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에 툭하면 국회 호출…30·40대 엘리트 관료, 기업으로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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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무원들
(1) 행정고시 출신 이탈 심각
2년간 산업부 과장급 20명 이상
삼성전자·현대차·롯데 임원으로
서울~세종 왕복하는 선배 보더니
행시 막 붙은 사무관 "이직 희망"
(1) 행정고시 출신 이탈 심각
2년간 산업부 과장급 20명 이상
삼성전자·현대차·롯데 임원으로
서울~세종 왕복하는 선배 보더니
행시 막 붙은 사무관 "이직 희망"
지난 1일 열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에서 김용태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산업과장은 현대자동차 상무로 취업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생에너지산업과장은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새 요직으로 떠오르는 자리다. 지난 3월엔 송용식 행정혁신과장이 한화에너지 전무로 이직했다. 작년엔 신성주 무역안보정책과장과 권혁우 석유산업과장이 각각 롯데지주 상무와 삼성전자 상무로 옮겼다. 산업부에서 최근 2년 새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과장급 공무원은 20명이 넘는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던 공무원들이 공직사회를 떠나고 있다. 특히 정책 실무를 주도한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 경제관료의 동요가 심상찮다.
지금까지 공무원 취업심사의 ‘단골 부처’는 국방부와 경찰청, 검찰청이었다. 제대 후 민간 자문역을 맡는 군인과 경찰 및 로펌 변호사로 이직하는 검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산업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경제부처의 퇴직 심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인사 적체가 유독 심한 부처이기도 하다.
산업부 출신 과장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환경규제 강화로 민간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들도 연봉을 최소 세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기업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민간 에너지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전직 산업부 과장은 “연봉이 몇 배나 오르는 만큼 이직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작년엔 1급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SK그룹 신설법인인 SK스퀘어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고위공무원단은 직무 연관성 때문에 대기업 이직이 불가능하지만 SK스퀘어는 신설법인이어서 가능했다.
지난 4월 취업심사에서 이동욱 금융위 가상자산검사과장은 삼성생명 상무로 취업 승인을 받았다. 작년 12월 선욱 금융위 산업금융과장은 메리츠화재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에도 김선문·이한샘 서기관이 각각 삼성화재와 한화생명으로 이직했다. 금융위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간부로 꼽혔던 인물들이다.
기재부에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무관이 세제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통상 기재부의 가장 인기 있는 부서로는 예산실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국, 국제금융국 등이 꼽혔다. 하지만 공직 사회에서 민간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세금 소송, 조세 심판 등 관련 법률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로펌이 세제실 출신 공무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무관은 선배들을 볼 때마다 공직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다고 했다. 기재부 B사무관은 “국·과장은 틈만 나면 국회 호출을 받고 서울과 세종시를 이틀에 한 번꼴로 오간다”며 “저렇게까지 공직생활을 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한다면 공직 사회 업무 효율이 몇 배나 향상될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 동기들이 행시 대신 로스쿨을 선택해 변호사가 된 후 고연봉을 받는 것도 사무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2.3%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요새는 타고난 ‘금수저’ 출신 공무원만 돈 걱정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어 조기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젊은 세대일수록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줄어드는 것도 ‘관가 탈출’의 요인으로 꼽힌다. 인재개발원이 지난해 MZ세대 공무원 1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3.3%가 “공무원도 민간 기업 근로자와 동일하게 경제적 편익을 지향하는 직장인”이라고 답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던 공무원들이 공직사회를 떠나고 있다. 특히 정책 실무를 주도한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 경제관료의 동요가 심상찮다.
과장들의 민간기업행 ‘러시’
6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민간 분야로 취업승인·가능 판정을 받은 퇴직 공직자는 488명으로, 전년 동기(322명) 대비 51.6% 늘었다. 민간 기업은 공무원을 영입할 때 폭넓은 네트워크를 보유한 장·차관 및 고위공무원단 출신을 주로 영입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실무 간부인 과장급을 임원으로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다.지금까지 공무원 취업심사의 ‘단골 부처’는 국방부와 경찰청, 검찰청이었다. 제대 후 민간 자문역을 맡는 군인과 경찰 및 로펌 변호사로 이직하는 검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산업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경제부처의 퇴직 심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인사 적체가 유독 심한 부처이기도 하다.
산업부 출신 과장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환경규제 강화로 민간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들도 연봉을 최소 세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기업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민간 에너지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전직 산업부 과장은 “연봉이 몇 배나 오르는 만큼 이직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작년엔 1급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SK그룹 신설법인인 SK스퀘어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고위공무원단은 직무 연관성 때문에 대기업 이직이 불가능하지만 SK스퀘어는 신설법인이어서 가능했다.
지난 4월 취업심사에서 이동욱 금융위 가상자산검사과장은 삼성생명 상무로 취업 승인을 받았다. 작년 12월 선욱 금융위 산업금융과장은 메리츠화재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에도 김선문·이한샘 서기관이 각각 삼성화재와 한화생명으로 이직했다. 금융위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간부로 꼽혔던 인물들이다.
“장·차관 꿈은 버린 지 오래”
엘리트 공무원의 이탈은 고위 간부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국내 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재경직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 기재부에 입직한 사무관 A씨는 “서기관 승진 후 기회만 된다면 민간기업 임원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장·차관이 되겠다는 꿈은 버린 지 오래됐다고 했다. 금융위 사무관도 최근 2년 새 4명이 가상자산업계로 이직했다.기재부에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무관이 세제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통상 기재부의 가장 인기 있는 부서로는 예산실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국, 국제금융국 등이 꼽혔다. 하지만 공직 사회에서 민간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세금 소송, 조세 심판 등 관련 법률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로펌이 세제실 출신 공무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무관은 선배들을 볼 때마다 공직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다고 했다. 기재부 B사무관은 “국·과장은 틈만 나면 국회 호출을 받고 서울과 세종시를 이틀에 한 번꼴로 오간다”며 “저렇게까지 공직생활을 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한다면 공직 사회 업무 효율이 몇 배나 향상될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 동기들이 행시 대신 로스쿨을 선택해 변호사가 된 후 고연봉을 받는 것도 사무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2.3%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요새는 타고난 ‘금수저’ 출신 공무원만 돈 걱정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어 조기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젊은 세대일수록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줄어드는 것도 ‘관가 탈출’의 요인으로 꼽힌다. 인재개발원이 지난해 MZ세대 공무원 1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3.3%가 “공무원도 민간 기업 근로자와 동일하게 경제적 편익을 지향하는 직장인”이라고 답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