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마루제조 공장. 업계 제공
인천의 한 마루제조 공장. 업계 제공
마루 제조용 합판의 원산지 기준을 놓고 3년째 이어진 마루 업계와 과세 당국의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마루 업계에선 “부당한 관세 추징으로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될 경우 영세 업체들의 줄도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7일 마루 업계에 따르면 마루 제조용 합판은 2016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협정관세 적용 이후 관세율표에 명시된 ‘88개 열대산 목재’인 경우 일반관세(8~10%)를, ‘기타 열대산 목재’면 협정관세(5%)를 적용받고 있다. 한·아세안 FTA 발효 이후 마루 업계는 협정관세를 적용받기 위해 88개 열대산 목재 목록에 없는 인도네시아산 ‘메란티 다운 르바르’라는 수종의 합판을 수입했다.

2019년 말 마루 업계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인천세관이 마루 업계가 수입해 써온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이 일반관세 대상임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인천세관은 이 수종이 88개 열대산 목재 목록에 있는 ‘메란티 바카우’란 수종과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의 합판을 수입해 쓴 마루 업체는 한·아세안 FTA 발효 이후 납부하지 않은 일반관세와 협정관세의 차액을 추가 납부하라고 통보했다.
마루제조회사 창고에 보관된 인도네시아 에르나사의 마루제조용 합판 번들. 업계 제공
마루제조회사 창고에 보관된 인도네시아 에르나사의 마루제조용 합판 번들. 업계 제공
10여 개 마루 업체는 하루아침에 3~5%의 추가 관세와 가산세 등을 떠안게 됐다. 마루 업계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내야 할 5년 치 관세는 약 300억원에 이른다. 업체당 수십억원의 부담을 떠안게 된 만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일부 소규모 업체는 이미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루 업계는 해당 수종이 메란티 바카우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 9월 자국의 수출용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의 합판 27개를 샘플 분석하고 “해당 샘플에는 메란티 바카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이 결과는 외교부와 산림청, 관세청에도 전달됐다. 이어 같은 해 12월 과세전적부심사가 열려 재조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과세 당국은 지난해 6월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은 열대산 목재가 맞다“며 과세 결정을 최종 통보했다.

이에 불복한 마루 업계는 작년 9월부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해 현재 수십여 건의 관련 심리가 진행 중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인천세관의 의견진술자료에 따르면 인천세관은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쇼레아 속(屬)이고 쇼레아 속은 열대산 목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메란티 다운 르바르는 88개 열대산 목재 중 하나인 ‘다크레드 메란티’의 지역명이고 업계에서도 다크레드 메란티란 이름으로 메란티 다운 르바르 수종 제품이 거래된 사례가 있어 일반과세가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마루 업계는 “속 단위로 수종을 특정해 품목분류 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메란티 다운 르바르와 메란티 바카우가 동일한 수종이 아니란 게 드러나자 전혀 새로운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조세 심판 최종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마루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만약 조세 심판 청구가 기각될 경우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윤형운 한국목재공학회 이사는 “부당한 과세 탓에 원자재 가격 폭등, 고환율 등으로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마루 업계에서 폐업이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현재 심리 중인 사항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