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상상력으로 미리 본 기후 위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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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의 미래를 묘사한 기후 소설들이 등장했다. 클라이파이로 분류되는 이 소설들은 다큐멘터리와 공상과학의 경계에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단순히 멸망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이 아니다. 작가들은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찾아야 한다고 전한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닿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더스트로 덮여 멸망한 지구를 그린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돔’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20℃가 넘는 한낮 온도의 겨울이 지속되고, 3월에 폭설이 내리며, 초미세먼지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를 듣는 지금 이러한 세계는 더 이상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나 재앙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가 주목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댄 블룸이 2007년 기후(climate)와 소설(fiction)을 결합한 클라이파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주로 SF와 교집합으로 그려지는 클라이파이에는 청정에너지로 구동하는 녹색사회 중심의 긍정적 미래상인 ‘솔라펑크(solar-funk)’도 포함된다.
다큐멘터리와 소설 사이
클라이파이는 기후 위기 이후 멸망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시대별로 멸망 원인을 다르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1940년대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의 배경은 대부분 ‘핵전쟁’, ‘원자력 사고’ 등으로 멸망한 세계였다.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멸망의 시나리오가 핵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인공지능 발달과 함께 도래한 기계의 반란, 좀비, 전염병 등 다양한 요소가 종말의 원인이 됐지만 지금 가장 임박한 공포는 역시 기후변화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이전에는 재해 원인을 명확히 찾지 못한 채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인류 탓’이라는 것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행위와 어리석음으로 지구가 멸망했고,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파이가 단순히 종말만을 다루는 비관적 이야기는 아니다. 이후에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통찰이 담긴 것이 클라이파이의 특징이다. 정세랑의 〈리셋〉은 어느 날 거대한 지렁이가 나타나 문명을 파괴하며 지구를 멸망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후 인류는 지하에서 새로운 세계를 꾸린다. 조예은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에서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계가 도래한 이후 눈을 치우는 소각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가 구축된다. 기후 소설가로 유명한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부>에서는 기후 위기 사태를 총괄하는 국제기구인 미래부를 만들어낸다.
세계는 멸망했지만 어쨌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 인류의 모습은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심 평론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합성어인 유스토피아적 장치”라며 “마거릿 애트우드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언제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펼쳐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고 설명한다.
장르의 특성상 클라이파이는 현실 속 이야기를 그린 듯한 다큐멘터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존 에퍼제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많은 기후 문학이 교육학적 차원의 접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후 과학 자체는 너무 전문적 영역이라 일반에게 소외감이나 현실에 대한 자각을 무디게 할 수도 있다”며 “기후 문학은 독자들이 지금으로부터 기온이 1.5℃, 2℃ 상승한 지구가 어떠한 모습일지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을 SF 장르에서는 인지적 소외라고 일컫는다. 경험한 세계를 기반으로 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기에 더욱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 출판업계에서도 기후·환경 관련 서적 판매 추이를 통해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세대라 불리는 10대, 유아를 겨냥한 영어덜트 환경, 지구 관련 도서 출간과 판매도 증가하는 추세다. 예스24에 따르면, 어린이 환경 도서는 지난해 전년 대비 판매 수익이 40.7% 증가했다. 최근 어린이 환경 도서 출간 종수는 2020년(191종), 2022년(207종), 2022년(303종)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만 65종의 도서가 출간됐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세대는 10대를 비롯한 영어덜트 그룹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 출간과 판매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졌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기후 관련 소설이 예견하는 지구의 멸망은 근미래에 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아직 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우리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한다. [인터뷰] 윤이안 작가
“기후변화는 일상부터 망가뜨린다”
윤이안 작가는 기후 미스터리 소설 <온난한 날들>을 집필했다. 이 책은 기후 위기라는 변화에 맞서는 ‘박화음’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 <온난한 날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온난하다는 말은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따뜻하고 온화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온난하다’에 부정적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온난하다라는 단어는 시기적으로 그리고 의미적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잘 그려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온난한 날을 살고 있지만,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은 세계 말이다.”
- 멸망한 지구, 적응하는 인류가 아니라 일상적 불편함과 변화로 기후변화를 그린 이유가 있다면.
“기후변화는 일상을 서서히 바꿔놓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되찾지 못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일회용 컵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예가 되겠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면 더욱 급격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유의미한 탄소 정책을 실시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에코시티다. 에코시티에서는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 수 없는 것은 물론, 탄소배출량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는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한다. 에코시티는 기후 위기로 인한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 이야기다.”
- 기후와 관련해 기후 우울증이라는 말도 생겼다.
“기후에 대한 뉴스 또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울하거나 비관적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기후 위기 상황을 공부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노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행동 하나로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닿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더스트로 덮여 멸망한 지구를 그린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변해버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돔’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20℃가 넘는 한낮 온도의 겨울이 지속되고, 3월에 폭설이 내리며, 초미세먼지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를 듣는 지금 이러한 세계는 더 이상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나 재앙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가 주목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댄 블룸이 2007년 기후(climate)와 소설(fiction)을 결합한 클라이파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주로 SF와 교집합으로 그려지는 클라이파이에는 청정에너지로 구동하는 녹색사회 중심의 긍정적 미래상인 ‘솔라펑크(solar-funk)’도 포함된다.
다큐멘터리와 소설 사이
클라이파이는 기후 위기 이후 멸망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시대별로 멸망 원인을 다르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1940년대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의 배경은 대부분 ‘핵전쟁’, ‘원자력 사고’ 등으로 멸망한 세계였다.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멸망의 시나리오가 핵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인공지능 발달과 함께 도래한 기계의 반란, 좀비, 전염병 등 다양한 요소가 종말의 원인이 됐지만 지금 가장 임박한 공포는 역시 기후변화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이전에는 재해 원인을 명확히 찾지 못한 채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인류 탓’이라는 것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행위와 어리석음으로 지구가 멸망했고,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파이가 단순히 종말만을 다루는 비관적 이야기는 아니다. 이후에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통찰이 담긴 것이 클라이파이의 특징이다. 정세랑의 〈리셋〉은 어느 날 거대한 지렁이가 나타나 문명을 파괴하며 지구를 멸망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후 인류는 지하에서 새로운 세계를 꾸린다. 조예은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에서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계가 도래한 이후 눈을 치우는 소각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가 구축된다. 기후 소설가로 유명한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부>에서는 기후 위기 사태를 총괄하는 국제기구인 미래부를 만들어낸다.
세계는 멸망했지만 어쨌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 인류의 모습은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심 평론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합성어인 유스토피아적 장치”라며 “마거릿 애트우드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언제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펼쳐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고 설명한다.
장르의 특성상 클라이파이는 현실 속 이야기를 그린 듯한 다큐멘터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존 에퍼제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많은 기후 문학이 교육학적 차원의 접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후 과학 자체는 너무 전문적 영역이라 일반에게 소외감이나 현실에 대한 자각을 무디게 할 수도 있다”며 “기후 문학은 독자들이 지금으로부터 기온이 1.5℃, 2℃ 상승한 지구가 어떠한 모습일지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을 SF 장르에서는 인지적 소외라고 일컫는다. 경험한 세계를 기반으로 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기에 더욱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 출판업계에서도 기후·환경 관련 서적 판매 추이를 통해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세대라 불리는 10대, 유아를 겨냥한 영어덜트 환경, 지구 관련 도서 출간과 판매도 증가하는 추세다. 예스24에 따르면, 어린이 환경 도서는 지난해 전년 대비 판매 수익이 40.7% 증가했다. 최근 어린이 환경 도서 출간 종수는 2020년(191종), 2022년(207종), 2022년(303종)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만 65종의 도서가 출간됐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세대는 10대를 비롯한 영어덜트 그룹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 출간과 판매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졌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기후 관련 소설이 예견하는 지구의 멸망은 근미래에 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아직 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우리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한다. [인터뷰] 윤이안 작가
“기후변화는 일상부터 망가뜨린다”
윤이안 작가는 기후 미스터리 소설 <온난한 날들>을 집필했다. 이 책은 기후 위기라는 변화에 맞서는 ‘박화음’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 <온난한 날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온난하다는 말은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따뜻하고 온화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온난하다’에 부정적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온난하다라는 단어는 시기적으로 그리고 의미적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잘 그려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온난한 날을 살고 있지만,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은 세계 말이다.”
- 멸망한 지구, 적응하는 인류가 아니라 일상적 불편함과 변화로 기후변화를 그린 이유가 있다면.
“기후변화는 일상을 서서히 바꿔놓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되찾지 못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일회용 컵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예가 되겠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면 더욱 급격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유의미한 탄소 정책을 실시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에코시티다. 에코시티에서는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 수 없는 것은 물론, 탄소배출량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는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한다. 에코시티는 기후 위기로 인한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 이야기다.”
- 기후와 관련해 기후 우울증이라는 말도 생겼다.
“기후에 대한 뉴스 또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울하거나 비관적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기후 위기 상황을 공부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노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행동 하나로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