디지털 광고’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던 때였습니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전략이었다”며 “광고 전공자 동기들에게 지기 싫어서 악착같이 일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 광고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겨선 ‘싸이월드’ 서비스를 도맡습니다. 그 해 인수된 싸이월드는 1년에 광고로 버는 돈이 1억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광고 기획을 통해 3년 만에 싸이월드 광고 매출을 1000억원으로 만들어놓으며 주요 커리어의 첫 줄을 채웁니다. 2008년엔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의 제의를 받아 뷰티 분야로 자리를 옮깁니다. 5년 정도 걸려 러쉬코리아의 온라인몰을 살렸습니다. “온라인 부문 매출액이 세계 46위였는데, 나올 때 1등으로 만들어놓고 나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후엔 로레알그룹·제네럴밀스코리아·슈레피에서 임원·부대표 등으로 일했습니다. 의료가전 업체 세라젬에는 2020년 합류해 자회사 세라젬헬스앤뷰티의 CEO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살아오던 방식과 스타트업 창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직할 때마다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이를 해결하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 잠시 화장품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업체를 차려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깨달은 것이 이때입니다. “과거 사업은 단순히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였어요. 스타트업은 ‘페인 포인트’를 해결해 ‘성장’한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시니어 네트워킹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살면 편했겠죠. 지금도 떠오르는 아이템이 매우 많습니다.” 그는 “실패해도 한 두 번은 더 창업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2017년도 여름은 분기점이었습니다. 석사과정 재학 중 그의 어머니는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위반한 버스에 부딪혔습니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병원 측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몸은 회복됐지만, 처음으로 ‘대학원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약을 한 번 만드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내가 10년, 20년 해도 안 될 수도 있어요. 연구실에서 성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겠다 싶었어요.”
이른 성공에 대한 갈망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약대에서 실험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던 경험은 영양제 스타트업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샘플 바이러스 질환에 노출돼서 자가 면역 질환자가 됐는데,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몸이 호전됐다”며 “어머니도 뇌 손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양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2019년 곧바로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지만, 1차 실패를 맛봤습니다. 맞춤형 영양제 추천 서비스를 기획했는데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약국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겨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창업 실패로 누적된 스트레스는 웹소설을 쓰면서 풀었습니다. 이 씨는 이때를 계기로 3개 시리즈를 출판한 장르 소설 작가가 됐습니다. “창업 실패로 인해 불면증을 겪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는데, 독자들 응원 댓글이 재기 발판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창업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없어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경험입니다. 그런데도 이 씨는 올해 7월 앤틀러의 문을 다시 두드렸습니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영양제 추천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창업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여전한 목표입니다.참 한 가지 더
"동료 창업가 찾아준다"…앤틀러의 독특한 '창업가 육성법' 앤틀러는 글로벌 17개 국가에 지사를 둔 벤처캐피털(VC)입니다. 2017년 설립되어 프리시드 중심의 투자를 이어와 몸집을 빠르게 키웠습니다. 지난해엔 슈로더, 피닉스그룹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3억달러(약 43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홈베이스, 리벨로 등 400여 개 스타트업이 이들의 포트폴리오입니다.
앤틀러가 유망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컴퍼니 빌딩’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특징은 3개월 동안 예비 창업자들이 사업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를 찾고, 이후 3개월 동안 본격적인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것입니다. 연령·경력 등 참가 자격 조건은 없습니다.
1기에는 9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80명의 예비 창업가가 선발됐습니다. 이들은 7월부터 ‘트랙아웃(팀을 구성해 심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 간의 합을 맞춰왔습니다. 지난 26일에는 트랙아웃을 마친 팀을 대상으로 첫 내부 투자심사위원회(투심위)가 열렸습니다. 앤틀러는 투심위를 통해 프리시드 투자금 2억원을 지원합니다. 탈락자는 다음 기수에 다시 지원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 3개월은 사업 아이템 고도화를 거치는데, 목표는 이르면 내년 1월 초에 열릴 데모데이입니다. 이때는 외부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기회를 얻습니다. 전체 과정이 종료되는 시기는 내년 1월입니다. 앤틀러는 다음달 초부터 컴퍼니 빌딩 프로그램 2기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이시은 기자
2006년 트위터를 창업한 잭 도시의 말처럼 창업은 위험 부담이 상당한 일입니다. “But you will also enjoy it for a long time after.(하지만 그 이후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이다.)”는 뒤이어 강조되던 표현입니다. 그래서 창업은 매력적입니다. 부와 명예, 자아실현, ‘내 사업’에 대한 동경을 이룰 수 있죠.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가치에 골몰할 수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벤처캐피털(VC) 앤틀러는 지난 7월부터 한국에서 초기 창업자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대 청담동 바 주인부터 중견기업 전문경영인 출신 50대 중년까지 다양한 예비 창업가가 서울창업허브 4층에 자리를 마련한 상태입니다. 약사·변호사 등 소위 ‘전문직’도 눈에 띕니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삶을 살면서도 '전장'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왜 창업하는가”를 수없이 들었을 이들에게, 창업의 이유를 한경 긱스(Geeks)가 다시 물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투자하는 인생은 아깝지 않다”는 것이 공통되어 돌아온 말입니다.
창업 전초 기지 된 '청담동 위스키 바'
“위스키가 40도가 넘어요. 보통 마시면 한 번에 반병 이상은 먹습니다. ‘피트 위스키’가 ‘스모키’한 향이 나서 제일 좋아해요.”1998년생, 올해로 25살의 황태웅 씨는 위스키 바 ‘퍼밋 청담’의 젊은 사장입니다. 미국에서 입국한 지난해 5월부터 가게 운영을 시작한 그는 술에 ‘진심’입니다. 와인은 하루 한 병씩 맛보길 즐겼고, 소주는 두 병 반을 먹습니다. “많이 마시는 것보다 술맛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술과 가게는 그에게 한국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공간이자, 창업을 준비하는 전초 기지였습니다. 7살부터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 호주 등에서 살았던 그는 사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창업 명문’ 뱁슨 칼리지의 창업학 전공자 출신입니다. 스타트업을 일구겠다는 꿈은 처음부터 있었던 셈입니다. 고교 시절 미국에서 열린 공학 경진대회 수상을 계기로 입학한 대학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습니다. 뱁슨의 수업은 독특하기로 유명합니다. ‘창업 금융’ 수업은 황 씨가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수업입니다. 팀별로 회사와 VC 역할을 맡아 협상하고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훈련을 하는데, “기업 가치 산정부터 소위 투자사에 ‘당하지 않는’ 실무적 기법까지 배운다”는 설명입니다. 주마다 팀별로 특정 문제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교수가 학기 내내 ‘가상의 돈’으로 투자를 집행하는 수업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적 투자금은 성적과 직결됐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창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 역시도 엑시트(Exit)에 성공한 창업가입니다. 2018년부터 고가의 패션 아이템을 출시 전부터 경매에 부치는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공동 창업자로서 매각한 지분은 비자 문제로 한국에서 돌아와야 했던 그에게 새 출발을 시작할 밑거름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던 가족을 보며 술집을 차렸는데, 강남구에 위치하다 보니 VC나 스타트업 업계 인사들을 손님으로 자주 만나기도 했습니다. 직원이 3명이지만 그는 여전히 손님들 만나기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7시에 일어나 앤틀러가 위치한 서울창업허브 공덕으로 출근하고, 저녁 9시쯤에는 위스키 바에 도착해 새벽 1시까지 근무합니다.
발명가가 꿈이었던 황 씨가 다시 창업을 준비하는 연유엔 그만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재밌습니다. 하지만 사업까지 연결되지 못하면 거기서 끝나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미국 본토에 한국의 빠른 이커머스 배송 시스템을 접목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내 아이디어가 실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래서 영향력을 끼치는 광경을 목도하고 싶다”가 황 씨의 창업 이유입니다.
'다이내믹' 찾는 변호사…"창업, 싫증 없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황서형 씨는 변호사 일이 어느 순간 무료해졌습니다. 법무법인을 거쳐 당시 대림산업(현 DL그룹)의 법무팀에서 일했던 그는 지난 2020년 최대 크로스보더 딜 중 하나로 꼽히는 카리플렉스 인수합병(M&A)의 실무진 중 하나였습니다. DL그룹 석유화학 부문 최초의 해외 M&A를 마무리하곤, 한국어음중개로 넘어가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일까지 경험했습니다. P2P업계에선 사활을 걸던 업무를 성공리에 처리하고 나자, “이제는 내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연세대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약 2년을 근무하고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늦기 전 문과적 소양을 기르고 싶다”가 이유였다고 합니다. 입학 1년 차, 2014년 카카오와 다음의 M&A는 황 씨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다음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정보기술(IT) 업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동기들이 관련 내용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내가 조금 다르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2017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5월 퇴사를 하고 본격적 창업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그의 관심사는 대체불가능토큰(NFT)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개발자를 구하려고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PM) 부트 캠프도 수강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찾지 못해 좌초 위기에 놓였습니다. 8월부터는 직접 ‘코딩 배우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서울산업진흥원(SBA)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해 기초 개발자 과정을 이수하고, 이후엔 외주까지 해가며 실력을 늘렸습니다. 올해 초엔 문득 “어차피 고생하는 것은 같은데, 이쯤 하고 창업하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앤틀러 프로그램에 지원한 계기였습니다.
“변호사 일이 재미 없어서”가 그의 창업 이유입니다. 모든 업무가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소회입니다. “‘다이내믹’하지 않고, 다시 취직해도 금방 싫증 낼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황 씨는 현재 변호사들의 법률 문서 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IT와 인공지능(AI)이 대세가 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변호사 역할은 영속될 것이란 믿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그는 살아 숨 쉽니다.
"실패해도 한번 더"…50대 뷰티 기업 CEO의 결심
올해로 52살이 된 이승현 씨는 요즘 모임에 나가면 “와서 나 좀 도와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중견기업 계열사 전문경영인 출신인 그가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모임에 나가면, 다른 기업의 CEO들이 “거기서 뭐 하는 거냐?”며 서로 자기 회사에 와서 일하라고 권유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아침마다 앤틀러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그의 새로운 꿈은 ‘스타트업 대표’입니다.성균관대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 학예사를 꿈꿨습니다.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직장 생활을 경험해보라”는 은행원 출신 아버지의 권유에 광고대행사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1999년엔 ‘디지털 광고’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던 때였습니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전략이었다”며 “광고 전공자 동기들에게 지기 싫어서 악착같이 일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 광고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겨선 ‘싸이월드’ 서비스를 도맡습니다. 그 해 인수된 싸이월드는 1년에 광고로 버는 돈이 1억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광고 기획을 통해 3년 만에 싸이월드 광고 매출을 1000억원으로 만들어놓으며 주요 커리어의 첫 줄을 채웁니다. 2008년엔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의 제의를 받아 뷰티 분야로 자리를 옮깁니다. 5년 정도 걸려 러쉬코리아의 온라인몰을 살렸습니다. “온라인 부문 매출액이 세계 46위였는데, 나올 때 1등으로 만들어놓고 나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후엔 로레알그룹·제네럴밀스코리아·슈레피에서 임원·부대표 등으로 일했습니다. 의료가전 업체 세라젬에는 2020년 합류해 자회사 세라젬헬스앤뷰티의 CEO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살아오던 방식과 스타트업 창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직할 때마다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이를 해결하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 잠시 화장품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업체를 차려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깨달은 것이 이때입니다. “과거 사업은 단순히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였어요. 스타트업은 ‘페인 포인트’를 해결해 ‘성장’한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시니어 네트워킹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살면 편했겠죠. 지금도 떠오르는 아이템이 매우 많습니다.” 그는 “실패해도 한 두 번은 더 창업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약대 모범생', 빠른 성공 위해 선택한 창업
이소정 씨는 고려대 약대 최고 우등생 중 하나였습니다. 졸업 평점이 3.9, 항상 시험만 보면 5등 안에 들었습니다. 약대에서 4년간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곤, 서울대 약학대학원에 진학해 또다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신약 개발로 성공한 연구자가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2017년도 여름은 분기점이었습니다. 석사과정 재학 중 그의 어머니는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위반한 버스에 부딪혔습니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병원 측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몸은 회복됐지만, 처음으로 ‘대학원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약을 한 번 만드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내가 10년, 20년 해도 안 될 수도 있어요. 연구실에서 성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겠다 싶었어요.”
이른 성공에 대한 갈망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약대에서 실험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던 경험은 영양제 스타트업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샘플 바이러스 질환에 노출돼서 자가 면역 질환자가 됐는데,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몸이 호전됐다”며 “어머니도 뇌 손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양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2019년 곧바로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지만, 1차 실패를 맛봤습니다. 맞춤형 영양제 추천 서비스를 기획했는데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약국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겨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창업 실패로 누적된 스트레스는 웹소설을 쓰면서 풀었습니다. 이 씨는 이때를 계기로 3개 시리즈를 출판한 장르 소설 작가가 됐습니다. “창업 실패로 인해 불면증을 겪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는데, 독자들 응원 댓글이 재기 발판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창업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없어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경험입니다. 그런데도 이 씨는 올해 7월 앤틀러의 문을 다시 두드렸습니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영양제 추천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창업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여전한 목표입니다.참 한 가지 더
"동료 창업가 찾아준다"…앤틀러의 독특한 '창업가 육성법' 앤틀러는 글로벌 17개 국가에 지사를 둔 벤처캐피털(VC)입니다. 2017년 설립되어 프리시드 중심의 투자를 이어와 몸집을 빠르게 키웠습니다. 지난해엔 슈로더, 피닉스그룹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3억달러(약 43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홈베이스, 리벨로 등 400여 개 스타트업이 이들의 포트폴리오입니다.
앤틀러가 유망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컴퍼니 빌딩’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특징은 3개월 동안 예비 창업자들이 사업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를 찾고, 이후 3개월 동안 본격적인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것입니다. 연령·경력 등 참가 자격 조건은 없습니다.
1기에는 9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80명의 예비 창업가가 선발됐습니다. 이들은 7월부터 ‘트랙아웃(팀을 구성해 심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 간의 합을 맞춰왔습니다. 지난 26일에는 트랙아웃을 마친 팀을 대상으로 첫 내부 투자심사위원회(투심위)가 열렸습니다. 앤틀러는 투심위를 통해 프리시드 투자금 2억원을 지원합니다. 탈락자는 다음 기수에 다시 지원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 3개월은 사업 아이템 고도화를 거치는데, 목표는 이르면 내년 1월 초에 열릴 데모데이입니다. 이때는 외부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기회를 얻습니다. 전체 과정이 종료되는 시기는 내년 1월입니다. 앤틀러는 다음달 초부터 컴퍼니 빌딩 프로그램 2기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이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