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 감독 "손예진 성장기이자 정해인의 성장기"
현실 연애 담아 리얼…열애설 의혹은 일축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고 이별한다. 사람이 하는 연애란 보편성을 띠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사랑이기에 언제나 특별하다고 여긴다.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헤어짐을 고하는 처절한 순간까지, 지나고 보면 모두 매력적인 추억이다.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여자’의 미덕은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지난 나의 모습을 소중히 다루어 반짝반짝 빛나도록 보여주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윤진아(손예진)이고, 서준희(정해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는 3월 30일 첫 방송부터 ‘리얼 멜로’, ‘인생 드라마’ 라는 호평을 받으며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3위로 꼽히기도 했다. 방송 6회 만에 수도권 7.1%, 전국 6.2%(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6부작인 이 작품은 이번 주 9회 방송을 앞두고 있다. 대본은 지난해 탈고했고, 촬영 또한 7회차 만이 남아있다.
사실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는 요즘 세상에 그리 특별한 소재는 아니다. 시청자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주연배우 손예진, 정해인은 ‘실제로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연기력에 대한 찬사를 받고 있다.
◆ 안판석 감독 "'예쁜 누나' 살아 남은 자들의 일상 담아 리얼"
26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만난 안판석 감독은 “인간은 다 똑같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작품에 잘 배어나게 하는 것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그는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이들의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겉은 같아 보이지만 무엇인가 변한다. 어느 날은 울고, 어느 날은 웃는다. ‘예쁜 누나’ 속 진아와 준희도 화해하고, 키스하고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이다.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자의 일상. 그 미묘한 차이를 시청자 중 누군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용기를 냈다.”
안 감독은 ‘예쁜 누나’의 주인공은 윤진아, 즉 손예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한 명이어야 하고, ‘예쁜 누나’의 주인공은 손예진이다. 준희는 진아의 곁에서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진아의 인생에서 편린처럼 보여질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8회에서 드디어 가족들에게 연애 사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한 진아와 준희. 눈치를 보며 숨기기 급급했던 두 사람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진아는 준희의 한없이 보듬어주는 사랑에 불안한 마음도 접고 헤쳐 나갈 용기를 냈다. 함께 손을 잡고 쌓아온 사랑이 두 사람의 내면까지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갈 길에 귀추가 주목된다.
안 감독은 드라마 후반에 대해 “진아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준희의 성장기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1회의 진아는 30대 중반의 나이, 직장 생활은 능숙하지만 생의 어떤 부분에선 미숙한 각성한 자아가 아니었다. 준희와의 사랑이 전개되면서 삶에 대해 통찰이 오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는 “윤진아는 서준희를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각성해 나간다. 사랑하면 서로 영향을 받고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지 않나. 진아 때문에 서준희도 변한다. 능청 떨고 가벼운 서준희에서 진지한 서준희로 상당히 많이 변해 있다”고 설명했다.
남은 8회분에 대해서 안 감독은 "7,8부 대본이 나왔을 때 글자를 보면서 막 울었다. 슬픈 대목에서는 감정이입 정도가 아니고, 이상한 상황이다.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내가 당한 일처럼 운다. 16부까지 대본 작업을 하면서 펑펑, 철철 울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반 정도 남아있는데 끝까지 지켜봐 줬으면 한다. 진아와 준희가 어떤 점에서 성장하는지, 사랑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평가 해 달라. 악평도 달게 받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지금의 손예진·정해인이라 가능해, 윤진아를 연기한 손예진은 실제 모습의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고 고백했다. “평소 제가 하는 말투, 행동 등 개인적인 성향의 것을 끌어왔다. 나잇대도 비슷하고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얘기하고, 직장인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많은 것을 이루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허무감이 들 때도 있다.”
시청자들은 이 때문에 진아와 준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실제인지 아닌지 모를 현실감 있는 대사나 상황, 누구나 한 번쯤은 연애하면서 해왔던 말들은 큰 공감을 샀다.
손예진은 “준희와의 사랑이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했다. 이제껏 수많은 멜로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 짜여진 틀 안에 연기했다면 지금은 마음껏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연기하고 있다. 촬영하면서 너무 설렌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정해인은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걷는지 스스로 관찰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준희와 내가 가진 성질이 맞물리는 지점이 많았다. 나 자신으로 연기를 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초반 애정신에서 두 배우는 조금 어색했던 상황을 털어놨다. 정해인은 “대본을 따라 집중해 연기해도 사람 정해인이 연기하는 거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색하면 낯선 느낌으로 전해진다. 스스로 그런 감정을 느끼면 대본에 있는 대사를 제대로 전달 못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극 중 누나와 동생이라는 관계로 잘 보여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손예진은 “정말 리얼하게 보이고 싶었는데 촬영 초반 애정신을 찍으니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음악으로 커버가 된 것 같다. 연애 초반의 감정들은 조금 쑥스러웠다”라고 덧붙였다.
손예진의 말처럼 ‘예쁜 누나’의 OST는 특히 진아와 준희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하는데 큰 힘이 됐다. 대중에게 익숙한 올드팝 ‘Save the last dance for me’, ‘Stand by your man’과 레이첼 야마가타의 ‘Something in the Rain’, ‘La La La’ 등은 이들의 진짜 연애를 감성적으로 담아내며 각종 음원차트 역주행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판석 감독은 “나의 사랑을 생각하면 항상 음악과 결부돼 있었다. 어쩌면 음악이 맨 위에 있는 것 같다. 걸어가며 거리에 음악이 나오거나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예쁜 누나’를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음악을 결정했다. ‘이 곡은 얼마나 비쌀까’, ‘살 수 있을까?’하면서 말이다. 음악도 연기를 하고, 서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얼마나 리얼했으면…열애설 불러온 연기 앙상블 톱스타인 손예진의 입지와 비교할 때 정해인은 ‘예쁜 누나’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다. 정해인이 캐스팅된 데에는 손예진의 추천도 있었다. 안판석 감독은 “모든 배우들을 모르니 주변인들에게 추천받기도 한다. 손에진이 정해인에 대해 언급하더라. 인터넷으로 동영상 클립을 3개 봤는데 ‘주인공 해야겠다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어 “내가 오만한지 모르겠지만 1분을 보면 이 사람이 연기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다 안다. 연기라는 게 무서워서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짧은 신은 이렇게 잘하는데 주인공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데 다 잘한다. 손예진도 ‘멜로퀸’이라고 하는데, 멜로만 잘하는 게 아니다. 스릴러, 액션, 코미디도 다 되는 배우다”라고 덧붙였다.
안판석 감독은 "저 두사람이 사귀냐는 질문에 '오죽 리얼했으면...'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편으로는 그런 질문을 안 받고 싶기도 하다. 드라마는 친근한 것이라 누구나 쉽게 아무말이나 할 수 있다. 전국민이 직업이 두개다. 드라마 비평가들이 많다. 감독 입장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늘 작품을 하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드라마에 대한 생각을 소중히 다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착해지고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 예술이 영향을 주는데 우리 국민은 예술 행위를 어떻게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국민이 유일하게 향유하고 행할 수 있는 예술 행위다. 너무 중요하다. 드라마를 소중히 가꿨으면 좋겠다. 저는 사명감이 있다. 막판에 스퍼트를 한 번 올려본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극 중 정해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손예진은 주변 지인들의 부러움과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행복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이렇게 반응이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 영화는 촬영하고 난 후 개봉되지만 드라마는 라이브하게 반응을 접할 수 있다. 정해인 덕에 부러움의 대상이 돼 고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해인은 “남자답고 보호하려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던 준희가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생각하며 성숙해진다. 31살이라고 해서 어른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사랑을 하면서 관계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날 거라고 예상한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손예진은 “다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뭉클하다. 감독님이 준희 자체다. 우리는 사기 캐릭터라고 말한다. 많은 것을 가진 인격체다. 저는 두 준희와 함께 연기한다. 감독님이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그 말에 절감한다. 원래 작품 끝나면 잘 빠져 나오는데 이번엔 좀 걱정이 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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