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한강의 기적'을 캤다…'1호 탄광' 118년 만에 작별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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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국내 1호 탄광"…화순광업소 눈물젖은 종업식
1905년 문 연 화순탄광 폐광 기념 종업식 열려
광부歌 부르며 작별…게시판엔 취업박람회 포스터
한강의 기적 일궈낸 광부들 대통령 하사품 받기도
석유 보급 본격화에 밀려난 석탄…폐광논의 본격화
1905년 문 연 화순탄광 폐광 기념 종업식 열려
광부歌 부르며 작별…게시판엔 취업박람회 포스터
한강의 기적 일궈낸 광부들 대통령 하사품 받기도
석유 보급 본격화에 밀려난 석탄…폐광논의 본격화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전남 화순군 동면 복암리 화순광업소(화순탄광). 2교대로 직원 절반씩만 출근하던 화순광업소가 모처럼 269명의 전직원으로 북적였다. 이날은 화순탄광이 문을 연 지 118년 만에 폐광하는 날. “막장 인생도 이제 정말 끝이네. 수고들 했어”. 광부들은 애써 씩씩한 척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지만 촉촉해진 눈가를 감출 순 없었다. 괜히 석탄 냄새 밴 사물함도 열어보고 장화세척실도 돌아보는 광부들 뒤로 장맛비를 머금은 짙은 안개가 깔려있었다.
그런 화순에도 한땐 2200명이 넘는 석탄 산업 종사자가 살았다. 화순광업소를 나와 충의로를 따라 걷다 보면 지금도 길 양쪽으로 문이 닫혀있는 상가들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번화한 거리였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사방이 산지인 촌동네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산업 전사라는 자부심 외에 높은 연봉도 따라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부터 자신의 아들까지 3대가 광부일을 했다던 정철진(60)씨는 “1970년대 아버지 임금이 공무원 월급의 두 세배는 돼서 매일 집 목욕탕서 온수로 목욕을 하셨다”며 “아버지가 진폐증인지 뭔지 모르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어도 석탄을 캐서 국가 산업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높은 연봉 덕에 광부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서른 여섯살 그의 아들은 폐광이 된 탄광에 그대로 남아 지하수를 빼내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게 나을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공부를 못하니께…”라고 말했지만 부끄러운 투는 아니었다. 아들 얘기를 하는 그의 눈은 시종일관 기자를 올곧게 응시했다.
정부는 재정소요와 안전문제를 이유로 작년부터 석탄공사 노사정 간담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폐광을 논의해 왔다. 이에 따라 올해 화순탄광을 시작으로 2024년엔 태백 장성탄광, 2025년엔 삼척 도계탄광이 순서대로 폐광된다. 2025년이 되면 국내에서 운영되는 탄광은 민영인 강원 삼척 경동탄광 단 한 곳만 남는다. 화순광업소 소속 광부 269명 중 220여명은 이날로 퇴사했다. 화순광업소 게시판엔 이들을 위한 취업박람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몇몇 직원들은 얼마전 목포에서 열린 조선업 취업박람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50여명은 계약직으로 전환돼 향후 5~6년간 탄광을 지킬 예정이다. 갱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중금속을 머금은 채 주변 하천에 그대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빼내고 정화하는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수질 처리 책임자 임승준(58·사진)씨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화순탄광을 책임지고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부친이 경북 문경 은성탄광에서 광부생활을 했던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화순탄광 폐광에 부쳐 “화순탄광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연대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큰 역할을 마치고 명예롭고 아름답게 퇴장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정부에서 원전 발전을 중점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 한 광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동료의 손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화순 마을 어귀엔 ‘화순 탄광 광부들의 노고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비에 젖어 나부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한강의 기적 일군 광부들…매년 대통령 하사품 받아
지난달 30일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종업식이 열렸다. 1905년 문을 연 ‘국내 1호 탄광’ 화순탄광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순직 직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종업식은 직원 모두가 광부가(歌)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나 죽어 이 광산에 묻히면 그만이지/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광부의 아들이다’. 포털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는 노래건만 가사를 얼버무리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화순탄광은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로 ‘한강의 기적’의 숨은 주역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석탄이 방직 공장 등 전국 산업시설의 불을 밝혔고, 정부는 광부들을 ‘산업 전사’라 부르며 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치켜세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부들에겐 매년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는 명찰이 붙은 방한복이 전달됐다. 산간 협곡의 추운 탄광촌에서도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을 일으켜달라는 당부였다. 화순공업소로 가는 길도 어찌나 험한지 일정한 압력으로 악셀을 밟고 있어도 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질 않았다.그런 화순에도 한땐 2200명이 넘는 석탄 산업 종사자가 살았다. 화순광업소를 나와 충의로를 따라 걷다 보면 지금도 길 양쪽으로 문이 닫혀있는 상가들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번화한 거리였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사방이 산지인 촌동네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산업 전사라는 자부심 외에 높은 연봉도 따라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부터 자신의 아들까지 3대가 광부일을 했다던 정철진(60)씨는 “1970년대 아버지 임금이 공무원 월급의 두 세배는 돼서 매일 집 목욕탕서 온수로 목욕을 하셨다”며 “아버지가 진폐증인지 뭔지 모르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어도 석탄을 캐서 국가 산업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높은 연봉 덕에 광부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서른 여섯살 그의 아들은 폐광이 된 탄광에 그대로 남아 지하수를 빼내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게 나을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공부를 못하니께…”라고 말했지만 부끄러운 투는 아니었다. 아들 얘기를 하는 그의 눈은 시종일관 기자를 올곧게 응시했다.
◆주탄종유→주유종탄…에너지산업 변화에 내리막 걸은 석탄
탄광 마을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석유와 가스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주탄종유(석탄을 주 에너지원으로 하고 석유를 보조 에너지원으로 하는 정책기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주유종탄 시대가 왔다. 이에 정부는 1989년부터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성 낮은 탄광을 잇따라 폐광시켰다. 1988년 347개에 달하던 탄광은 정책이 시행된 지 8년 만인 1996년 11개로 급감했다. 줄어드는 석탄수요에 생산원가가 급증, 대한석탄공사는 1990년대 이후 만성적자에 시달리며 현재 누적부채가 2조원이 넘는다.정부는 재정소요와 안전문제를 이유로 작년부터 석탄공사 노사정 간담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폐광을 논의해 왔다. 이에 따라 올해 화순탄광을 시작으로 2024년엔 태백 장성탄광, 2025년엔 삼척 도계탄광이 순서대로 폐광된다. 2025년이 되면 국내에서 운영되는 탄광은 민영인 강원 삼척 경동탄광 단 한 곳만 남는다. 화순광업소 소속 광부 269명 중 220여명은 이날로 퇴사했다. 화순광업소 게시판엔 이들을 위한 취업박람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몇몇 직원들은 얼마전 목포에서 열린 조선업 취업박람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50여명은 계약직으로 전환돼 향후 5~6년간 탄광을 지킬 예정이다. 갱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중금속을 머금은 채 주변 하천에 그대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빼내고 정화하는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수질 처리 책임자 임승준(58·사진)씨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화순탄광을 책임지고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부친이 경북 문경 은성탄광에서 광부생활을 했던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화순탄광 폐광에 부쳐 “화순탄광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연대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큰 역할을 마치고 명예롭고 아름답게 퇴장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정부에서 원전 발전을 중점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 한 광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동료의 손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화순 마을 어귀엔 ‘화순 탄광 광부들의 노고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비에 젖어 나부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