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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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지난 2일 2차전지 분리막에 대해 장기공급계약을 맺는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계약금액, 공급물량은 공란으로 처리한 뒤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다만 판매·공급지역엔 ‘북미 및 기타 해외지역’이라고 적고, 계약 기간은 ‘2023년 10월 1일부터 2030년 9월 30일까지’라고만 썼다.

지난달 8일에도 비슷한 공시가 나왔다. 2차전지에 들어가는 동박을 만드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이날 해외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지만, 주요 내용을 유보하고 유보 사유에 ‘경영상 비밀 유지’라고 적었다. 계약 기간만 2023년 5월 5일부터 10년간으로 썼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공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공시
SKIET공시
SKIET공시
이런 공시가 이례적이지만 해당 업체들은 “한국거래소로부터 자문을 받아 공시한 것으로 공시 관련 규정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런 ‘도깨비 공시’가 나온 배후로 테슬라를 지목하고 있다. 테슬라의 구매 담당 임직원은 지난달 초 한국의 배터리 소재사들을 연이어 방문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분리막, 동박 등을 직접 조달하기 위한 차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연합뉴스
테슬라는 이 과정에서 가격과 공급 물량을 놓고 유리한 전략을 펴기 위해 각 회사와 공급계약만 맺은 뒤 가격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방한 당시 먼저 방문한 한국의 다른 동박 제조사의 계약 공시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경쟁사들과 계약을 먼저 맺으면서 다른 회사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후 다른 회사의 공시가 나오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가격과 공급 규모가 알려질 것”이라며 “테슬라의 ‘바잉파워’(구매력)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