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와 회사채 금리가 21일 서울 시내 한 금융정보회사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전날 회사채(AA-등급) 3년물과 국고채 3년물 간 금리차(신용스프레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허문찬 기자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가 21일 서울 시내 한 금융정보회사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전날 회사채(AA-등급) 3년물과 국고채 3년물 간 금리차(신용스프레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허문찬 기자
SK그룹과 롯데그룹, 효성그룹, 무림그룹 계열사들도 두 달 전부터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자 이들 기업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지원을 받아 자금을 융통했다. 그만큼 자금시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는 의미다. '흑자도산'의 그림자가 대기업 발치까지 다가온 것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50조원 넘는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꺼냈지만 "이 지경될 때까지 뭐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은 오는 27일 무림페이퍼(발행액 500억원) 코스맥스(200억원) 한신건영(150억원) 등이 발행한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찍는다. P-CBO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회사채와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제공해 발행하는 증권이다.

지난 8월 26일에는 효성화학(1000억원) 코리아세븐(900억원) 대우건설(800억원) 여천NCC(700억원) 풀무원식품(700억원) 휴비스(500억원) 롯데건설(300억원) 깨끗한나라(150억원) 등이 P-CBO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 9월 30일에는 효성중공업(700억원) SK에코플랜트(600억원) 다우데이타(500억원) 대우건설(200억원) 코리아세븐(100억원) 등이 P-CBO로 자금을 마련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팜한농도 P-CBO를 통한 자금조달을 타진한 바 있다.

P-CBO는 통상 중소기업이나 자금 사정이 나빠진 기업들이 즐겨 쓰는 자금조달 통로다. 대기업들마저 P-CBO 발행에 나선 것은 그만큼 자금시장이 경색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지경 될 때까지 뭐 했나"…대기업들 줄줄이 'SOS'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3일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 회의에서 자금시장 불안 심리를 막기 위해 기존 시장안정 조치에 더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의 매입 한도를 기존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2배로 확대한다. 여기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어려움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대해 한국증권금융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3조원 규모 유동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부동산 PF 지원을 위해 주택도시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을 10조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기업 계열사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신호가 두 달 전부터 감지됐지만 정부가 관망만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자금시장 상황이 이만큼 나빠질 때까지 정부는 뭘 했느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