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TV 출하량 10년 내 최저 전망
삼성·LG전자 TV사업 적자…4분기 실적도 '막막'
지난 2일 서울 시내 한 가전매장에서 만난 50대 직원 A씨는 이같이 말하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손님이 붐비지 않는 평일 낮 한산한 시간임을 감안해도 매장을 찾는 고객은 확실히 적었다. 너른 매장에 3~4명 남짓한 고객이 스마트폰, 냉장고, 밥솥 등 주방·소형가전을 둘러볼 뿐이었다. TV를 보러 온 고객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A씨는 "오늘이 평일이라 손님이 없는 게 아니다. 주말 손님도 많이 줄었다"면서 "올해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전반적으로 매출이 떨어졌는데 체감으로 TV가 가장 타격이 크다"며 "필수 가전이라지만 세탁기나 냉장고에 비하면 TV는 선택사항이다. 돈이 없는데 굳이 TV를 바꾸겠느냐"고 말했다.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일했다는 A씨는 올해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거셌던 지난해보다도 훨씬 힘들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원자재가 부족하지 않았나. '지금 안 사면 (제품 수령에) 오래 걸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TV를 더 샀다"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니 TV에 투자하는 측면도 있었다. 올해가 코로나19 때를 포함해 지난 10년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프리미엄 가전매장도 '시름'…"마케팅 특수 없다"
고가 제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가전매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같은날 낮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프리미엄 가전매장에서 만난 직원 B씨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손님이 꽤 줄었다. 고가 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한 편이었는데 프리미엄 TV도 보편화되다 보니 교체 수요가 뜸해진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이 매장은 지난달 가을 정기세일을 진행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선 '코리아세일페스타'를 맞아 프로모션을 벌이고 있다. 오는 20일 개막하는 월드컵은 전통적인 'TV 특수' 시즌이지만, B씨는 "카타르 월드컵을 겨냥한 할인 행사도 실시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마케팅 효과가 느껴지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TV 산업이 경기 하강 국면을 타고 빠르게 주저앉고 있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앞서 일시적으로 누렸던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 폭발 현상)까지 사라지면서 TV 수요가 급감했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의 올해 1~10월 누적 TV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줄었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하이마트도 올해 TV 매출이 작년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TV 판매량이 소폭 증가했지만, 올해는 경기 불황으로 가전 교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TV 시장이 직격탄을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TV 시장 전체가 혹한기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은 최근 10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은 작년보다 3.8% 감소한 2억2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다.
TV 수요 둔화에 적자 행진 줄이어…"내년도 어렵다"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는 기업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세계 1~3위 업체 모두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TV 판매 세계 1위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부문에서 영업이익 2500억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7600억원)보다 67% 급감했다. TV, 생활가전, 의료기기 실적을 합산한 수치인데 TV만 떼어놓고 보면 적자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위 LG전자도 TV 사업에서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올해 2분기 영업손실 189억원으로 7년 만에 적자전환했고 3분기(영업손실 554억원)에는 적자 폭이 더 늘어났다.
3위 업체인 중국 TCL은 올 3분기 영업손실 3억8000만위안(약 745억원)을 기록했다. TCL도 TV 사업에서 적자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TV 시장 한파는 더 짙어질 전망이다. 당장 4분기도 막막하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최대 성수기에 올해는 카타르 월드컵까지 예정돼 있지만 위축된 소비 심리가 살아나기엔 고물가·고금리가 발목을 잡고 있다. 불어난 마케팅 비용을 매출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전업체들은 적자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김영무 삼성전자 VD사업부 상무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후 가진 콘퍼런스콜에서 "4분기 TV 시장은 연말 성수기, 스포츠 이벤트 개최 영향으로 3분기보다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여러 거시경제 요인으로 인한 리스크가 공존해 실현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글로벌 TV 출하량도 올해보다 다시 0.7% 감소한 2억100만대로 예측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글로벌 TV 출하량이 내년 1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TV 출하량은 내년 2분기 이후에나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 둔화로 부진한 실적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