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해보는 게 어떨까요"…한국 운명 바꾼 한마디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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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남 창업주 고 김향수 명예회장 20주기
1968년 한국 최초 반도체기업
아남산업 창업 후 패키징 사업 시작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에 D램 사업 권유
한국 반도체 산업 일으키는 데 기여
미국엔 장남 김주진 회장이 앰코테크놀로지 설립
세계 2위 패키징업체로 성장
1968년 한국 최초 반도체기업
아남산업 창업 후 패키징 사업 시작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에 D램 사업 권유
한국 반도체 산업 일으키는 데 기여
미국엔 장남 김주진 회장이 앰코테크놀로지 설립
세계 2위 패키징업체로 성장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후공정의 핵심인 '패키징'(칩을 가공해 전자기기에 연결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공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기업들이 칩을 만드는 전공정에서 미세 공정의 한계를 느끼면서 패키징을 통해 칩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 초 '첨단 패키징 팀'을 만들고 역량을 집중할 정도다.
현재 세계 패키징 시장은 대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자국에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패키징 기업들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패키징 세계 1위로 올라선 대만 ASE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엔 TSMC도 자체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 업체들 사이에서 분전하고 있는 기업이 패키징 세계 2위 앰코테크놀로지다. 미국에 본사를 둔 나스닥 상장사지만 뿌리는 한국기업이다. 앰코(AMKOR)라는 사명도 America(미국)와 Korea(한국)을 합친 것이다. 올 초 반도체업계에 "삼성전자가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앰코를 인수합병(M&A)할 것"이란 이야기가 돌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에서 만난 공학자들이 "반도체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한국에선 반도체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김 명예회장은 반도체 회사 창업을 결심한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 '아남산업'(아남반도체의 전신)이 1968년 3월 서울 화양동에 설립됐다. 그의 나이 56세 때의 일이다. 동시에 미국에선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한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장남 김주진 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이 앰코테크놀로지를 설립한다. 아남산업과 앰코테크놀로지는 처음부터 '패키징'에 주력했다. 아남산업은 화양동 1720㎡(약 520평) 규모 낡은 공장 용지를 매입해서 설비를 깔았다. 창업 이후 2년간 주문이 없었다.
1970년 아남산업에 첫 주문이 들어온다. 같은 해 12월 종업원 7명으로 미국에 메탈 캔 형태의 반도체를 수출하게 된다. 1972년엔 21만달러 수출 실적을 냈다. 1973년엔 금탑산업훈장을 받는다. 반도체 패키징 사업이 계속 커지면서 종업원도 1000명을 넘게 된다.
1980년대 초반 김 명예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에게 'D램 같은 메모리반도체 사업 진출'을 권유하기도 했다. 대규모 장치 투자가 필요한 메모리반도체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하는 게 맞다고 판단, 평소 친분이 있는 이 창업 회장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성공하면서 아남 인력들이 많이 옮겨갔다. 김 명예회장은 "아쉽긴 하지만 우리 회사 출신들이 곳곳에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 것"이라며 큰 틀에서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운이 좋지 않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불리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온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아남반도체는 버티지 못했다. 미국 앰코가 아남반도체 지분 42.6%를 인수했지만, 현지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아남반도체의 패키징 부분은 앰코가 인수하고, 파운드리사업부는 1997년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동부전자가 가져간다. 당시 신문기사엔 "웨이퍼 생산량 기준 월 5000장의 동부전자가 3만장의 아남반도체를 가져가면서 '세계 4위' 업체로 도약을 목표로 한다"고 적혀있다. 아남반도체가 동부그룹에 매각한 파운드리사업부는 지금의 DB하이텍 부천공장이다.
2021년 3월 지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실적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엔 매출 1조6800억원, 종업원 수 5900여명 수준이었다. 2022년엔 매출이 4조 5420억원, 종업원 수는 7300여명으로 늘었다,
앰코테크놀로지는 앰코코리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의 패키징 생산기지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앰코베트남은 오는 9월 말 완공, 4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지 사장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베트남을 선택,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며 "앰코 또한 베트남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사업장을 건설하여 향후 반도체 후공정 생산 허브로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주력한다. 최근 반도체가 더욱 미세해지고 기능이 늘어나면서 반도체 패키징 기술로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딥러닝, 클라우드컴퓨팅 흐름에 따라 초고속컴퓨팅(HPC)이 필요해지면서 패키징 기술도 이종집적, HDFO (High Density Fan-Out) 분야가 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앰코는 '시스템인 패키지(SiP)', 'SWIFT'(High Density Fan-Out 기술), 'S-Connect'(Si bridge 기술)를 통해 차별화된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PCB, RDL, BEOL 등 산업에 사용되는 회로 연결 기술 모두를 제품의 성능에 맞도록 제공할 수 있는 패키지 플랫폼, 공정 툴박스(toolbox), 설계·검증 기술, 평가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앰코는 최근 수요가 크게 증가되고 있는 오디오,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의 분야에서 SiP 턴키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모든 종류의 패키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앰코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용 반도체 패키징이다. 앰코 관계자는 "발빠른 투자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력을 확보, 자동차용 반도체 세계 1위 OSAT 업체로 도약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이 회복되고 있는 점,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신규 출시,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세로 앰코의 실적이 올 하반기에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 인재 채용도 거르지 않고 있다. 앰코코리아는 지난해 △연구개발 △엔지니어 △고객 만족 △제조 △제조 장비 등에서 약 17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 1분기에도 300여명의 신입·경력사원을 채용했고 추가로 1000여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현재 세계 패키징 시장은 대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자국에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패키징 기업들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패키징 세계 1위로 올라선 대만 ASE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엔 TSMC도 자체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 업체들 사이에서 분전하고 있는 기업이 패키징 세계 2위 앰코테크놀로지다. 미국에 본사를 둔 나스닥 상장사지만 뿌리는 한국기업이다. 앰코(AMKOR)라는 사명도 America(미국)와 Korea(한국)을 합친 것이다. 올 초 반도체업계에 "삼성전자가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앰코를 인수합병(M&A)할 것"이란 이야기가 돌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7명으로 시작한 반도체기업, 2년 만에 1000명 고용
아남의 창업자는 고(故) 김향수 아남 명예회장이다. 김 명예회장은 191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일본대(日本大) 법과전문부를 수료했다. 1939년 일만무역공사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고 1956년에 한국자전차공업을 창업했다. 한때 정치권에도 몸담았다.김 명예회장은 첨단 기술 산업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에서 만난 공학자들이 "반도체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한국에선 반도체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김 명예회장은 반도체 회사 창업을 결심한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 '아남산업'(아남반도체의 전신)이 1968년 3월 서울 화양동에 설립됐다. 그의 나이 56세 때의 일이다. 동시에 미국에선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한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장남 김주진 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이 앰코테크놀로지를 설립한다. 아남산업과 앰코테크놀로지는 처음부터 '패키징'에 주력했다. 아남산업은 화양동 1720㎡(약 520평) 규모 낡은 공장 용지를 매입해서 설비를 깔았다. 창업 이후 2년간 주문이 없었다.
1970년 아남산업에 첫 주문이 들어온다. 같은 해 12월 종업원 7명으로 미국에 메탈 캔 형태의 반도체를 수출하게 된다. 1972년엔 21만달러 수출 실적을 냈다. 1973년엔 금탑산업훈장을 받는다. 반도체 패키징 사업이 계속 커지면서 종업원도 1000명을 넘게 된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에게 "D램 사업은 삼성이 해야" 권유
짧은 기간 급성장하게 된 배경으론 '신뢰'가 꼽힌다. 1970년대 초반 한강에 홍수가 나 아남산업 공장이 물에 잠기게 됐다. 물에 젖은 설비를 꺼내 헤어드라이어로 말려가며 정상화했고 결국 납기를 맞췄다. 종업원들과의 신뢰도 지켜왔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1980년대 중후반 불황에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1980년대 초반 김 명예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에게 'D램 같은 메모리반도체 사업 진출'을 권유하기도 했다. 대규모 장치 투자가 필요한 메모리반도체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하는 게 맞다고 판단, 평소 친분이 있는 이 창업 회장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성공하면서 아남 인력들이 많이 옮겨갔다. 김 명예회장은 "아쉽긴 하지만 우리 회사 출신들이 곳곳에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 것"이라며 큰 틀에서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98년 '파운드리' 진출했지만 IMF 위기로 동부에 매각
김 회장은 패키징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히던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로 가자'고 결심했다. 1998년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시작한다. 그해 미국 앰코테크놀로지는 나스닥에 상장하며 성장성을 인정받게 된다.운이 좋지 않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불리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온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아남반도체는 버티지 못했다. 미국 앰코가 아남반도체 지분 42.6%를 인수했지만, 현지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아남반도체의 패키징 부분은 앰코가 인수하고, 파운드리사업부는 1997년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동부전자가 가져간다. 당시 신문기사엔 "웨이퍼 생산량 기준 월 5000장의 동부전자가 3만장의 아남반도체를 가져가면서 '세계 4위' 업체로 도약을 목표로 한다"고 적혀있다. 아남반도체가 동부그룹에 매각한 파운드리사업부는 지금의 DB하이텍 부천공장이다.
앰코베트남 발판으로 패키징 세계 1위 노린다
김 명예회장의 20주기인 올해 앰코테크놀로지가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한국법인인 앰코코리아의 지종립 사장(CEO)은 '세계 1위 패키징 업체로의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55주년 기념사'를 통해 "김향수 명예회장과 현 김주진 회장은 산업보국, 인재 양성, 기술 발전, 고용 창출을 통해 인류애에 헌신한다는 일념으로 한국에는 생산기지인 아남, 미국엔 영업과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앰코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와이어 본더 3대, 다이본더 2대로 시작한 앰코의 반도체 후공정 사업이 이젠 전 세계 8개국 20개 사업장을 갖춘, 임직원 3만명, 연 매출 9조원 규모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앰코코리아는 광주에 본사를 두고 있고 인천 부평과 송도까지 총 세 곳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송도사업장은 18만5123㎡(약 5만6000평) 규모의 부지에 조성됐다. 최첨단 R&D센터와 자동화된 반도체 패키징 생산라인이 들어서 있다.2021년 3월 지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실적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엔 매출 1조6800억원, 종업원 수 5900여명 수준이었다. 2022년엔 매출이 4조 5420억원, 종업원 수는 7300여명으로 늘었다,
앰코테크놀로지는 앰코코리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의 패키징 생산기지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앰코베트남은 오는 9월 말 완공, 4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지 사장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베트남을 선택,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며 "앰코 또한 베트남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사업장을 건설하여 향후 반도체 후공정 생산 허브로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점점 중요해지는 첨단 패키징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침체기를 맞았지만 앰코는 올해 8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속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첨단 패키지 생산과 장비 투자, 베트남 신규 사업장 건설 등에 들어간다.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주력한다. 최근 반도체가 더욱 미세해지고 기능이 늘어나면서 반도체 패키징 기술로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딥러닝, 클라우드컴퓨팅 흐름에 따라 초고속컴퓨팅(HPC)이 필요해지면서 패키징 기술도 이종집적, HDFO (High Density Fan-Out) 분야가 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앰코는 '시스템인 패키지(SiP)', 'SWIFT'(High Density Fan-Out 기술), 'S-Connect'(Si bridge 기술)를 통해 차별화된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PCB, RDL, BEOL 등 산업에 사용되는 회로 연결 기술 모두를 제품의 성능에 맞도록 제공할 수 있는 패키지 플랫폼, 공정 툴박스(toolbox), 설계·검증 기술, 평가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앰코는 최근 수요가 크게 증가되고 있는 오디오,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의 분야에서 SiP 턴키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모든 종류의 패키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앰코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용 반도체 패키징이다. 앰코 관계자는 "발빠른 투자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력을 확보, 자동차용 반도체 세계 1위 OSAT 업체로 도약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이 회복되고 있는 점,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신규 출시,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세로 앰코의 실적이 올 하반기에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 인재 채용도 거르지 않고 있다. 앰코코리아는 지난해 △연구개발 △엔지니어 △고객 만족 △제조 △제조 장비 등에서 약 17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 1분기에도 300여명의 신입·경력사원을 채용했고 추가로 1000여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