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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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송년회도 취소됐습니다. 회식비도 삭감할 만큼 비상 상황입니다.”

요즘 만나는 기업인들의 얼굴은 어둡다. 엄살이 아니다.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은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프린터 복사용지 등 소모품비를 50% 절감하라고 주문했다. KB증권은 만 40세인 1982년생부터 희망퇴직을 받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은 리서치·법인본부를 폐지하고 소속 인원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선박수주 반토막, 무역 적자…지표 보기가 겁난다

“내년 기업 실적·수출·투자 꺾인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MM의 2023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조8074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 전망치(10조993억원)에 비해 72.2% 줄어든 수치다. 팬오션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도 올해보다 6.55% 감소한 7513억원으로 나타났다.

해운사 실적 전망이 암울해진 것은 글로벌 해상운임 추락과 관계가 깊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3일 전주보다 16.2포인트 내린 1107.09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인 올해 1월 7일(5109.6)과 비교해 78.3%나 떨어졌다. 내년에는 600~700선까지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해상운송료가 빠지는 것은 제품 수출·수입 증가율이 주춤해져서다. 한국은행은 내년 세계교역량 증가율을 2.3%로 내다봤다. 2021년(10.1%)의 4분의 1, 올해(4.2%)의 절반 수준이다. 해상운송료가 하락하면 해운사의 선박 발주량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액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조선업계의 선박 수주액은 전년 대비 42.9% 적은 220억달러로 예측됐다. 한국의 선박 수주액은 2021년 443억달러, 2022년 385억달러 등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나빠진 경기 흐름은 거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기업 실적과 밀접한 수출·투자 전망이 밝지 않다. 한국무역협회는 내년 수출이 올해보다 4% 감소하고 무역수지는 138억달러 적자를 낼 것으로 봤다. 설비투자도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한국의 설비투자 증가율을 -2.8%로 제시했다. 올해(한은 전망 -2.0%)에 이어 2년 연속 설비투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얇아진 지갑에…고용 칼바람

산업계의 위기는 직장인의 살림살이와 직결된다. 가뜩이나 직장인의 주머니 사정은 올 들어 계속 나빠졌다. 지난 9월 모든 근로자의 평균 실질임금은 375만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9만원 감소했다. 지난 4월부터 6개월째 감소세다. 실질임금 감소율은 4월 2.0%, 5월 0.3%, 6월 1.1%, 7월 2.2%, 8월 0.6%, 9월 2.3%를 기록했다. 6개월째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소비자물가(한은 전망 5.1%)가 고공행진하면서 물가를 고려한 실질임금이 줄어든 결과다.

여기에 희망퇴직 칼바람도 산업계를 휩쓸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롯데면세점 HMM 등 유통·제조업체는 물론 우리은행 농협은행 KB증권 한국기업평가 등 금융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재취업도 여의찮은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은은 내년도 취업자 증가폭을 각각 8만 명, 9만 명으로 내다봤다. 올해 취업자 증가폭 예상치인 80만 명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19를 겪은 2020년(21만8000명 감소) 후 최악의 ‘고용 한파’가 닥칠 전망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