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 ‘소방수’…위기때마다 소리없이 강했다
박지만 EG회장과 동창…외환위기 때 부실기업 처리
2001년
김석동 사단 합류…부드러운 카리스마 발휘
추 부총리와 행시 동기이자 절친…금융수장 F4 멤버
“내 마지막 소임은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약”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소리 없이 강한’ 스타일의 관료로 꼽힌다. 평소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이지만 일 처리만큼은 치밀하고 꼼꼼해서다. 이런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저축은행 줄도산 등 각종 위기 때마다 정부 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이 무겁고 소탈한 데다 업무 능력을 겸비해 선후배로부터 신망도 두텁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 충격’이 또 다른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았던 것 역시 재정·통화·감독당국과 ‘찰떡 공조’를 이끌어낸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꽃 튀는 논쟁 끝까지 경청…합리적 결론 내려

최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회의실에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실국장들이 한데 모였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한 내용이 도마에 올랐다. 가상자산 제도화는 금융혁신기획단을 이끌고 있는 박민우 단장이 맡고 있다. 자금세탁과 관련해 가상자산업체 감독·검사권을 쥔 금융정보분석원(FIU)이나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정책국의 발언권도 작지 않다. 게다가 안창국 FIU 제도운영기획관과 이형주 금융정책국장은 모두 금융혁신기획단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규제 방향을 놓고 이들 전현직 단장 간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김 위원장이 지켜보는 앞이었지만 일부 참여자의 언성이 높아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금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토론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담당 부서장들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한 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며 “정책이 최종 결정되기 전까지 지루한 공방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그런 만큼 정밀한 논리적 근거와 추진 탄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처럼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후배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김 위원장만의 힘”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낀 ‘모범생 동생 친구’

김 위원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전통의 명문 사학인 중앙고를 나왔다. 이미 정·재계와 관가 등 각계 지도층 인사를 숱하게 배출한 명문고에 그는 1974년 ‘무시험 뺑뺑이’ 1기로 입학했다. 공교롭게도 그와 똑같은 행운을 안은 동기동창 중 한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평범한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성장한 김 위원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박 회장의 누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동생의 모범생 친구를 자랑스러워하며 각별히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왼쪽 두번째)과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세번째). 한경DB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왼쪽 두번째)과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세번째). 한경DB
1977년 중앙고를 졸업한 김 위원장은 그해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학부를 마치고 1981년 행정고시(25회)에 합격해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3년 총무처 수습사무관을 시작으로 재무부에 배속받아 증권국, 국제금융국, 이재국, 금융정책실 등 주요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바쁜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8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1991년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질 무렵엔 재무부의 후신인 재정경제원에서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등 부실기업 처리를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일했다. 이어 아시아개발은행(ADB) 투자담당관(investment officer)으로 발령받아 본부 소재지인 필리핀 마닐라에서 3년간 파견 근무도 했다.

‘김석동 사단’ 합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해외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2001년 신생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로 옮겼다. 금감위로 그를 호출한 인물은 김석동 당시 감독정책1국장이었다. 평소 김 위원장의 업무 능력을 눈여겨보던 그가 핵심 보직인 감독정책과장으로 발탁한 것. 때마침 신용카드 부문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1999년 경기 부양을 이유로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등 브레이크가 해제되면서 막대한 대출이 풀렸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끝내 2003년 업계 1위 LG카드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카드 대란이 터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사 자본 확충이나 LG카드 매각 등 주요 대책이 모두 김 위원장의 손을 거쳐 청와대 등에 보고됐다.

그렇게 ‘김석동 사단’에 합류한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홍보관리관, 감독정책2국장, 기획행정실장 등 금감위 내 요직을 거쳤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뒤 핵심 요직인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에 기용됐다.
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 ‘소방수’…위기때마다 소리없이 강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주요국 증시는 급전직하했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선을 뚫었다. 한국도 곧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란 루머가 외신 등에서 퍼져나갔다. 이번엔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현 한국은행 총재)과 머리를 맞댔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과 공조해 통화스와프 체결, 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 등 시장 안정 조치를 내놨고 위기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2011년엔 금융위원장으로 컴백한 김석동과 운명처럼 재회했다. 정권이 바뀐 뒤 야인이 된 ‘해결사’를 이명박 정부가 다시 불러들인 이유가 있었다. 이번엔 저축은행이 말썽을 부렸다. 그해 초부터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솔로몬·제일·미래 등 대형 저축은행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전 정부 시절 부동산 호황이 빚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번에도 김석동·김주현 콤비가 진가를 나타냈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부실 저축은행을 대기업과 대형 은행에 매각해 시스템 위기로의 전이를 막아냈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F4찰떡 궁합을 빚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김 위원장과 행시 25회 동기이자 절친이다. 재무부(MoF)·금감위에서 성장한 김 위원장과 달리 추 부총리는 경제기획원(EPB)·재경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때 금감위와 재경부 금융정책국을 합친 금융위가 출범하면서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게 됐다. 승진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2009년 김 위원장이 사무처장으로 승진하면서 금융정책국장 자리를 추 부총리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추 부총리는 이듬해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발탁됐고 또다시 1년 만에 금융위 부위원장(차관급)을 꿰찼다. 사무처장만 3년째 하고 있던 김 위원장의 직속 상관이 됐다.

김 위원장은 29년의 공직 생활을 접고 2012년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임명돼 금융위를 떠났다. 이어 2016년과 2019년에는 각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와 여신금융협회장에 선임됐다. 반면 추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쳐 총선에 출마해 대구 달성에서 재선 국회의원에 올랐다. 한 관계자는 “추 부총리가 당시 청와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직행한 데 대해 김 위원장에게 마음의 빚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2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국내 금융당국 수장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한경DB
지난 2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국내 금융당국 수장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한경DB
추 부총리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로서 초대 내각을 꾸릴 때 김 위원장을 떠올린 것도 이런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까. 김 위원장은 9대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돼 10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했다. 그는 첫 일성으로 금융 규제 완화를 꺼내들었다. 지난 10년간 민간 금융회사 경험이 김 위원장의 관료적 시각을 크게 교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명 직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경쟁사들은 할 수 있는데 국내 금융회사들이 규제에 막혀 못한다거나 빅테크는 할 수 있는 일을 기존 금융회사가 못하는 사례 등을 살펴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규제를 풀겠다”며 “필요하다면 금산분리, 전업주의 규제까지도 건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임명으로 현 정부의 ‘경제 원팀’이 완성됐다. 추 부총리나 이창용 총재는 물론 검사 출신 첫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원장까지 김 위원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녹아들었다. 이들 금융당국 수장 4인은 지금도 주말마다 모여 금융시장 상황을 공유하고 현안을 논의한다. 2009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들을 빗대 ‘F4(Finance 4)’란 별명도 붙었다.

이들 간 ‘찰떡 궁합’은 작년 10월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채권시장 위기를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전채 등 공공채권 금리마저 연 6%까지 치솟는 등 자금 경색이 심화하자 토요일인 지난해 10월 22일 비공개 F4 회의가 열렸고 다음날인 23일 ‘50조원+α’ 규모의 긴급 대책이 발표됐다. 이런 발 빠른 대처 덕에 채권시장은 연말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약이 마지막 소임”

일각에서는 F4 가운데 유독 김 위원장의 존재감이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추 부총리나 이 총재는 물론 이 원장보다도 대외 노출이 적은 것 같다”며 “금융회사들도 상위 기관인 금융위보다 ‘실세 원장’이 있는 금감원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대외 노출을 즐기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F4 회의 등에서 사전 조율을 통해 정부 차원의 단일 메시지가 외부로 나가는 걸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김 위원장도 평소 직원들에게 “국민이 보기엔 어차피 다 같은 정부인데 관계기관끼리 서로 싸우거나 경쟁하는 것처럼 비쳐선 안 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서울 양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금융위가 당시 새롭게 선보인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한경DB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서울 양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금융위가 당시 새롭게 선보인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한경DB
김 위원장은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약을 자신의 마지막 소임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우리 금융회사들이 수 차례의 위기를 넘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세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꾸려진 ‘금융산업 글로벌화 태스크포스(TF)’에서는 해외 자회사 설립 규제를 완화하는 등 각종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금융회사들이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사업조차 금산분리 등 국내 규제로 제한받는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담은 ‘금융회사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규제 개선 방안’은 오는 7월 발표될 예정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