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세계 1위 사실상 확정
압도적인 파운드리 경쟁력
종합반도체기업 삼성·인텔 제쳐
대만 정부 지원·업력·노하우에
최첨단 기술력 갖춰
"고객 관리도 최고 수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급성장,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불황, 한때 '반도체 제국'으로 불렸던 인텔의 쇠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평가된다.
TSMC, 매출 세계 첫 1위
TSMC는 7일 "지난 9월 매출 2082억4800만 대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TSMC가 공개한 7~9월 매출을 합치면 6131억4300만 대만달러다. 8일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하면 27조487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48%, 증권사들의 컨센서스(추정치 평균, 6030억 대만달러)를 웃도는 수치다.삼성전자는 이날 3분기 잠정 매출 76조원을 공개했다. 반도체 부문 매출을 따로 공개하진 않았다. 증권사들은 잠정실적 발표 이후 삼성전자의 3분기 반도체 매출을 '23조3570억원~25조5230억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특히 서버 D램이 예상보다 부진했다"는 평가를 감안할 때 반도체 매출이 증권사 추정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인텔은 아직 3분기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다. 투자정보업체 '시킹알파'에 따르면 인텔의 3분기 매출 컨센서스는 154억9000만달러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22조원이다.
이변이 없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의 3분기 매출 순위는 TSMC, 삼성전자, 인텔의 순서가 확실시된다. TSMC가 삼성전자, 인텔을 제치고 분기 매출 기준 세계 1위에 오른 건 사상 처음이다. TSMC는 반도체 산업 중에서 파운드리만 한 우물만 판 반도체 기업이다. 반도체 관련 모든 것을 다 하는 '종합반도체기업' 삼성전자, 인텔과 비교해 핸디캡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파운드리 관련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영향이 크다.
대만 국력 모아 TSMC 지원
TSMC는 대만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보호하는 기업이다. ‘대만반도체생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국력을 총결집한 국민기업으로 시작했다.중국 출신으로 반도체 설계 경쟁력이 강한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에서 근무했던 모리스 창은 일찌감치 ‘설계와 생산의 분업화’를 예상했다. 1980년 대만 정부의 부름을 받아 국책 반도체연구소에서 일하다가 7년 뒤 TSMC를 창업했다. 2018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TSMC는 대만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을 바탕으로 연 50조원에 이르는 돈을 오로지 파운드리 관련 사업에만 쏟아붓는다. 43조원(2021년 기준)을 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에 나눠 투자한 삼성전자와 차이가 크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가 지난해 1월 인터뷰에서 "삼성이 TSMC를 상대하는 게 버겁다. 대만에 있는 최고 우수인력이 TSMC 간다. 삼성이 TSMC와 싸우는 게 아니라 '대만 전체'와 싸우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TSMC, 최첨단과 전통 공정 모두 강점
업력에서 나오는 기술력, 생산 능력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파운드리 사업은 7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미만 초미세공정과 10nm 이상의 '레거시(전통)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7nm 미만 공정에선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스마트폰, 서버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초소형 제품이 생산된다. 16nm, 28nm, 45nm 등으로 대표되는 레거시공정에선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DDI(디스플레이 구동칩), PMIC(전력반도체), 센서 등 자동차, TV, 등에 탑재되는 전통적인 칩이 주로 나온다.
TSMC는 초미세공정, 레거시공정 모두 강점이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TSMC의 7nm 미만 초미세공정 매출과 레거시 공정 매출 비중은 정확히 '반반'이다. 5nm, 3nm 등 초미세공정에선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세계 최초'를 다투고 있다.
이는 경쟁업체와의 차이를 만든다. 파운드리 세계 2위 삼성전자는 7nm 이하 초미세공정 중심이다. 세계 3위권인 대만 UMC, 글로벌파운드리 등은 초미세공정을 포기하고 레거시공정에만 주력한다.
최첨단부터 오래된 공정까지 모두 다루기 때문에 고객사가 많고, 시스템반도체 업황의 오르내림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객사 관리도 최고 수준
최근 AI, 5G 등의 확산으로 고성능 칩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최근 초미세공정에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이 파운드리업체들의 주요 고객사다. TSMC는 애플 물량을 독점하고 엔비디아와 퀄컴의 주문은 삼성전자와 양분하고 있다.고급 칩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자동차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레거시 칩 공급 부족'이 심화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본 게 TSMC다. TSMC는 레거시 공정과 관련해서도 중국 등에 공장을 확장하며 생산량 증대에 힘썼다. 고객사 관리도 뛰어나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TSMC의 고객사는 전 세계 8000~9000개에 이른다. 영세한 고객사들을 위해서 일정 생산능력(캐파)을 남겨둘 정도로 고객 관리에 신경을 쓴다. "작은 팹리스 업체나 학교 연구실에서 소량의 90nm 제품 등에 대해 맡겨도 TSMC는 최선을 다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생태계의 힘이다. 파운드리 산업의 앞 단계엔, 파운드리업체에 칩 생산을 맡기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가 있고, 뒷단엔 파운드리가 만든 칩을 가공하는 패키징(후공정) 업체가 있다. TSMC의 낙수효과로 대만엔 팹리스와 패키징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많다.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 '생태계'의 힘
대만 팹리스 경쟁력은 2018년 기준 미국(점유율 61.4%)에 이어 세계 2위(18.0%)다. 물량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설계, 생산하는 업체로서 중저가 제품에 강점이 있는 미디어텍,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문 노바텍 등이 대표적인 대만 팹리스다. 이들은 TSMC의 주요 고객사다. TSMC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팹리스의 제품 질도 좋아진다. 팹리스가 커지면 주문량이 늘어 TSMC의 매출도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패키징(후공정)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파운드리공정에서 미세공정 전환이 점점 어려워지고, 미세공정 전환으로 구현되는 성능 개선과 원가 절감 폭이 줄어들면서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쉽게 말해 파운드리에서 고성능·초소형 칩을 만드는 게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파운드리에서 생산된 칩을 모아 가공하고 최고의 성능을 뽑아내는 후공정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키징 시장 세계 1위는 대만 ASE다. SPIL을 포함해 PTI, KYEC, 칩모스, 칩본드 등도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만업체다. 한국 기업은 10위 권에 한 곳도 없다. 그나마 뿌리가 한국에 있는 미국계 암코(AMKOR)가 세계 2위로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다.
대만 후공정 업체들은 TSMC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팹리스들을 대만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3분기 뿐만 아니라 올해 4분기(10~12월)에도 이변이 없는 한 TSMC가 매출 기준 세계 1위 반도체기업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열린 사내 간담회에서 "4분기에 매출 1위 자리를 TSMC에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최대 20%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로 연결된다.
4분기에도 TSMC가 1위 차지할 듯
TSMC의 텃밭인 파운드리시장의 성장세는 꾸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TSMC 등 대만 파운드리업체가 주로 만드는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선 여전히 '공급 부족' 상태다. 경기 침체 때문에 '수요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여전히 애플, 엔비디아, 퀄컴, AMD 등 팹리스들의 최첨단 반도체 위탁생산 주문은 계속 TSMC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반도체 학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실적은 메모리반도체 가격 움직임에 크게 좌우된다"며 "메모리반도체 대비 시황에 덜 민감한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팹리스 등)의 매출 비중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