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소주값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소주 한 병을 6000원 이상에 판매하는 음식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공덕동의 한 음식점 메뉴판에 ‘소주 6000원’이 적혀 있다.  최혁  기자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소주값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소주 한 병을 6000원 이상에 판매하는 음식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공덕동의 한 음식점 메뉴판에 ‘소주 6000원’이 적혀 있다. 최혁 기자
정부가 ‘소주값 6000원 시대’를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주정, 병 등 원재료값이 급등해 소주 출고가도 조만간 따라 오를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자 출고가 적정성 여부는 물론 주류업계 이익 규모, 경쟁 구도 등까지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주 출고가가 지금보다 오르면 상당수 식당에서 병당(360mL) 5000원인 소비자가격이 6000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주류업계 소주값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주정, 병 등 원재료 가격과 제품 제조에 사용하는 에너지 가격 등의 상승폭이 소주값 인상으로까지 이어져야 할 수준인지 따져본다는 게 관계당국의 방침이다. 더 나아가 주류업계 수익 및 독과점 구조 등을 뜯어볼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주요 소주회사는 지난해 2월 출고가를 7%대 올린 만큼 아직 가격 인상 방침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주정의 원료인 타피오카 가격이 매년 상승하고 있는 데다 이달 들어 소주병 가격이 20%가량 올라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익 구조까지 살펴보겠다”며 초강력 제동을 걸고 나선 만큼 주류회사들은 당분간 수익성 훼손을 감내하면서 출고가 인상을 억제할 것이란 게 관련 업계의 관측이다.

정부가 소주값 인상 저지에 전력투구하는 모양새지만 현장에선 이미 소주값 6000원 시대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음식점 및 주점에서 팔리는 소주는 서울 청담, 압구정 등 강남 상권에선 병(360mL)당 7000원, 직장인이 많이 모이는 도심 주요 상권에선 6000원에 속속 진입하는 추세다.

술 한잔도 쓰디쓴 '酒플레이션'

정부가 소주값 인상에 제동을 건 것은 주요 소주사들이 “출고가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는데도 식당, 주점 등에선 벌써 소주값이 고공행진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청담 압구정 등 서울 강남 상권에선 소주 한 병(360mL)에 7000원이 대세가 됐다. 직장인이 많이 모이는 도심에서도 병당 6000원을 받는 식당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에선 소주값이 7000원

강남 식당선 소주값 7000원…술 한잔도 쓰디쓴 '酒플레이션'
26일 업계에 따르면 소주업계 1, 2위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소주 출고가 인상 여부를 확정 짓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도매상 등 관련 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만큼 이들도 곧 출고가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더 많았다.

주정을 공급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 가격을 평균 7.8% 올렸다. 소주병을 만드는 업체들도 이달부터 소주병 공급가격을 20%가량 차례로 올리고 있다.

일선 식당들은 출고가 인상이 결정되기도 전에 소주값을 일제히 올리는 분위기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닭꼬치집을 찾은 노모씨(29)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7000원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한라산’은 무려 9000원이었다”고 했다. 조만간 편의점에서 소주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소비자원 가격 포털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참이슬 후레쉬’(360mL)의 편의점 가격은 1950원이다.

“출고가 80원 올랐는데…”

지난해 하이트진로가 참이슬(360mL) 출고가격을 1081.20원에서 1166.60원으로 올린 이후 식당과 주점에선 시차를 두고 참이슬 가격이 1000원가량 인상됐다. “출고가격이 85원 올랐는데, 음식점 판매가격은 대체 왜 1000원이나 뛰느냐”는 게 소비자 불만의 요지다.

주류업계에선 소주 제조원가를 대략 600원으로 본다. 여기에 주세(72%)와 교육세(주세의 30%)가 붙어 출고가격이 결정된다. 출고가에는 부가가치세 10%가 더 붙는다.

세금만으로 1200~1300원대가 된 소주값은 주류도매상과 음식점을 거치며 또 올라간다. 보통 도매상은 20~30% 정도의 마진을 붙이는데, 여기에는 운송비와 인건비 등 유통비가 포함된다.

지역과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도매상은 상자(30병)당 5만원 안팎에 소주를 납품한다. 상자값 등을 제외하고 병당 2000원이 안 되는 가격이다.

도매상에서 공급받은 소주를 소비자에게 얼마에 팔지는 식당, 주점 주인들이 결정할 문제다. 이 단계에서 가장 많은 마진이 더해진다는 게 주류업계의 설명이다.

가격만 억눌러선 안 돼

일각에서는 정부가 소주값 실태조사와 더불어 소주업계 이익구조, 직원 성과급 현황 등까지 파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전형적 팔 비틀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을 담당하는 소주회사들은 지난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영향으로 매출이 급증했지만, 각종 비용이 늘면서 수익성은 되레 악화했다. 하이트진로는 매출이 13.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0.3%포인트 하락해 7.6%에 머물렀다.

유통과 판매의 핵심 역할을 하는 주류도매상과 자영업자들도 인건비 식자재비 급등에 따른 운영난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한 외식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소주가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방식은 보여주기식밖에 안 된다”며 “일자리 미스매치 등 서비스업 구조 전반의 개선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