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허문찬 기자
CJ제일제당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뛰어든 2012년만 해도 한식은 해외에서 아시아 지역이나 미국·유럽의 한인들 위주로 소비되는 정도였다. CJ제일제당의 미국 식품 영업 담당자가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만나려면 10번 이상 메시지를 남겨야 겨우 미팅이 성사되던 냉혹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때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전 세계인이 적어도 일주일에 1회 이상 한식을 먹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의 이런 선견지명은 현실이 됐다. 가수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국 대중문화가 대대적 인기를 끌면서 세계 소비자들이 자연스레 한국 식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글로벌 식품 사업에 투자해온 CJ제일제당은 ‘K컬처’ 인기와 함께 최근 괄목할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CJ제일제당의 글로벌 식품 사업의 성장 속도는 한식의 확산 속도와 닮았다. 한식 세계화 ‘선봉장’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비비고’ 앞세워 세계로

CJ제일제당은 글로벌 브랜드 비비고를 앞세워 전 세계 식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만 가공식품 매출 4조4000억원을 올렸다. 해외 매출만으로 단숨에 국내 식품업계 2위에 오를 수 있는 규모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강달러 등 각종 악재가 덮친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증가세는 계속됐다. 전년 동기 대비 18% 늘어난 2조4000억원을 나타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브랜드는 한식 세계화를 선도한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비고는 현재 전 세계 70여개국에 직접 진출했다. 하와이 마우이섬의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비비고 만두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CJ제일제당이 해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은 단일 브랜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J제일제당은 2011년 CJ그룹 외식 계열사 CJ푸드빌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 비비고를 론칭했다. 종전까지는 개별 브랜드로 해외에서 판매되던 모든 한식 제품의 브랜드명을 비비고로 통일했다.

2013년부터 CJ제일제당이 해외 가공식품 시장 공략에 주력하면서 비비고 브랜드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이 선택한 전략제품은 만두였다. 소비자들이 비비고를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K가공식품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게끔 전략을 수립하고, 간편식의 대명사 지위를 노렸다.

그해 말 국내에서 히트상품 ‘비비고 왕교자’가 출시됐다. 미국에서는 ‘비비고 미니완탕’에 집중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중국 만두를 뜻하는 ‘덤플링’이 아닌 한국어 ‘만두’라고 표기한 제품을 지속해서 드러내 한국식 만두와 식문화에 대한 친밀도를 확보해나갔다”고 설명했다.

슈완스 인수로 미국 시장 안착

CJ제일제당이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내 유력 유통채널을 확보한 덕분이다. 2019년 초 미국 2위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하면서 대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성과는 슈완스 인수 전후로 나뉜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의 식품 매출 중 절반에 가까운 46%가 해외에서 나왔다. 슈완스 인수 직전인 2018년 해외 비중이 14%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증가다. 미국 식품 매출 역시 같은 기간 3649억원에서 3조3743억원으로 10배 이상 불어났다.

CJ제일제당은 인수 결정 직후부터 기존 미국 식품 사업과 슈완스가 가진 사업 역량의 시너지 극대화에 집중했다. 인수 이듬해인 2020년, 양사의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유통망 통합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 미국 내 3만개 이상 점포에서 비비고를 비롯한 아시안 푸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됐다.

슈완스도 일본의 식품사 아지노모토를 제치고 미국 아시안 푸드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매출뿐만 아니라 브랜드 입지에도 슈완스 인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美·亞 넘어 유럽으로

CJ제일제당은 주력 사업지역인 미국 이외에 아시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일본, 베트남 3개국에서만 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만두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중국에서도 한국식 비비고 만두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는 음용 식초 ‘미초’를 연 매출 1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현지 만두 기업인 ‘교자기획’도 2019년 인수했다.

이제 CJ제일제당의 시선은 유럽을 향하고 있다. 만두, 롤, 딤섬이 포함된 ‘랩 푸드’ 카테고리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목표다. 최은석 CJ제일제당 사장은 지난 7월 독일에서 ‘유럽 중장기 성장 전략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두와 가공 밥, 한식 치킨 등 글로벌 전략제품을 앞세워 유럽 식품 사업 매출을 2027년까지 5000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CJ제일제당의 올해 유럽 식품 매출은 진출 4년 만에 약 4.5배로 성장한 6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CJ제일제당은 지난 5월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영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생산거점도 확보했다. 2018년 인수한 독일 냉동식품 기업 마인프로스트와 올해 초 베트남 호치민시에 키즈나 공장을 세웠다.

해외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글로벌 투 글로벌’의 첫 모델이다. 최은석 사장은 “유럽을 제외하고는 CJ제일제당의 글로벌 전략이 완성되지 않는다”며 “CJ제일제당의 ‘K푸드 세계 제패기’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