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태어난 인공지능(AI)에 세상 모든 개발자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인간이 짜놓은 듯한 코드를 자동으로 생성해서였습니다. 오픈AI가 내놓은 대화형 AI인 챗GPT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2개월이 된 지금은 개발자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코드 작성을 넘어 의료, 경영 등 전문직의 영토를 넘보고 있어서입니다.

美 MBA, 변호사, 의사 시험 섭렵한 AI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맥 혁신경영연구소의 크리스천 터비시 교수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챗GPT가 와튼 MBA를 수료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터비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챗GPT는 와튼스쿨 MBA의 필수 교과목인 '운영관리' 기말시험에서 'B-'에서 'B' 학점 사이를 받았습니다.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설명입니다.
크리스천 터비시 와튼스쿨 교수가 지난 17일 챗GPT에 MBA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를 연구한 논문 초록. 자료=와튼스쿨
크리스천 터비시 와튼스쿨 교수가 지난 17일 챗GPT에 MBA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를 연구한 논문 초록. 자료=와튼스쿨
챗GPT는 인공지능 개발업체 오픈AI가 2020년 선보인 대화형 AI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대화형 AI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뒤 5일 만에 시범서비스 이용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터바시 교수 역시 놀랐습니다. 와튼스쿨이 어떤 곳입니까. 미국 최초의 경영전문대학원(MBA)이자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곳입니다. 비즈니스위크의 세계 MBA 랭킹에서 10년 동안 1위를 지켰고, 파이낸셜타임스(FT) 순위에서도 9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 명문 MBA의 기말시험을 무난하게 치렀다는 설명입니다.

터비시 교수는 “챗GPT가 금융 애널리스트, 컨설턴트 등 고임금 지식노동자의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며 "운영관리의 기초 문제와 생산 공정과 관련한 분석 문제를 비교적 잘 풀었고, 답을 맞혔을 뿐 아니라 설명도 완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답을 찾지 못한 경우에도 인간이 힌트를 주면 스스로 이를 수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챗GPT는 비교적 간단한 계산 문제에선 실수하고, 고급 심화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터비시 교수는 MBA의 시험정책과 커리큘럼 설계에 있어 AI와의 협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습니다.

터비시 교수의 말이 허풍은 아닙니다. 앞서 챗GPT가 의사 면허 시험도 거뜬히 통과할 거란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의료 스타트업 안지블헬스는 챗GPT를 활용해 지난달 19일 미국 의사 면허시험(USMLE)을 치렀습니다. USMLE은 기초 과학, 임상, 의료 관리 및 의사 윤리 등에 대한 과목이 있고 총 3단계로 나뉩니다.

챗GPT는 1차 시험 주관식에서 정답률 68%를 기록했습니다. 2차는 58%, 3차는 62%에 달했습니다. 객관식 정답률도 1~3차 각 55%, 59%, 61%를 기록했습니다. 안지블헬스 연구원들은 "챗GPT의 정답과 해설의 연관성도 90%를 넘겼다"며 "인간 학습자를 보조하는 데에 충분한 성능을 지녔다"고 분석했습니다.

변호사 시험에서도 강점을 보였습니다. 지난달 31일 다니엘 캇츠 시카고 켄트대 법학 교수와 마이클 보마리토 237벤처스 CEO가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챗GPT는 미국 변호사 시험(Bar exam)의 객관식 문제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 50%를 넘겼습니다. 두 연구자는 "다음 AI 모델은 충분히 변호사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와튼스쿨의 에단 몰릭 교수는 SNS에 이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하며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가르치는 데 챗GPT가 적합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반대 의견도 나옵니다. 뉴욕시 교육부는 지난 6일 공립학교에서 챗GPT를 사용하는 걸 금지했습니다. 빠르고 쉬운 답변을 제공하지만,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데엔 무용지물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건 챗GPT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걸 방증한 사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무기는 '오픈AI'

탁월한 성능을 먼저 알아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를 '찜'했습니다. 아마존, 구글과의 경쟁에서 앞서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MS는 AI 업체인 오픈AI에 수년간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MS는 “AI 혁신에 속도를 내기 위해 수년간 오픈AI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23일 발표했습니다.


투자금은 약 100억달러(약 12조 3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1만여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는데 AI에 너무 큰 돈을 쓴다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하지만 성장세를 보면 투자금이 적어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약 290억달러(37조원)에 육박합니다. 2년 전에는 140억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동안 기업가치가 2배 이상 불어난 것입니다.

오픈AI는 2015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프로그래머 겸 투자자인 샘 앨트먼 전 와이콤비네이터 사장 등이 다른 투자자와 함께 세운 AI 기술 업체입니다. 레이드 호프만 링크트인 창업자,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인도 정보기술(IT) 업체인 인포시스 등이 초기 자금을 댔습니다. 설립 후 비영리 기관을 자처하다가 2019년 영리 기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달리(DALL-E)’가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미지와 텍스트를 입력하면 화풍, 그림자,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을 분석한 뒤 주변 배경을 알아서 만들어준다.  오픈AI 제공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달리(DALL-E)’가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미지와 텍스트를 입력하면 화풍, 그림자,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을 분석한 뒤 주변 배경을 알아서 만들어준다. 오픈AI 제공
하지만 오픈AI의 성과를 보면 투자금이 적어 보입니다. 오픈AI는 지난해 4월 그림을 그리는 AI인 ‘달리 2’를 선보였다. 달리 2는 또 다른 AI 이미지 생성기인 미드저니와 함께 미술계에서 AI 그림의 예술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챗GPT'를 출시했습니다.

오픈AI에 대한 MS의 투자는 2019년, 2021년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2019년엔 10억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오픈AI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독점했습니다. 2021년 계약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MS는 “자사 제품을 통해 오픈AI의 AI 모델을 배포하겠다”며 자사 소프트웨어 전반에 AI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 발짝 다가온 AI의 시대, 수혜기업은?

당장 AI 접목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사업은 MS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입니다. MS는 최근 달리2와 같은 AI 모델을 탑재한 ‘애저 오픈AI 서비스’를 출시했다. 아누라그 라나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이번 투자는 MS가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와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업계 2위인 애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1%로 1위인 AWS(시장 점유율 34%)를 뒤쫓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과의 경쟁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애널리스트는 “MS의 검색엔진인 ‘빙’의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MS는 검색 기능과 언어 모델을 개선해 구글의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려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AI 하나가 1만명 대체한다"…세계 최고 MBA 시험 통과한 인공지능 [글로벌 핫이슈]
빅테크의 AI 전쟁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기업도 있습니다.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입니다. 최첨단 AI를 작동하기 위해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수입니다. 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꽉 잡고 있습니다. 챗GPT도 엔비디아의 GPU 제품인 'A100' 칩을 통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H100은 AI 성능을 더 확장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투자전문매체 모틀리 풀에 따르면 H100이 챗GPT에 적용되면 습득 기능은 기존보다 9배, 추론 속도는 30배 늘어날 거란 설명입니다.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대형 투자은행들이 연달아 엔비디아를 매수하라고 권유하는 이유입니다. AI의 성장이 가속화될 수록, 엔비디아의 성장세도 가팔라질 거라는 게 공통 의견입니다.

파운드리 업체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도 '대(大) AI의 시대'에 대한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TSMC와 네덜란드의 ASML이 유력 후보입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신형 GPU 생산을 TSMC에 맡긴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TSMC는 지난해 6월 ASML로부터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ASML은 최첨단 EUV 노광장비를 1년 동안 50여대밖에 생산하지 않습니다. 희소한 장비인 만큼 가격도 1대에 5000억원을 넘길 정도입니다.

AI용 GPU를 개발하는 엔비디아, 위탁생산하는 TSMC, 제조 장비를 공급하는 ASML이 올해 반등할 거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입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