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최악의 M&A 가뭄 왔다…거래 규모 '1300조원' 증발
전 세계 기업 인수·합병(M&A) 및 기업공개(IPO) 시장이 10년 만에 최악의 해를 맞고 있다. 자금 조달비용 증가,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인해 거래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1조달러 줄어들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상반기 M&A 및 IPO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42% 줄어든 1조3000억달러(약 171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0년을 제외하면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I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68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3분의1 이상 감소했다.

투자은행(IB) 업계가 크게 위축된 것은 자금 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2022년 초까지 유지되던 0%대 미국 중앙은행(Fed) 기준금리는 지난달까지 급격히 올라 5%대를 찍었다. 제로금리 시기에는 자금 조달이 원활하고 주가도 치솟아 IB 시장이 급격히 활성됐으나, 지금은 그 반대다. 도미닉 레스터 제프리파이낸셜그룹 유럽 투자은행 책임자는 "많은 투자 은행이 부채 금융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돼 있으며, 대체 부채 금융 조달원은 그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라고 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기업거래 시장이 가라앉은 원인 중 하나다. 투자회사 나인티원의 포트폴리오 책임자인 스테파니 니븐은 "경기 침체의 시기는 예측하기 어렵고 대부분 소비자가 주도하는 만큼 투자자들은 조심스럽다"라며 "시장이 경기 침체에 대한 가격을 정확히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합병 사례에서 드러난 각국 규제당국의 개입도 IB 시장 위축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투자은행 및 M&A 전문기업들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간체이스는 지난해 1월 인력 약 1600명을 구조조정한 데 이어 올해 2분기까지 임직원 3000명을 감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200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M&A 전문기업인 라자드는 이달 초 인력 약 10%를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정적인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헬스케어와 원자재 기업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올해 가장 큰 M&A 거래 두 건이 각각 이 분야에서 나왔다. 화이자는 항암제 제조업체 시젠을 430억달러(약 56조원)에, 호주 광물기업인 뉴몬트가 자국 라이벌인 뉴크레스트마이닝을 288억 호주달러(약 25조원)에 인수했다.

부진한 시장에서도 중동 국부펀드는 큰 손으로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는 스포츠, 게임, 기술기업 등 전 세계 유망 기업을 찾아 M&A를 시도하고 있다. 카타르투자청 역시 유럽을 벗어나 전 세계에서 거래 대상을 탐색하고 있다.

IPO 시장에서는 중국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올해 조달된 자금 절반이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은 현지 기업의 해외 상장을 규제하고 국내 상장을 장려하고 있다. 중국 농업기술 기업인 신젠타는 올해 IPO 시장 최대어로 거론된다. 신젠타는 650억위안(약 11조8000억원) 규모의 IPO에 대한 거래소 승인을 받으면서 상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전환에 주력하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 분할과 분사가 부진한 IPO 시장의 부진을 메우고 있다는 평가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