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가죽 고집하던 에르메스도 비건패션에 빠졌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같은 최상위 명품 기업들에도 컨셔스 패션은 화두다. 동물 보호, 친환경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동물 가죽을 사용한 제품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럭셔리·패션·뷰티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하이엔드급 명품 브랜드들이 컨셔스 패션 제작에 동참하면서 이 트렌드는 더욱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건 제품 내놓는 명품

동물가죽 고집하던 에르메스도 비건패션에 빠졌다
최근 컨셔스 제품을 선보인 곳 중 특히 눈길을 끈 곳은 에르메스다. 오랜 기간 뛰어난 가죽 품질을 자랑해왔던 에르메스는 지난해 비건 가죽을 활용한 ‘빅토리아 백’을 선보였다. 제품에 사용된 버섯 소재 가죽의 이름은 ‘실바니아’다.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해 제조했다. 이 제품은 석유나 동물 소재 제품에 비해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 배출량이 적다.

에르메스는 그간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가운데에서도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동물 보호에 반하는 행보로 비판받기도 했다. 2015년엔 글로벌 동물보호단체 ‘페타’가 에르메스에 가죽을 납품하는 농장에서 악어가 잔인하게 도살되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에르메스를 직격했다. 당시 ‘버킨백’에 영감을 준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은 “에르메스 가방에 내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샤넬은 2018년 악어와 도마뱀 등 희귀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의류와 장신구를 제작하는 데 동물 털과 악어, 도마뱀, 뱀 등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루이비통과 구찌는 친환경 스니커즈 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재활용 소재와 바이오 기반 소재를 결합해 제조한 스니커즈 ‘찰리’를 내놨다. 아웃솔은 옥수수 기반 바이오플라스틱인 바이오폴리올리로 만들어졌다. 밑창에는 재활용 고무가 사용됐다. 구찌도 같은 해 친환경 신소재인 ‘데메트라’를 활용한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데메트라는 지속·재생 가능한 바이오 자원에서 유래한 비동물성 원료로 만든 소재다. 그동안 개발됐던 다른 신소재들과 달리 확장성과 생산량에 제한이 없는 게 큰 장점으로 거론된다.

유명인들이 잇따라 선택한 친환경 신발 브랜드도 있다. 면 또는 고무 대신 사탕수수 등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신발을 제조하는 ‘올버즈’가 그렇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등이 올버즈 신발을 신으면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신발’로 유명해졌다.

가치소비가 폭발시킨 친환경 패션

패션 브랜드들이 친환경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이유는 의류 구매력이 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가치소비와 미닝아웃(자신의 신념을 소비로 드러내는 것) 트렌드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MZ세대 소비자들에게 소비라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연설 시 친환경 의류 브랜드 옷을 입고 등장해 팬들이 열광한 것도 이런 맥락과 연관이 깊다. BTS는 이때 연설에서 기후변화를 화두로 던졌다.

연단에는 코오롱FnC의 친환경 브랜드 ‘래코드’를 입고 등장했다. 래코드는 소각 예정 3년 차 재고뿐 아니라 버려지는 카시트, 납품 안 된 에어백 등 다양한 산업 폐자재를 활용해 만든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지고 친환경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업계도 자연스럽게 관련 소재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특히 패션업계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업종이다 보니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빠르게 친환경 마케팅을 이어 나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