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쓰러진다면… 테슬라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달 초 테슬라 투자자와 팬들은 한 뉴스에 섬뜩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법정에서 “허리통증이 상당히 심하고 밤잠을 설쳤다”는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이 한마디에 언론들은 앞다퉈 머스크의 과로와 건강에 대해 전했습니다. 작년 10월 트위터 인수 이후 머스크의 근무 시간이 주당 80시간에서 120시간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겁니다. 휴일도 없이 하루 17시간씩 일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드워커’ 머스크의 과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본인을 실험이라도 하듯,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업무에 매달렸습니다. 물론 머스크의 신체 조건이 평균 일반인보다 뛰어나긴 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키 189㎝(6피트 2인치), 몸무게 90㎏(이보단 과체중인 듯하며 약물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으로 건장한 체격입니다. 지난달 경호원들과 법정을 나서면서 찍힌 언론 사진을 보면 덩치만으론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머스크는 1971년 6월생입니다. 지난 28년간 10개의 사업체를 설립‧인수하며 폭풍처럼 달려온 그도 어느새 50세를 넘겼습니다. 일선에서 한창 일할 나이지만, 건강을 과신하기엔 관리가 필요한 중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물러서지 않을 듯합니다. 그는 한때 세계 1위 부자(현재 2위)였고,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를 잇는 혁신가로 명성과 명예를 거머쥐었습니다. 이만하면 은퇴까진 아니어도 ‘워라밸’은 누릴 만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채찍질하고 있는 걸까요.

“실리콘밸리에 남편보다
더 일하는 사람은 없다”

머스크 불굴의 추진력과 정신력은 어린 시절에 기인합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툭하면 어머니를 손찌검했습니다. 1980년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고 2년간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머스크의 아버지는 매우 괴팍했고 아들을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학교에선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10대 소년에게 심적으로 큰 상처였습니다. 이후 머스크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은 비참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이때부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깡을 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 창업한 웹 소프트웨어 회사 집2(Zip2) 시절의 일론 머스크. 숙소까지 구할 돈이 없어서 밤엔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근처 YMCA 시설에서 샤워를 했다.
첫 창업한 웹 소프트웨어 회사 집2(Zip2) 시절의 일론 머스크. 숙소까지 구할 돈이 없어서 밤엔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근처 YMCA 시설에서 샤워를 했다.
머스크는 17세에 ‘모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 ‘어머니의 고향’ 캐나다로 무작정 이주합니다. 이때부터 그의 잡초 같은 생활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캐나다 전역에 흩어져있는 외가 친척들을 찾아다니고 막노동을 하면서 1년을 보냈습니다. 당시 일화가 하루 1달러 식비만 가지고 생활한 극단적 실험이었습니다. “싸구려 아파트와 컴퓨터만 있으면 굶지 않고 살 수 있겠더군요. 한 달 30달러 버는 건 쉬우니, 언제든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주한 머스크는 1995년 동생 킴벌과 ‘집2(Zip2)’라는 웹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합니다. 숙소까지 구할 돈이 없어서 밤엔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때부터 밤낮으로 일하는 그의 ‘하드코어 근무’ 스타일은 평생을 지속하게 됩니다. 머스크는 집2 지분을 컴팩에 2200만달러(약 284억원)에 매각했고 이어 두 번째 사업인 온라인 금융 서비스 ‘엑스닷컴’도 ‘페이팔’로 성장시킵니다. 이베이가 지분을 인수하며 머스크는 단숨에 1억6500만달러(약 2130억원)를 거머쥡니다. 그의 나이 31세. 창업 7년 만에 억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페이스X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페이스X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주당 120시간 근무 ‘탱크 같은 남자’

머스크의 첫 번째 아내 저스틴 윌슨은 전남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일론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합니다. 밤 11시에나 집에 들어왔고 그 후에도 일했어요. 지금의 자리에 오르려고 일론만큼 사생활을 희생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스틴은 머스크가 마치 탱크 같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보다 체력이 좋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도 탁월해요”

물론 탱크 같던 남자도 쓰러질 때가 있었습니다. 머스크는 2000년 말 모처럼 휴가를 내서 아프리카 모잠비크 여행을 하던 중 심한 말라리아에 걸렸습니다. 미국에 돌아와서 극심한 탈수에 시달렸고 결국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이때 중환자실에서 열흘간 사경을 헤맵니다. 당시 저스틴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건강 회복에 6개월이 걸렸고 체중은 20㎏이나 빠졌습니다.

2018년은 테슬라가 첫 대중화에 성공한 모델3 양산에 돌입한 시기입니다. 이때도 머스크는 공장 바닥에서 자면서 주당 120시간을 일했습니다. 밤낮을 잊은 채 몇 시간 쪽잠을 잔 후 바로 일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만성 수면 부족과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제 두뇌 신경세포들을 다 태워버린 것 같았습니다”
2018년 테슬라는 모델3 생산 지연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파산설이 돌았다. 이에 머스크는 그해 4월 '테슬라가 파산했다. 머스크가 테슬라의 모델3 근처에서 술병에 둘러싸여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됐다'는 트윗을 올린다. 만우절 농담이었다. /사진=일론 머스크 트위터
2018년 테슬라는 모델3 생산 지연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파산설이 돌았다. 이에 머스크는 그해 4월 '테슬라가 파산했다. 머스크가 테슬라의 모델3 근처에서 술병에 둘러싸여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됐다'는 트윗을 올린다. 만우절 농담이었다. /사진=일론 머스크 트위터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집중한다”

체력적인 문제보다 머스크를 괴롭힌 것은 사업에 따른 정신적 압박이었습니다. 2003년 설립 후 십수년간 ‘적자 기업’이었던 테슬라는 늘 자금 부족과 안팎의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7~2008년은 머스크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테슬라의 첫 전기차 모델인 로드스터 개발비가 2004년 계획했던 2500만달러(약 323억원)를 넘어 2008년엔 1억4000만달러(약 18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 직원들에게 줄 월급조차 궁할 정도로 현금이 바닥났습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두 회사 모두 살리기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머스크는 매일 돈 문제로 고민했고 밤마다 악몽을 꿨습니다. “2008년 크리스마스 직전엔 은행에 일주일 버틸 돈도 없었었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결국 머스크는 남은 사재 4000만달러(약 516억원)를 ‘망할지도 모를 회사’ 테슬라에 몽땅 털어 넣는 베팅을 합니다. 또한 기존 투자자와 부자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추가 투자를 부탁해야 했습니다. “테슬라에 대한 긍정적 기사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고, 나는 사방에서 공격당했습니다. 당시 여러 면에서 정말 괴로웠습니다”

머스크의 오랜 친구이자 2021년까지 테슬라 이사를 지냈던 안토니오 그라시아스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머스크가 2008년 겪은 일은 누구도 이겨낼 수 없었을 겁니다. 대부분 사람은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일론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성적 태도를 취하고 목표에 집중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은 정말 최고입니다”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2009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첫 참석한 테슬라 로드스터. 일론 머스크 CEO가 차량에 타고 있다.
2009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첫 참석한 테슬라 로드스터. 일론 머스크 CEO가 차량에 타고 있다.

왜 이리 자신을 혹사하나

2020년대 들어 테슬라 주가가 폭등하면서, 세간엔 머스크를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천재 사업가’로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비전과 꿈은 단순히 사업가라는 틀에 가두기엔 스케일이 웅대합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다행성 종족이 되기 위한 우주탐사 △인공지능(AI) 위협을 대비한 초지능 인류 프로젝트. 머스크가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미션입니다.

머스크 역시 이런 시각에 대해 2018년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해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거물 사업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의 80%는 기계, 전기, 우주공학 등 엔지니어링과 생산 공정에 관한 것들입니다”

머스크는 본인의 사명(使命)을 달성하기 위해선 기술적 난제가 가득한 긴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술 개발은 점진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직접 연구직원들과 밤낮으로 기술 혁신에 투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종원 『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 테슬라 공동 창업자이자 전 CTO였던 JB 스트라우벨은 이에 대해 “일론은 인생이 짧다는 결론을 일찍 내렸어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겁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 세계 '테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테슬라=머스크’. 그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동의하는 사안입니다. 현재 테슬라라는 브랜드는 머스크를 제외하고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작년 말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및 정치개입 이슈로 논란이 불거지자 주가가 급락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당시 월가의 대표적 ‘테슬라 강세론자’였던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연구원은 “테슬라가 머스크다. 수년간 공매도 세력도 성공하지 못했던 테슬라 주가를 머스크가 자기 손으로 박살 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테슬라의 가장 큰 리스크는 머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수십년간 건강을 헤쳐가며 일한 머스크가 만약 쓰러진다면. 전 세계 ‘테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입니다. 이는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 애플이 받은 충격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당시 애플은 걸출한 2인자이자 현 CEO인 팀 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테슬라엔 아직 돌발위기 상황에 등장할 새 얼굴이 보이질 않습니다.

머스크는 이달 초 트위터에 정부 검열과 언론 조작 관련 비판 글을 올렸습니다. 한 이용자가 ‘당신의 안전을 돌보라’는 요청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Everybody dies some day)”

→ 2편 ‘20세기 소년의 꿈’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