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적극적 채식주의), 건강식 등이 글로벌 식품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식품회사들이 사찰음식에 주목하며 절과 연계한 식물성 가공식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사찰음식은 1700여 년간 이어져 온 한국 전통 음식이자 전 세계 식음료(F&B)업계에서 채식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사찰음식을 가공식품 형태로 구현해 해외 시장에 선보이면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식품업계의 시각이다.

정통 사찰식 만두 선보여

식물성 만두·불고기…사찰食에 꽂힌 식품사
CJ제일제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사업지주회사 도반HC와 공동 개발한 ‘사찰식 왕교자’를 26일 선보였다. 불교에서 승려들이 먹는 걸 금지하는 고기와 오신채(달래·마늘·부추·파·흥거) 대신 다른 채소와 천연 조미료를 사용했다.

만두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고기와 마늘을 사용할 수 없어 개발 과정에서 스님들의 조언을 받았다. 식감을 살리기 위해 양배추 숙주 무 청양고추를 넣었고, 조미료로는 채소에서 나온 즙과 소금 후추 참기름을 사용했다. 석가탄신일인 27일 서울 수송동 조계사 인근의 도반승소에서 시식 행사를 열 예정이다.

대체육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신세계푸드는 지난 15일 동자승을 위한 사찰음식을 내놨다. 한 달간 단기 출가 과정을 밟는 동자승을 위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스테이크, 미트볼, 불고기, 캔햄 등을 식단에 포함했다.

신세계푸드가 자체 개발한 대체육 ‘베러미트’에는 동물성 성분이 없는 만큼 수행자의 육식을 금하는 종교적 가치와 영양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버터 우유 계란을 함유하지 않은 연꽃단팥빵(사진)과 각종 음료 등을 박성희 사찰음식 전문가와 협업해 개발했다. 20여 종의 세트 메뉴를 준비했다.

사찰음식 대중화 노려

식물성 만두·불고기…사찰食에 꽂힌 식품사
식품기업이 노리는 건 사찰음식의 대중화다. 건강식을 원하는 세계적 트렌드를 감안할 때 한국 사찰음식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사찰음식은 이미 글로벌 F&B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면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셰프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게 된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서울 진관동 진관사는 세계 미식가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브랜드가 됐다.

CJ제일제당이 일반 소비자에게 사찰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지난달 도반HC와 사찰음식 공동상품 출시를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은 스님과 신도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몰 ‘승소몰’에서만 사찰식 왕교자를 판매하지만 향후 잡채, 죽, 콩고기, 공양밥 등을 출시하고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오뚜기 또한 채식 레스토랑 두수고방과 협업해 지난해 8월 사찰음식 가정간편식(HMR)인 ‘두수고방’ 컵밥과 죽 8종을 출시했다. 두수고방은 정관 스님 제자인 오경순 셰프가 운영 중인 식당이다. 취나물, 곤드레 등 HMR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자재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식품·외식업계 관계자는 “사찰음식은 종교적 색채를 띤 음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건강식과 비건식으로 확장할 수 있어 잠재력이 크다”며 “식품 제조기업은 자신들이 쌓아온 식물성 메뉴 개발 역량을 사찰음식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티아에 따르면 세계 식물성 식품 시장 규모는 2020년 294억달러(약 39조원)에서 지난해 442억달러(약 58조원)로 커진 데 이어 올해는 525억달러(약 70조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