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 ‘소방수’…위기때마다 소리없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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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 ‘소방수’…위기때마다 소리없이 강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20574.1.png)
2001년 ‘김석동 사단’ 합류…부드러운 카리스마 발휘
추 부총리와 행시 동기이자 절친…금융수장 F4 멤버
“내 마지막 소임은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약”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소리 없이 강한’ 스타일의 관료로 꼽힌다. 평소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이지만 일 처리만큼은 치밀하고 꼼꼼해서다. 이런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저축은행 줄도산 등 각종 위기 때마다 정부 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이 무겁고 소탈한 데다 업무 능력을 겸비해 선후배로부터 신망도 두텁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 충격’이 또 다른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았던 것 역시 재정·통화·감독당국과 ‘찰떡 공조’를 이끌어낸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꽃 튀는 논쟁 끝까지 경청…합리적 결론 내려
최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회의실에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실국장들이 한데 모였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한 내용이 도마에 올랐다. 가상자산 제도화는 금융혁신기획단을 이끌고 있는 박민우 단장이 맡고 있다. 자금세탁과 관련해 가상자산업체 감독·검사권을 쥔 금융정보분석원(FIU)이나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정책국의 발언권도 작지 않다. 게다가 안창국 FIU 제도운영기획관과 이형주 금융정책국장은 모두 금융혁신기획단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규제 방향을 놓고 이들 전현직 단장 간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김 위원장이 지켜보는 앞이었지만 일부 참여자의 언성이 높아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김주현 금융위원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18506.1.jpg)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낀 ‘모범생 동생 친구’
김 위원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전통의 명문 사학인 중앙고를 나왔다. 이미 정·재계와 관가 등 각계 지도층 인사를 숱하게 배출한 명문고에 그는 1974년 ‘무시험 뺑뺑이’ 1기로 입학했다. 공교롭게도 그와 똑같은 행운을 안은 동기동창 중 한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평범한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성장한 김 위원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박 회장의 누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동생의 모범생 친구를 자랑스러워하며 각별히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왼쪽 두번째)과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세번째). 한경DB](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18507.1.jpg)
‘김석동 사단’ 합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해외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2001년 신생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로 옮겼다. 금감위로 그를 호출한 인물은 김석동 당시 감독정책1국장이었다. 평소 김 위원장의 업무 능력을 눈여겨보던 그가 핵심 보직인 감독정책과장으로 발탁한 것. 때마침 신용카드 부문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1999년 경기 부양을 이유로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등 브레이크가 해제되면서 막대한 대출이 풀렸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끝내 2003년 업계 1위 LG카드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카드 대란이 터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사 자본 확충이나 LG카드 매각 등 주요 대책이 모두 김 위원장의 손을 거쳐 청와대 등에 보고됐다.그렇게 ‘김석동 사단’에 합류한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홍보관리관, 감독정책2국장, 기획행정실장 등 금감위 내 요직을 거쳤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뒤 핵심 요직인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에 기용됐다.
![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 ‘소방수’…위기때마다 소리없이 강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20575.1.png)
2011년엔 금융위원장으로 컴백한 김석동과 운명처럼 재회했다. 정권이 바뀐 뒤 야인이 된 ‘해결사’를 이명박 정부가 다시 불러들인 이유가 있었다. 이번엔 저축은행이 말썽을 부렸다. 그해 초부터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솔로몬·제일·미래 등 대형 저축은행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전 정부 시절 부동산 호황이 빚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번에도 김석동·김주현 콤비가 진가를 나타냈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부실 저축은행을 대기업과 대형 은행에 매각해 시스템 위기로의 전이를 막아냈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F4…찰떡 궁합을 빚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김 위원장과 행시 25회 동기이자 절친이다. 재무부(MoF)·금감위에서 성장한 김 위원장과 달리 추 부총리는 경제기획원(EPB)·재경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때 금감위와 재경부 금융정책국을 합친 금융위가 출범하면서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게 됐다. 승진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2009년 김 위원장이 사무처장으로 승진하면서 금융정책국장 자리를 추 부총리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추 부총리는 이듬해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발탁됐고 또다시 1년 만에 금융위 부위원장(차관급)을 꿰찼다. 사무처장만 3년째 하고 있던 김 위원장의 직속 상관이 됐다.김 위원장은 29년의 공직 생활을 접고 2012년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임명돼 금융위를 떠났다. 이어 2016년과 2019년에는 각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와 여신금융협회장에 선임됐다. 반면 추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쳐 총선에 출마해 대구 달성에서 재선 국회의원에 올랐다. 한 관계자는 “추 부총리가 당시 청와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직행한 데 대해 김 위원장에게 마음의 빚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2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국내 금융당국 수장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한경DB](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18525.1.jpg)
김 위원장의 임명으로 현 정부의 ‘경제 원팀’이 완성됐다. 추 부총리나 이창용 총재는 물론 검사 출신 첫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원장까지 김 위원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녹아들었다. 이들 금융당국 수장 4인은 지금도 주말마다 모여 금융시장 상황을 공유하고 현안을 논의한다. 2009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들을 빗대 ‘F4(Finance 4)’란 별명도 붙었다.
이들 간 ‘찰떡 궁합’은 작년 10월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채권시장 위기를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전채 등 공공채권 금리마저 연 6%까지 치솟는 등 자금 경색이 심화하자 토요일인 지난해 10월 22일 비공개 F4 회의가 열렸고 다음날인 23일 ‘50조원+α’ 규모의 긴급 대책이 발표됐다. 이런 발 빠른 대처 덕에 채권시장은 연말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약이 마지막 소임”
일각에서는 F4 가운데 유독 김 위원장의 존재감이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추 부총리나 이 총재는 물론 이 원장보다도 대외 노출이 적은 것 같다”며 “금융회사들도 상위 기관인 금융위보다 ‘실세 원장’이 있는 금감원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대외 노출을 즐기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F4 회의 등에서 사전 조율을 통해 정부 차원의 단일 메시지가 외부로 나가는 걸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김 위원장도 평소 직원들에게 “국민이 보기엔 어차피 다 같은 정부인데 관계기관끼리 서로 싸우거나 경쟁하는 것처럼 비쳐선 안 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서울 양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금융위가 당시 새롭게 선보인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한경DB](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18599.1.jpg)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