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제조 패권 확보’를 선언한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초격차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술 전쟁의 최전선인 ‘최첨단 패키징’ 관련 신기술 4종을 공개하고 연구개발(R&D) 전용 공장(라인)을 확충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최신형 D램의 글로벌 인증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익을 챙기려면 압도적인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저 그런 기술론 생존 못해…삼성·SK '초격차 기술 방패' 준비중

CPU에 D램 8개 배치 ‘신제품’ 개발

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6년까지 최첨단 패키징 신기술 4종을 공개할 계획이다. ‘패키징’은 웨이퍼 상태의 반도체를 가공해 전자기기에 연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공정을 뜻한다. 최첨단 패키징으로 분류되려면 이종(異種) 칩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도체를 작게 만들어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오면서 최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최첨단 패키징 기술로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연산용 칩에 여러 개의 HBM(고대역 메모리·대량의 데이터를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반도체) D램을 배치한 ‘아이큐브(I-Cube)’와 여러 개의 칩을 수직으로 쌓는 3차원(3D) 기술 ‘엑스큐브(X-Cube)’ 등이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에 1개의 연산용 칩에 8개의 HBM D램을 배치하는 ‘I-Cube S’ 기술을 공개하고 이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이다. 엑스큐브와 관련해선 입출력 단자를 더 많이 넣어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X-Cube u-Bump’ ‘X-Cube Bump-less’를 2026년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R&D 전용 공장에 20조원 투자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는 ‘반도체연구소’의 전용 공장(라인) 건설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반도체연구소에는 D램, 낸드플래시, 로직(시스템반도체), 공정개발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 있다. 지금까지 연구소 전용 라인이 부족해 일부 부서는 일반 공장의 양산용 라인을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R&D 일정 등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R&D 라인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반도체 전용 R&D 팹, 차세대 공정 개발 시설 확충 등을 포함한 R&D 인프라 투자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해 8월 복권 이후 첫 방문지로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 참가해 20조원 투자 방침을 공개할 정도로 기술력 강화에 관심이 크다.

반도체 기술이 ‘안보 방패’ 역할

SK하이닉스 역시 주력 제품인 D램 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4세대 HBM D램인 ‘HBM3’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 등에 납품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하는 서버가 늘어날수록 HBM3 매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최신 서버 D램 인증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서버 제작 업체들은 CPU와 정합성을 갖춘 D램을 주문한다. 그래서 SK하이닉스 같은 D램 개발 및 생산 업체들은 인텔, AMD 등 서버용 CPU 업체들로부터 인증을 받는 게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다음달 서버용 CPU 1위 업체인 인텔과 10나노급 5세대(1b) DDR5 D램 호환성 검증을 시작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TSMC의 파운드리 공장이 대만의 방패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한국 반도체 기업도 ‘기술력’을 통해 세계에 존재감을 각인시킬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