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하이브를 이겨내고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승리한 카카오가 감수해야했던 건 금전적 비용만이 아니었다.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 계약을 둘러싼 법적 논란, 하이브와의 공개매수 전쟁과 여론전으로 인한 온갖 잡음으로 평판 리스크까지 짊어지게 됐다. 재계 15위 그룹이 금감원으로부터 '시세조종' 혐의의 타깃으로 지목받고 있다. 안 그래도 문어발 확장, 골목상권 침해, 상장 먹튀 논란 등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던 카카오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전면전을 택했다. SM엔터 인수가 핵심 자회사인 카카오엔터의 존폐를 결정지을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 총력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 고리는 카카오엔터의 미국 나스닥 상장이다. 국내에 갇혀있는 카카오 플랫폼을 글로벌로 확장시킨다는 새로운 성장 스토리다.

카카오엔터가 2018년부터 숨가쁘게 인수한 다수의 연예기획사·영화제작사 등 핵심 계열사들의 핵심 자원들이 올해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 점도 카카오가 SM엔터 인수와 나스닥 상장에 올인한 배경이다. 카카오엔터는 각 자회사들의 인력들에게 회사 상장을 통한 '잭팟'을 약속하고 M&A를 단행해왔다.

인수 이후 4~5년간은 해당 인력들이 신규 회사를 차릴 수 없는 '경업금지'가 적용되지만, 이 기간이 끝나면 새로 회사를 차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올해 IPO에 실패하면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8년 인수한 배우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 공유·전도연·남주혁 소속의 매니지먼트 숲, 이보영 소속의 제이와이드컴퍼니 등이 대표적이다. 2019년 합류 후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제작한 영화사 월광과 영화 '헌트'를 제작한 사나이픽처스 등도 대상으로 거론된다.

'상장' 약속한 카카오엔터…핵심은 'SM엔터'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가 각종 잡음에도 SM엔터 인수를 강행한 데는 지난 1월 싱가포르투자청(GIC),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 등에서 1조1600억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카카오엔터의 상장(IPO)을 통해 수년 내 투자금 회수를 약속한 점이 반영됐다. 카카오에 정통한 관계자는 "계약서에 상장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상장하지 않으면 회사에 부담이 커지는 방식으로 우회한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카카오엔터의 2대주주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2016년 카카오페이지의 전신인 포도트리에 1250억원을 투자할 땐 어떠한 조항도 두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투자자에 주도권이 넘어갔다. 유일한 캐시카우인 음원서비스 '멜론'을 제외한 컨텐츠 사업에서 적자가 누적된 데다 수차례 단행한 M&A로 재무구조가 악화하면서 투자자 측에 더 큰 양보를 제공해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엔터 입장에선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카카오엔터는 2020년부터 NH투자증권, KB증권, 모건스탠리,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등 주요 IB 및 증권사를 자문사를 선정해 국내외 상장 절차를 준비해왔다. 이진수 카카오엔터 대표는 2021년 주요 외신에 '20조원' 몸값으로 미국 뉴욕 상장을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카오 내 다른 계열사들이 잇따라 상장에 나서며 순서가 밀린 데다가 금리 인상으로 상장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 때 20조원까지 평가되던 기업가치는 GIC와 PIF 투자유치 과정에서 10조원까지 급락했다.

카카오가 중복 상장 논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다 높은 몸값을 인정받으려면 국내보단 해외 상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제는 3년새 플랫폼 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진 점이다. 유동성 장세가 끝나며 한 때 각광받던 웹툰·웹소설 등 컨텐츠 기업에 부여된 밸류에이션은 급락했다. 또 다른 성장 스토리를 써야하는 게 카카오엔터의 과제였다. 카카오엔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은 K팝을 기반으로 한 지적재산권(IP)에 주목했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아온 SM엔터는 카카오엔터에 최적의 매물이자 상장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꼽혔다.

이번 거래는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직접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센터장은 국내에 편중한 카카오의 사업구조를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계열사로 카카오엔터를 낙점해 자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 스스로 '글로벌 기업인'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라도 SM엔터 인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다. 카카오에 정통한 관계자는 "전면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배재현 CIO는 전략가라기보다 실행력에 강점이 있는 '돌격대장' 스타일" 이라며 "이번 딜은 김 센터장이 어떤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강행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M&A로 쌓은 '제국' IPO 무산시 위태

해외 상장 시점이 미뤄질 수록 카카오엔터의 존폐가 위협받는 점도 SM엔터 인수에 속도를 낸 배경이다. 단기간 M&A로 규모를 급속히 키운 카카오엔터의 사업 구조가 적잖은 리스크 요인이다. 카카오엔터는 2015년 수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던 웹툰·웹소설 플랫폼인 포도트리가 유일한 주력 사업이었지만 이후 영화·드라마 제작사(영화사 집, 영화사 월광, 글라인, 사나이픽쳐스, 글앤그림미디어)와 연예기획사(BH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숲, 안테나), 음악 레이블(스타쉽, 크래커)을 차례로 사들였다. 재작년 네이버가 북미 1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자 곧바로 1조원을 투입해 북미 웹소설·웹툰 플래폼인 래디시 및 타파스를 인수, 맞불을 놓기도 했다. 이렇게 쌓은 계열사만 41곳이다.

카카오엔터는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매각 대가로 현금과 함께 카카오엔터 지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유망 회사들을 단기간 자회사로 포섭했다. 유희열 씨가 창업하고 유재석 씨가 소속된 안테나를 100억 내외에 인수하고 이 중 70억원을 유 씨가 재출자하게 한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프로듀서와 단독 협상 시기에도 매각대금 중 2000억원을 이 전 총괄이 재투자해 카카오엔터 주주에 오르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어오기도 했다.

카카오엔터는 높은 몸값에 상장을 장담하고 막대한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며 규모를 키웠지만, 상장이 늦어질 수록 계열사들의 이탈도 감수해야할 상황이다. 각 창업자들이 회사를 매각 한 후 4~5년간 동종업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경업금지'가 올해 말부터 만기가 차례로 돌아오는 점도 카카오엔터엔 악재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연예 기획사 영화 제작사 경영이 어려운 부분이 뚜렷한 유형자산 없이 사람의 힘에 가치가 좌우된다는 점"이라며 "경업금지 기간이 끝나 핵심 인력이 재창업하고 기존 자원들이 옮겨가더라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카카오 내부에선 상장의 마지막 퍼즐인 SM엔터 경영권을 놓치게 되면 카카오엔터의 단기 상장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총력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미국 내에서 중국 컨텐츠 기업에 대한 견제가 이어지면서 한국 등 다른 아시아 컨텐츠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점이 카카오엔터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섰다. 내부에선 현지 스팩 상장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글로벌 IB업계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서도 최근 들어선 플랫폼 자체보다 플랫폼이 보유한 지적재산권(IP)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 지에 기업가치가 좌우되는 분위기"라며 "글로벌 인지도를 갖춘 SM엔터까지 놓치면 카카오엔터의 IPO 고민은 더 커질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