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 프랑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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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미라보 다리에서 만난 까닭은
두 사람이 미라보 다리에서 만난 까닭은

이번 편지는 파리에서 띄웁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 최대 문학 행사인 ‘시인들의 봄(Printemps des Poètes, 3월 11~27일)’ 축제에 와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벌써 5일째군요. 한국시인협회와 프랑스시인협회의 상호협력 협약 체결, ‘시와 함께하는 한국-프랑스 우정의 밤’, 현대시 강연, 시낭송축제 등을 파리와 마르세유에서 7박 9일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 축제엔 한국 시인 2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시인의 눈길이 머물렀던 바로 그 자리

어제는 짬을 내 미라보 다리를 찾았지요. 20년 전 파리에서 1년간 생활할 때 자주 걷던 곳입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센 강의 물무늬가 은어 떼처럼 싱그럽군요. 수면에 비친 하늘은 비취색. 그 유명한 이름에 비하면 너무 평범해서 실망스러운 미라보 다리!

이 다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곳도 아닙니다. 그냥 무표정하게 서 있는 철제 구조물일 뿐이죠. 하지만 한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가슴에 영원한 울림을 주는 명작의 무대입니다.

미라보 다리의 몸체는 연녹색이지요. 섬세한 문양의 금속 난간과 아치가 풀잎을 닮았습니다. 우아한 필기체의 문자 디자인이 다리 전체를 감싸고 있네요. 2개의 기둥에는 상류와 하류 쪽에 각각 하나씩 모두 4개의 여신상이 조각돼 있습니다.

에펠탑에서 센 강 하류 쪽으로 세 번째 놓여 있는 이 다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마주 보고 있지요. 1895년에 완공됐으니 이탈리아 로마 태생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열아홉 나이로 파리에 입성하기 4년 전에 생겼습니다. 다리의 서쪽 끝에는 작은 명판과 ‘미라보 다리’를 새긴 시비가 붙어 있죠.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앉은 청동 시비 앞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오래도록 생각합니다. 척박한 이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물굽이를 오르내리며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다리의 의미는 또 어떤 것인가.

다리는 강의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연결하는 물리적 교량이며,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정신의 가교이기도 하죠. 많은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목. 다리는 사랑과 이별의 접점이며 희망과 좌절의 변곡점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피안의 세계가 거기에 있지요. 이곳은 소멸과 부활의 명암이 교차하는 길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영혼의 통로입니다.

그 옛날 아폴리네르도 이곳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사색에 잠겼겠죠? 그의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 그가 서서 바라보던 강물, 그가 시를 썼던 장소를 순례하는 발길이 성스럽습니다.

미라보 다리 동쪽에 여행자들이 자주 들르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레갈리아(Légalia)’. 100여년간 한자리에서 미라보 다리와 시인의 팬들을 지켜본 일종의 주막이라고 할까요.

20년 전에 자주 들렀던 곳입니다. 당시 중년의 카페 주인은 아폴리네르를 너무 좋아한다며 그의 시를 줄줄 외웠지요. 손님이 많아서 한가할 틈이 없어 보이는데도 짬만 나면 그 얘기였습니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그의 친구도 다리 건너편에서 일부러 건너와 자벨 역이나 앙드레 시트로엥 역에서 전철을 탄다면서 끼어들었죠. 다리를 건너는 동안 강의 양안처럼 생활의 양면을 돌아보게 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이곳 주변은 지금도 변한 게 별로 없습니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에 실연당해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건너 센 강 서쪽(파리 16구)의 그로 거리에서 한 시절을 보냈지요. 연인 마리 로랑생(1883~1956)의 집이 그 부근에 있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파스텔톤의 맑은 수채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둘은 전위적인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던 몽마르트르의 낡은 목조건물 바토-라부아르(Bateau-Lavoir)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만났죠. 1907년이었으니 아폴리네르가 27세, 로랑생이 24세 때였습니다.

사생아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금방 사랑에 빠졌고 문학과 예술의 동반자로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아폴리네르는 시칠리아인 퇴역 장교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어머니의 비밀 연애 끝에 태어났고, 로랑생은 귀족 출신 아버지와 하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앙리 루소의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잘 어울렸죠. 루소의 그림에는 ‘시의 여신’인 로랑생이 아폴리네르에게 영감을 주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엉뚱한 사건이 닥치지요. 1911년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모나리자’ 도난 사건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서 누가 이 작품을 빼돌렸는데 범인이 이탈리아 남자라는 소문이 나돌았죠.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인이란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라 1주일간 구금됐다가 친구들의 탄원으로 겨우 풀려났습니다. 이 어이없는 사건으로 연인 사이에 틈이 생기고 말았지요.

아폴리네르는 생미셸 광장의 옥탑방에 있는 친구 샤갈을 찾아가 신세 한탄을 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 뜰 무렵 집에 가려고 미라보 다리를 건넜습니다. 햇살을 받은 센 강의 물결은 눈부신데 도둑으로 오인받고 애인한테 버림까지 받은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했죠. 이렇게 가슴 아픈 이별의 회한을 담아 쓴 시가 ‘미라보 다리’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한 세기가 지났군요. 그날 이후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말없이 흐르고만 있습니다. 그 명작의 무대에서 맛보는 봄날의 여유. 미라보 다리 너머 멀어져가는 연인들의 뒷모습이 참 어여쁘군요. 저만치 자유의 여신상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도 갓난아기 발뒤꿈치처럼 발갛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