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꼬집은 장르에 몰입…결국 소재보단 완성도"
사회 상류층과 중산층의 민낯을 폭로하는 '막장 심리극'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1%' 입시 전쟁을 그린 JTBC 'SKY 캐슬'부터 그들의 낯 뜨거운 불륜을 묘사한 '부부의 세계'가 연달아 히트한 후 같은 채널 '우아한 친구들', 부동산 문제까지 얹은 SBS TV '펜트하우스', MBC TV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잠실동 사람들'(가제)까지.
과거의 '막장극'에 세밀한 심리묘사를 얹은 새로운 장르가 최근 침체한 안방극장의 유일한 흥행 통로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막장극계 대모' 김순옥 작가가 집필 중인 '펜트하우스'와 소설 '잠실동 사람들'을 원작으로 한 신작의 경우 아직 공개되지 않아 성패를 가늠하기는 이르지만 '수위'가 더하면 더했지 이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가도 시청자들도 한창 유행하던 수사극도, 정통 멜로도, 로코(로맨틱코미디)마저도 내팽개치고 고품격(?) 막장 심리극에 몰두하는 이유는 최근 사회 구조나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집값은 날로 폭등하고, 중산층은 점차 붕괴해가는 현실 속에서 대중은 상류층의 이중성을 낱낱이 폭로하는 자극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11일 통화에서 "격변의 시대, 이중성에 균열이 가는 시대에 이러한 심리 묘사 장르는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라며 "본인만 알 수밖에 없는 이기적인 모습들을 과감히 드러내는 작품들이 시청자들을 뜨끔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기 성찰할 기회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이제 시청자는 비현실적인, 미화된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부동산, 교육 등 현시대의 주요 테마를 반영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진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공감을 얻다 보니 성공 공식처럼 돼서 여러 드라마가 그 콘셉트를 차용한다"고 분석했다.

'중산층', '부동산' 키워드에 주목하는 시선도 흥미롭다.

박지종 대중문화평론가는 "중산층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

특히 부동산이나 비트코인 등 소재는 아예 동떨어진 이슈가 아닌, 현실적인 중산층에 소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 소재로 발탁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 겸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중산층이 사실상 거의 붕괴한 가운데 극단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팁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시청자의 생각이 투영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과거에도 '강남엄마 따라잡기', '땅' 같은 작품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최근 더 부각된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라며 "단순히 모든 사람이 '부동산에 미쳐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재를 다룬다면 실패할 것이고, 본질을 제대로 풀어낸다면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KY 캐슬'과 '부부의 세계'가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와 섬세한 연출로 작품성을 확보했던 것을 상기하면 결국은 성패는 장르와 소재가 아닌 완성도에 달려있다는 게 방송가 안팎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비슷한 작품이 누적되면서 시청자의 피로도 쌓인 상황이라, 작품성은 더 중요해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중산층의 시선으로 본 부유층이 겉으로는 완벽한 세계 같지만,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폭로하는 드라마가 성공 사례를 보여줬다"면서도 "소재만 따라간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고, 얼마나 잘 다루느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