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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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노동조합이 2년 만에 또다시 파업에 나선다. 퇴직 후 75세까지만 차량 가격을 할인해주겠다는 회사 측 제안에 반발해서다. 1년이 넘는 차량 출고 대기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기아 노조는 11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최종 파업을 결의했다. 13일 두 시간 파업한 뒤 14일에는 네 시간 파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생산 특근도 전면 거부한다. 기아 노조는 지난해 10년 만에 파업 없이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기아 노조가 파업하는 이유는 ‘퇴직자 복지 축소’ 때문이다. 기아는 그동안 25년 이상 근무한 뒤 퇴직한 직원에게 차량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2년에 한 번씩 기아 차량을 구입할 때마다 평생 30%를 깎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는 앞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 우려가 커짐에 따라 할인 혜택 제공을 75세까지로 제한하는 한편 할인 주기는 3년으로 늘리고 할인율은 2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대신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과 함께 재직자 복지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합의안은 지난달 50세 이상 직원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회사는 휴가비 인상 등 추가 혜택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퇴직자 복지 때문에 파업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역대급' 임금 인상에도 파업…기아 퇴직자 복지 '새 뇌관'
13·14일 부분 파업·특근도 거부…"75세로 낮춰도 여전히 과해"

기아 노사 교섭단은 지난 8월 ‘역대급’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기본급 월 9만8000원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원 등을 담았다. 기본급을 제외하고도 20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타결되면 곧바로 1000만원가량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앞서 타결된 현대차 노사 합의안과 거의 같은 수준인 만큼 가결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발목을 잡은 것은 ‘퇴직자 복지 축소’ 조항이었다.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제공하던 차량 할인 조건을 강화한 데 대한 노조원의 불만이 커졌다. ‘평생 할인’을 ‘75세까지 할인’으로 바꾼 것이 문제였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보더라도 차량 할인 혜택 감소로 인한 노조원 손실이 1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퇴직 후 80세까지 계속 차를 바꾼다는 비현실적 가정에 따른 계산인데도 기존 혜택에서 후퇴했다는 점이 직원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퇴직자 복지가 축소되더라도 경쟁 업체보다 과도하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세계 1위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퇴직자 차량 할인이 전혀 없다. 도요타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858만엔(약 8500만원) 수준이다. 기아는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100만원으로 도요타보다 20% 가까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으로 자동차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직자도 아니고 퇴직자 복지 때문에 파업한다는 것은 극심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기아 노조가 퇴직자 복지 축소에 파업까지 나선 배경에는 ‘늙어가는’ 인력 구조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0세 이상 직원 비중이 절반을 웃돌 정도로 고령화하면서 ‘나도 곧 퇴직자’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퇴직자가 늘어날수록 노조 성향이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오히려 ‘퇴직자 복지’가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포드 등 자동차 빅3는 과거 퇴직자 의료보험 비용이 과도해 부도 상황까지 몰린 뒤에야 해당 조항을 모두 폐지했다.

기아 노조의 파업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지금도 쏘렌토(18개월) 스포티지(18개월) 카니발(16개월) EV6(14개월) K5(14개월) 등은 출고 대기가 1년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외면받으면 일자리 자체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