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개점한 중국 상하이 MLB 매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F&F 제공
지난 4월 개점한 중국 상하이 MLB 매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F&F 제공
‘궈차오(애국소비)’ 열기 가득한 중국에서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MLB’ 브랜드가 잘나가는 건 이례적이다. 올해 초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나이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중국시장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2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 패션업체 F&F의 라이선스 브랜드 MLB는 지난해 중국에서 1조원 넘게 팔렸다. 2019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뒤 단 3년 만에 올린 성과다. 세계적 금융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마저 “지난 10년간 중국 패션시장에서 어떤 브랜드도 보여주지 못한 성장세”라고 평가할 정도다. ‘패션계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김창수 F&F 회장(61·사진)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해외 브랜드 K패션으로 재탄생

中 애국소비 뚫고 'MLB 모자' 1兆 팔았다
김 회장은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88)의 차남이다. 동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출판사 계열 팬시 전문점 아트박스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은 1992년 ‘패션(fashion)’과 ‘미래(forward)’의 영어단어 앞 글자를 따 F&F라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혈관에 흐르는 ‘사업가의 피’를 거부하지 못했다.

김 회장은 패션계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해외에서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를 무작정 들여오는 기존 패션업계 관행을 거부했다.

대신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브랜드를 들여와 F&F만의 콘셉트를 입혀 재창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국 내에서 모자, 야구용품 정도에만 적용되던 MLB 브랜드를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접목한 게 그렇다. 아웃도어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과 라이선스 계약을 2012년 맺어 패션 아이템으로 히트시킨 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 회장은 창업 후 줄곧 브랜드를 천착했다. ‘패션이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옷으로 풀어내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MLB의 경우 “사랑하는 스포츠에 몰두해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담으려 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디스커버리에는 자연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란 정체성을 담았다. 애슬레저·아웃도어 열풍을 일찌감치 알아본 선견지명이란 평가도 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 나서

中 애국소비 뚫고 'MLB 모자' 1兆 팔았다
F&F는 창립 30주년이던 지난해 전년 동기 대비 66.0% 급증한 1조808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증권업계는 F&F가 올해 매출 ‘2조 클럽’ 가입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

특히 김 회장이 1997년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사무국으로부터 의류업 라이선스를 따와 론칭한 브랜드 MLB가 이끄는 중국에서의 성과는 업계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중국 내 MLB 매장은 현재 880여 개다. F&F는 올해 MLB 중국 매장이 1100개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MLB가 앞으로 5년간 중국에서 연평균 30%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MLB는 올해 1조5000억원대 판매액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라이선스 브랜드인 MLB와 디스커버리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든 위협 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성공을 지켜본 두 브랜드가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F&F는 최근 유명 해외 브랜드를 사들이며 사업을 다변화하고 있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 패딩 브랜드 ‘듀베티카’, 지난해에는 미국 프리미엄 테니스 브랜드 ‘세르지오 타키니’의 글로벌 본사를 인수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