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리은행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몸값은 낮아졌는데 자칫 인수했다가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리스크(위험) 때문에 인수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위기에 놓인 퍼스트리퍼블릭의 운명은 미국 규제당국과 대형 은행 간 '치킨게임'이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REUTERS
사진=REUTERS

○"인수하면 300억달러 추가 비용 들 수도"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올해 들어 27일(현지시간)까지 약 95% 폭락했다. 시가총액은 10억달러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으로부터 시작된 은행권 불안이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퍼스트리퍼블릭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인수자가 나타나거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는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퍼스트리퍼블릭은 1분기 1000억달러(약 134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가는 등 위기가 커지고 있다. 은행 측은 장기주택담보대출과 증권을 포함해 500억~1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몸값이 낮아졌음에도 퍼스트리퍼블릭의 인수 희망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 구조상 인수 자금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이 보유한 자산에 대한 평가손실은 정확히 책정되지 않았다. 1985년 제임스 허버트가 설립한 퍼스트리퍼블릭은 설립 초기부터 부유층 고객에게 대출해주고 우대 금리 혜택을 제공하며 이들을 유치했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가 높아지면서 대출 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손실이 커지게 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의 부동산 담보 대출 시장가치는 장부상 가치보다 약 190억달러 낮아졌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장기국채 등 만기보유증권의 미 실현 평가손실도 48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손실이 시장 가격에 따라 현재 줄어들었다고 해도 인수자는 최소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오토노머스 리서치의 데이비드 스미스 애널리스트는 "공짜로 은행을 매입하더라도 300억달러의 비용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의 1분기 순이익은 2억6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3%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3% 감소한 12억달러 기록했다

○美대형은행, 추가 지원 주저

퍼스트리퍼블릭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당국과 대형은행은 서로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다른 쪽이 나서기를 기다리며 '치킨게임'이 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진단했다.

미 규제당국은 퍼스트리퍼블릭 위기가 재부각된 이후 현재까지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당국은 지난달 이 은행에 300억 달러(약 40조원)를 예치한 대형 은행들이 다시 한번 지원에 나설지 지켜보는 모습이다. 대형은행들은 이를 주저하고 있다.

미 시턴 홀 법학대학원의 스테픈 루벤 교수는 "대형 은행들은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 여파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며, 퍼스트리퍼블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다만 "규제당국은 이 은행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타자는 누가 될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필요하다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퍼스트리퍼블릭의 자산을 인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관련 소식통은 "(해결 방안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연방 정부가 단독으로 혹은 민간 투자자들과 함께 개입하는 것"이며 "은행 측은 업계 및 정부 관계자들과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개입하는 다양한 구조 조정 방안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한편 SVB 파산 사태 후 위기설에 휩싸였던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올 1분기 호실적을 기록하며 우려를 불식했다.

도이체방크는 1분기 순이익이 13억20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11억7000만달러)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5% 증가한 76억8000만유로를 기록했다. 도이체방크 주가는 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27일 10.91달러에 마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