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마련한 집, 후회합니다"…빈곤층 전락하는 2030 [대한민국 빚 리포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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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투자 열기 속 2030 부채 증가
부동산시장 위축, 대출금리 상승에 부실 현실화
"청년 금융지원정책 '자산 증식'에만 초점, 보완해야"
범정부 차원 청년정책 추진…"희망의 다리 놓을 것"
부동산시장 위축, 대출금리 상승에 부실 현실화
"청년 금융지원정책 '자산 증식'에만 초점, 보완해야"
범정부 차원 청년정책 추진…"희망의 다리 놓을 것"
가계부채 1900조 시대. 가계가 진 빚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인 나라. 대한민국이 빚에 신음하고 있다. 주요국의 통화긴축과 함께 시장금리가 치솟자 가계의 부채 상황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 하지만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금리 상승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인데다 전 세계적인 고(高)물가 기조에 경기 침체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한경닷컴은 빚 부담에 취약층으로 전락한 2030, 청년과 노년 사이에 껴 빚 폭탄을 안고 있는 4050, 은퇴와 함께 파산절벽에 내몰리는 6070세대의 부채 상황을 점검하고 해결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재테크라고는 예·적금밖에 모르다가 동학개미운동 붐이 일면서 주식을 시작했습니다. 목표 수익률의 3배가 웃도는 수익을 내면서 투자 재미를 느꼈고 코인에도 투자해 지금은 주식과 코인 투자 비율이 3대 7정도입니다.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 비상금 대출 등을 모두 동원해 투자금을 늘렸지만 지금은 1억5000만원 손해를 본 상태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돈이라지만 허무함, 자괴감이 들고 무기력해져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중소기업에 다니는 34세 직장인)
#. "6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하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 서울 외곽에 집을 샀습니다. 대출 규모가 워낙 커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공공기관에 다니는 여자친구와 함께 착실히 갚으면 된다고 생각해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납니다. 집값은 연일 떨어지고 치솟는 금리에 대출 이자 부담은 커지면서 눈 앞이 캄캄합니다. 혼자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데, 여자친구는 자꾸 결혼을 미루자네요."(대기업에 다니는 36세 직장인)
#. "어렸을때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부모님도 아프셔서 제가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집 값이 치솟으면서 더 있다간 보금자리를 못 마련할 것 같아 영끌해 경기도에 20평대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선택을 후회합니다. 주말에는 배달 아르바이트, 심야 대리기사도 뛰면서 어두운 터널에 갇힌 기분이지만 매주 복권을 사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29세 10급 공무원)
#"주식 코인…주변을 보니 저만 안하더군요.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알바)로 모은 돈에다 대학생 신분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프로그램을 이용해 마련한 자금 모두 넣었지만, 지금 4000만원 손해인 상황입니다. 취업 준비는 커녕 알바를 또 하고 있습니다. 알바 인생을 끝내는 날이 올까요."(28세 취업준비생)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2030세대, M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한 Z세대)로 대표되는 이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부동산, 주식시장 등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들은 자산을 모으지 못하면 '벼락거지'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취급을 받았다. 이들은 젊음이라는 패기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역대 가장 많은 빚을 진 2030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지금은 부동산 및 증시·코인 폭락, 금리 상승과 함께 빚의 덫에 걸리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만에 2배 증가
3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는 20~30대 젊은층이 최근 5년 사이 약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7월 기준 20~39세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24만5711명이다. 복지 시설 등에 입소한 인원을 제외하면 23만6744명의 20~30대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고 있다. 이는 5년 전인 2017년 16만2750명과 비교하면 51% 증가한 수치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30~50% 이하로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선정될 수 있다.
경기 위축과 함께 일자리 찾기는 힘들어지고 금리 상승 속 빚 부담은 점차 늘면서 청년층의 빈곤층 탈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30대 이하 비중은 27.3%로 집계됐다. 해당 비중은 지난 2018년 말 25.6%에서 2021년 말 27.1%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20~30대의 부채가 늘어난 기폭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식시장이 활황을 맞으면서다. 증시 활황기로 불렸던 지난해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6월 코스피지수는 역사상 처음으로 3300선을 뚫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주요국의 완화적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으로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날 때였다. 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주식정보를 제공하는 TV프로그램들이 줄지어 생겼고 재야고수라 불리는 이들이 성공담을 쏟아냈다. 여기에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크래프톤 등 대형 기업들이 잇따라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거 증시로 흘러들어왔다.
개인투자자들 중에서도 특히 정보 취득에 능한 2030의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공모주에 대한 2030의 1인당 청약금액은 2억6700만원이었다. 직전해인 2020년(1억1400만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적어 자금력이 부족한 2030이 대출 등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이른바 영끌로 자금 마련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년들의 빚투(빚내서 투자)는 금융투자협회 통계에서도 볼 수 있다.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주요 증권사의 2030세대 신용 융자 잔액은 1조9000억원이었으나, 불과 1년 만에(2021년 6월) 3조6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신용융자란 증권사가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매대금을 빌려주는, 일종의 대출이다. "2030이 빚을 내서라도 주식에 투자했던 이유는 대부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죠."(주식투자 3년차·기업 마케터)
증시에서 투자 재미를 본 2030은 가상화폐 시장에도 몰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만에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15배 이상 폭등했다. 지난해 말 가상화폐 시장은 우리나라 한해 국내총생산(GDP)의 1.5배나 되는 3조 달러 규모까지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변동성과 위험성을 동반한 가상화폐 시장은 빠르게 거품이 빠졌다. 테라·루나폭락사태를 시작으로 가상화폐 시장은 1조 달러 미만으로 쪼그라들었고 33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지수는 연저점을 경신하며 2100선까지 밀렸다.
금리상승 충격 그대로…전세대출 2030 차주는 61.6%
여기에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2030은 빚의 늪에 빠졌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 상단은 7%를 돌파하기 시작했다.2030세대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세대출은 만기가 짧아 대부분 변동금리를 선택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국내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은 차주 137만6802명 중 2030대 차주는 84만8027명(20대 차주 30만6013명·30대 차주 54만2014명)으로 전체의 61.6%에 달했다. 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55.6%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연 3% 금리로 2억원 가량을 빌린 경우 매달 은행에 납입해야 하는 이자는 50만원 수준이었지만, 연 7% 금리가 적용되면 월 납입 이자는 117만원 수준이 된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이자가 2배 이상 불어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20대의 월평균 소득은 221만원, 30대는 335만원 수준이었다. 소득의 절반 혹은 3분의 1을 이자로 내야하는 셈이다.
전세대출에서 청년 세대의 부실은 이미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세자금보증 가입자가 은행 전세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대신 공사가 갚아 준 금액은 1727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53.4%인 922억원은 2030 차주의 대출이었다.
금융권에선 전세대출 금리가 내년에도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4.5~4.75%로 올리고 한국은행도 또 한번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자금력이 부족한 2030세대는 영끌 혹은 빚투, 전세 레버리지를 통한 갭투자 방식으로 집을 사들이기도 했다"며 "이들은 코인, 주식에 이어 부동산까지 하락기를 겪으면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빚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부채주의'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청년을 위한 전세대출 지원 정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관련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2030세대의 전세자금대출 지원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2030의 코인 빚을 대신 갚아주는 청년 신속채무조정 특례(이하 청년특례)제도를 발표한 이후 특정 세대에만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제기된 만큼, 청년을 타깃으로 금융지원정책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청년도약계좌'의 내년 출시를 위해 제도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청년도약계좌 가입 대상은 만 19~34세 청년 중 개인소득 6000만원 이하, 가구소득 중위 180%(2022년 기준 1인 가구 약 월 350만원) 이하 기준을 충족하는 청년이다.
청년들이 이 계좌에 매월 40만~70만원을 5년간 납입하면 정부가 납입액에 비례해 최대 6%의 기여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은행 우대금리와 비과세 혜택까지 더하면 5년 만기시 청년들이 5000만원 가량의 목돈을 쥘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그러나 해당 제도에 대해 소요 예산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세대별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일회성 지원 정책이 아닌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들을 위한 정부의 금융지원정책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초점이 '자산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대출금 제공 형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오 연구위원은 "청년층은 장래소득의 실현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초장기부채를 보유하게 되면 경제 상황과 변화에 따라 상환 부담이 크게 변동할 수 밖에 없다"며 "청년층에 대한 금융지원은 중장기적 시계에서 미래소득흐름과 경제여건 등을 체계적인 기준 하에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윤석열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청년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단계에 따라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맞춤형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주택의 분양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주 골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양질의 일자리 찾기가 어렵고 집값 상승으로 안정적인 주거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등 청년들이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무게가 가볍지 않다"며 "청년의 꿈을 응원하는 희망의 다리를 놓는 것을 청년정책의 목표로 삼겠다"고 말했다.(계속)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