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은 강원 양양국제공항 대합실은 여행객도, 항공사 직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양양~제주 노선을 취항하던 플라이강원이 지난달 20일 경영난으로 운항을 중단하면서 양양공항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정의진 기자
지난 15일 찾은 강원 양양국제공항 대합실은 여행객도, 항공사 직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양양~제주 노선을 취항하던 플라이강원이 지난달 20일 경영난으로 운항을 중단하면서 양양공항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정의진 기자
지난 14일 오후 4시30분께 전남 광주에서 무안국제공항 방향 무안광주고속도로. 함평 분기점을 지나자 도로에 차량이 뜸해졌다. 공항까지 남은 10㎞ 구간을 달리는 것은 기자가 탄 취재 차량을 제외하면 화물차 한 대뿐이었다. 10분 뒤 도착한 공항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2층 출국장은 벌써 ‘영업 종료’ 상태였다. 항공사 직원, 여행객도 보이지 않았고 식당과 은행 문도 닫혀 있었다. 이날 이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5시 제주행 한 대뿐이었다.

국비 3000억원을 투입해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의 현주소다. 무안공항은 지난해 활주로 이용률(활주로 처리 능력 대비 항공기 운항 횟수)이 0.1%로 전국 14개 공항 중 ‘꼴찌’다.

이달 기준 무안공항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항공편은 한 편도 없다. 국제선은 베트남 다낭과 일본 나고야를 오가는 전세기뿐이고 국내선은 제주와 김포를 부정기적으로 오가는 하이에어 소속 소형 여객기가 유일하다. 지난달 무안공항을 이용한 항공편은 35편으로, 하루 한 편꼴이었다. 이용객은 5980명에 그쳤다. 그나마 5월은 연휴가 많아 사정이 나았다. 4월에는 이용객이 1990명으로, 하루 66명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무안공항은 만성적자다. 지난해 순손실이 200억원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순손실은 1300억원을 넘는다. 무안공항의 실패는 개항 때부터 예고됐다. 청주공항(대전, 충남·북)과 대구공항(대구·경북)은 두 개 이상의 광역시·도를 배후지로 둬 일정 규모의 항공 수요가 있지만 무안공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안공항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광주공항이 있다.

그런데도 공항이 들어선 것은 정치적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실세였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공항 건설을 주도했다. 경제성을 무시한 결과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이다.

한달째 불 꺼진 양양공항…혈세 3500억 들였는데 항공편이 없다

무안공항 이용률이 저조하자 정부는 KTX 호남선을 인근에 끌어들여 ‘무안공항 살리기’에 나섰다. 기자가 무안공항을 찾았을 때 인근에선 호남고속철도 2단계 무안국제공항역 신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광주 송정역에서 무안공항을 거쳐 목포역에 이르는 77.8㎞ 구간을 고속화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9월 착공한 이 구간은 2025년 12월 개통이 목표다. 총 2조5300억원이 투입된다. 무안공항 안에선 활주로를 2800m에서 3160m로 연장하는 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중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2조원 투입해 KTX까지 건설

3000억 들인 무안공항…하루 항공기 1대 뜬다
하지만 지역 여론은 싸늘하다. 지금도 전북 주민들은 국제선을 이용할 때 무안공항보다 청주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전남 동부권 주민들은 김해공항을 주로 찾는다. 국내선을 이용할 때는 광주공항을 찾는다. 항공사들도 무안공항 국제선 노선 증편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승객 수요가 워낙 적기 때문에 정기 노선을 신설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무안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전북 새만금 간척지엔 2029년 새만금 국제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에도 국비 8077억원이 투입된다.

문제는 수익성이 불투명한 지방공항이 여기저기 난립한다는 점이다. 호남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새만금공항이 들어서면 군공항을 겸하는 군산공항을 제외하고도 이 지역에만 세 개의 공항(광주공항, 무안공항, 새만금공항)이 들어서게 된다. 이들 공항이 모두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안공항과 광주공항 통합 논의도 있지만 지역 간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양양공항은 지난달부터 ‘유령공항’

무안공항과 함께 열악한 공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은 양양공항이다. 지난 15일 찾은 강원 양양국제공항 도착장 대합실은 조명이 모두 꺼져 있었다. 보안 요원 1명과 안내데스크 직원 두 명을 제외하면 축구장 넓이의 대합실은 텅 비어 있었다. 편의점 입구에는 ‘임시휴업’ 간판이 걸려 있었다. 공항 보안요원은 “(2019년 11월) 유일하게 양양∼제주 노선을 취항했던 플라이강원이 경영난으로 지난달 20일 운항을 중단하면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한 편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항이 정상화하더라도 경제성은 크지 않다. 양양공항은 지난해 활주로 이용률이 6.4%에 그쳤다.

양양공항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활주로가 짧은 강릉·속초공항을 대체할 대형 국제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지역 정치 논리로 시작됐다. 당시 ‘영동권 항공 수요가 30만 명에 불과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총선을 앞두고 무시됐다. 2002년 4월 국비 3500억원을 들여 문을 연 양양공항은 연간 국내·국제선 4만3000여 대, 승객 300만 명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개항하자마자 여객 수요 부족에 시달렸다. 지난해엔 개항 이후 가장 많은 2900여 편이 운항했지만 활주로 이용률은 6%대였다. 반면 시설 유지비 등 지출은 꾸준히 증가해 최근 10년간 누적 손실액은 1100억원을 웃돈다. 경제성을 무시한 채 정치 논리만 앞세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가덕도, 대구경북, 흑산도, 울릉도, 서산 등 전국적으로 10개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사업비도 만만찮다. 특별법에 따라 추진되는 가덕도 신공항은 2029년 개항이 목표인데, 사업비가 6조~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사업도 사업비가 12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존 지방 공항 상당수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신공항이 대거 들어서면 경쟁이 심해지고 그만큼 수익성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안·양양=박상용/강경민/정의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