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자 "취미로 쓴 글…드라마 신기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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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 인기
원작 소설도 베스트셀러 역주행
"컵라면 익기 기다리며 떠오른 제목"
원작 소설도 베스트셀러 역주행
"컵라면 익기 기다리며 떠오른 제목"
"제 마음이 가는대로 살고 싶다"는 궁녀와 "넌 궁녀니 나의 것"이라면서도 마음을 강요하지 않았던 왕세자의 로맨스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다.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꼽히는 '정조-의빈 로맨스'를 기반으로, 이준호(이산 역)와 이세영(성덕임 역)의 호연과 탄탄한 만듦새로 호평을 얻으며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12일 5.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가구기준)으로 시작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10일 방송된 9회 시청률은 10.9%까지 치솟았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2.2%를 기록했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원작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와 함께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도 열람자수만 약 65만 명, 조회수 약 850만 회(웹툰, 웹소설 합산)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교보문고 12월 2주 베스트셀러에도 소설 분야 13위에 진입,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 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은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방영된 MBC '이산'에서도 이들의 로맨스를 담으면서 사랑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이 아닌 궁녀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궁녀 덕임이 왕의 총애로 희로애락을 느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궁궐 안에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평이다.
원작자인 강미강 작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첫 작품이었음에도 탄탄한 전개와 섬세한 필체로 호평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잔나비 공주 애사', '속임수 왕후' 등을 집필했다.
강 작가는 서면으로 진행된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취미로 쓰던 글을 출판사에 투고해 종이책으로 출판됐다"면서 "처음 책을 낼 땐 서점 한구석에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올해엔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독특한 제목에 대해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불쑥 '제목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
연일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에 대해서 "신기하다"면서 "특히 독자들이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져 저도 행복하다"고 밝혔다. ▲ '옷소매 붉은 끝동'이 책으로 발간된 게 2017년 4월 6일이더라고요. 4년 만에 드라마로 선보여졌는데, 원작자로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4월에 처음 책을 낼 때만 해도, 제가 쓴 이야기를 실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냥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저에게야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서점 한구석에라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조용히 흘러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여러 가지 감사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4년이 지난 올해,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상화된 결과물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신기한 감정이 더 큽니다.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만 있었던 이야기를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접할 때마다 여전히 깜짝 놀라곤 합니다.
▲ 어떻게 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소설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시게 되셨을까요?
정조의 후궁이 고전소설 '곽장양문록'의 필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의빈성씨는 물론 함께 작업을 했다는 궁녀들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한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던 인물에게 주어진 왕의 사랑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정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책과 영상물은 많은데, 의빈성씨에 대해서는 도통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조의 비극적인 인연으로서만 설명될 뿐, 개인으로서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료를 통해 의빈성씨의 행적을 짚으면서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제 상상이 꽤 구체적인 형태가 되었을 무렵, 소설 형식으로 정리를 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특히 의빈 성씨가 궁녀 시절 보여준 주체적인 모습이 독자들과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의빈성씨를 장점과 단점이 있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 인물상을 주체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받아 들여주신 분들이 계셔서 놀랍고 기뻤습니다. ▲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제가 혼자 취미로 쓴 글을 청어람에 투고하여 종이책으로 먼저 출판되었습니다. 다소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2017년 7월에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전자책을 발간하면서 웹소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꼽아보자면, 1권에 정조가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꽉 막히는 바람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 미리 구상까지 다 해놓았는데도 막상 쓰려니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서너 달을 방치한 채 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그냥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잡고 맨 첫 문장으로 돌아가 수정하면서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중단했던 부분에 다시 이르러서도 막힘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은 귀중한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저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1권의 목욕 장면을 다시 읽곤 합니다.
▲ 자료조사는 어떤 식으로 하셨을까요? 이야기로 풀어내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창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쓸 때는 1차 사료, 특히 '일성록'을 끼고 살았습니다. 기록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실록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까지 세세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다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1차 사료들이 잘 번역되어있지 않아서 팔자에도 없는 한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1차 사료를 통해 윤곽을 잡은 뒤부터는 정사든 야사든 정조시대를 다룬 서적을 계속 읽었고, 모교 도서관을 통해 '곽장양문록'에 대해 연구한 논문 등도 다수 참고했습니다.
영·정조 시기는 워낙 사료가 풍부해서 글감으로 쓸 만한 자료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사한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글의 주제의식과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 적합하도록 다듬는 것임을 늘 되새겼습니다. 때문에 정치사는 최대한 덜어내고 덕임의 입장에서 바라볼 만한 사건들을 메인 스토리와 어우러지게끔 고민했습니다.
▲ 이전까지 정조와 의빈성씨를 소재로한 작품은 소설이나 드라마로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런 콘텐츠와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갖는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정조는 인물 자체도 매력적이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도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과 창작을 통해 다각도에서 그려졌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도 결국에는 정조를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만, 의빈성씨의 인생과 관점에서 그를 바라본다는 부분이 차이점입니다. 영원한 주인공의 숙명을 타고 난 정조가 이 이야기에서는 의빈성씨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리하여 정조와 의빈성씨의 로맨스와 함께, 치열하고 다사다난한 조선사의 외진 구석을 차지했던 덕임과 궁녀들의 사소한 꿈과 욕망, 사연 등이 큰 줄기를 이룹니다.
▲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독특하면서 이산과 성덕임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런 제목이 탄생했을까요?
저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덕임을, 왕으로선 선뜻 붙잡을 수만은 없는 존재였던 궁녀를, 동시에 상징할 만한 제목을 짓고 싶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후보로 세 가지를 생각해뒀는데, 하나같이 센스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제목들이라 마음에 차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3부를 쓰던 어느 겨울날, 제목은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정말 갑자기 떠오른 제목이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고, 그대로 선택하였습니다.
▲ 드라마로 만들어진 '옷소매 붉은 끝동'은 원작 소설보다 궐내 정치적인 암투가 더 드러난 거 같더라고요. 드라마적 각색을 어떻게 보셨고, 제작 과정에서 의견 교류 등이 있었을까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미팅이 몇 차례 있었고, 제작진께서 여러 부분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각색된 극을 보면서 마냥 신기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저는 분량 문제로 초기구상보다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제조상궁 조씨와 같은 등장인물도 조명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준호, 이세영 등 출연 배우들과 작가님이 생각한 각 캐릭터들의 싱크로율이 어느정도 일치할까요?
제 머릿속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TV도 잘 안 보고 관심 분야가 한정적인 타입이다 보니, 특정한 인물을 대입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확정된 캐스팅을 보면서 신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연 배우님들 대부분이 역할에 참 잘 어울리신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저도 행복합니다.
▲ "실제 역사를 따르면서도 설레는 이야기를 그리자는 목표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꼭 지키려 했던 원칙"이라고 하셨어요. 현대극에 집필 계획은 없으실까요?
제 욕망을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에서 벗어나기 쉽고, 실제 역사를 충실히 좇자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한편, 내가 이만큼 안답시고 얄팍한 지식을 늘어놓느라 바쁘면 정작 장르소설로서 제일 중요한 재미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순전히 혼자서 취미로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작가인 동시에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지요. 따라서 독자로서의 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중간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곧 제가 글을 쓰면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현대극보다 역사극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현대극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정말 현대극으로 인사드릴 날이 온다면 저로선 영광일 것 같습니다.
▲ 강미강이라는 이름은 필명인가요?
예, 상당히 안이한 생각으로 제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랑 이것저것 섞어서 대충 지은 필명입니다.
▲ 앞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에 소개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금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현재로서는 장편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는 가벼운 현대극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과는 방향이 다른 역사로맨스입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2022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기 위해서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다.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꼽히는 '정조-의빈 로맨스'를 기반으로, 이준호(이산 역)와 이세영(성덕임 역)의 호연과 탄탄한 만듦새로 호평을 얻으며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12일 5.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가구기준)으로 시작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10일 방송된 9회 시청률은 10.9%까지 치솟았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2.2%를 기록했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원작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와 함께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도 열람자수만 약 65만 명, 조회수 약 850만 회(웹툰, 웹소설 합산)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교보문고 12월 2주 베스트셀러에도 소설 분야 13위에 진입,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 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은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방영된 MBC '이산'에서도 이들의 로맨스를 담으면서 사랑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이 아닌 궁녀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궁녀 덕임이 왕의 총애로 희로애락을 느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궁궐 안에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평이다.
원작자인 강미강 작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첫 작품이었음에도 탄탄한 전개와 섬세한 필체로 호평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잔나비 공주 애사', '속임수 왕후' 등을 집필했다.
강 작가는 서면으로 진행된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취미로 쓰던 글을 출판사에 투고해 종이책으로 출판됐다"면서 "처음 책을 낼 땐 서점 한구석에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올해엔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독특한 제목에 대해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불쑥 '제목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
연일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에 대해서 "신기하다"면서 "특히 독자들이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져 저도 행복하다"고 밝혔다. ▲ '옷소매 붉은 끝동'이 책으로 발간된 게 2017년 4월 6일이더라고요. 4년 만에 드라마로 선보여졌는데, 원작자로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4월에 처음 책을 낼 때만 해도, 제가 쓴 이야기를 실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냥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저에게야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서점 한구석에라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조용히 흘러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여러 가지 감사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4년이 지난 올해,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상화된 결과물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신기한 감정이 더 큽니다.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만 있었던 이야기를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접할 때마다 여전히 깜짝 놀라곤 합니다.
▲ 어떻게 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소설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시게 되셨을까요?
정조의 후궁이 고전소설 '곽장양문록'의 필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의빈성씨는 물론 함께 작업을 했다는 궁녀들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한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던 인물에게 주어진 왕의 사랑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정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책과 영상물은 많은데, 의빈성씨에 대해서는 도통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조의 비극적인 인연으로서만 설명될 뿐, 개인으로서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료를 통해 의빈성씨의 행적을 짚으면서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제 상상이 꽤 구체적인 형태가 되었을 무렵, 소설 형식으로 정리를 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특히 의빈 성씨가 궁녀 시절 보여준 주체적인 모습이 독자들과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의빈성씨를 장점과 단점이 있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 인물상을 주체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받아 들여주신 분들이 계셔서 놀랍고 기뻤습니다. ▲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제가 혼자 취미로 쓴 글을 청어람에 투고하여 종이책으로 먼저 출판되었습니다. 다소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2017년 7월에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전자책을 발간하면서 웹소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꼽아보자면, 1권에 정조가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꽉 막히는 바람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 미리 구상까지 다 해놓았는데도 막상 쓰려니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서너 달을 방치한 채 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그냥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잡고 맨 첫 문장으로 돌아가 수정하면서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중단했던 부분에 다시 이르러서도 막힘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은 귀중한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저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1권의 목욕 장면을 다시 읽곤 합니다.
▲ 자료조사는 어떤 식으로 하셨을까요? 이야기로 풀어내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창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쓸 때는 1차 사료, 특히 '일성록'을 끼고 살았습니다. 기록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실록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까지 세세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다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1차 사료들이 잘 번역되어있지 않아서 팔자에도 없는 한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1차 사료를 통해 윤곽을 잡은 뒤부터는 정사든 야사든 정조시대를 다룬 서적을 계속 읽었고, 모교 도서관을 통해 '곽장양문록'에 대해 연구한 논문 등도 다수 참고했습니다.
영·정조 시기는 워낙 사료가 풍부해서 글감으로 쓸 만한 자료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사한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글의 주제의식과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 적합하도록 다듬는 것임을 늘 되새겼습니다. 때문에 정치사는 최대한 덜어내고 덕임의 입장에서 바라볼 만한 사건들을 메인 스토리와 어우러지게끔 고민했습니다.
▲ 이전까지 정조와 의빈성씨를 소재로한 작품은 소설이나 드라마로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런 콘텐츠와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갖는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정조는 인물 자체도 매력적이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도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과 창작을 통해 다각도에서 그려졌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도 결국에는 정조를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만, 의빈성씨의 인생과 관점에서 그를 바라본다는 부분이 차이점입니다. 영원한 주인공의 숙명을 타고 난 정조가 이 이야기에서는 의빈성씨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리하여 정조와 의빈성씨의 로맨스와 함께, 치열하고 다사다난한 조선사의 외진 구석을 차지했던 덕임과 궁녀들의 사소한 꿈과 욕망, 사연 등이 큰 줄기를 이룹니다.
▲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독특하면서 이산과 성덕임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런 제목이 탄생했을까요?
저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덕임을, 왕으로선 선뜻 붙잡을 수만은 없는 존재였던 궁녀를, 동시에 상징할 만한 제목을 짓고 싶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후보로 세 가지를 생각해뒀는데, 하나같이 센스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제목들이라 마음에 차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3부를 쓰던 어느 겨울날, 제목은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정말 갑자기 떠오른 제목이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고, 그대로 선택하였습니다.
▲ 드라마로 만들어진 '옷소매 붉은 끝동'은 원작 소설보다 궐내 정치적인 암투가 더 드러난 거 같더라고요. 드라마적 각색을 어떻게 보셨고, 제작 과정에서 의견 교류 등이 있었을까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미팅이 몇 차례 있었고, 제작진께서 여러 부분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각색된 극을 보면서 마냥 신기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저는 분량 문제로 초기구상보다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제조상궁 조씨와 같은 등장인물도 조명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준호, 이세영 등 출연 배우들과 작가님이 생각한 각 캐릭터들의 싱크로율이 어느정도 일치할까요?
제 머릿속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TV도 잘 안 보고 관심 분야가 한정적인 타입이다 보니, 특정한 인물을 대입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확정된 캐스팅을 보면서 신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연 배우님들 대부분이 역할에 참 잘 어울리신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저도 행복합니다.
▲ "실제 역사를 따르면서도 설레는 이야기를 그리자는 목표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꼭 지키려 했던 원칙"이라고 하셨어요. 현대극에 집필 계획은 없으실까요?
제 욕망을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에서 벗어나기 쉽고, 실제 역사를 충실히 좇자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한편, 내가 이만큼 안답시고 얄팍한 지식을 늘어놓느라 바쁘면 정작 장르소설로서 제일 중요한 재미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순전히 혼자서 취미로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작가인 동시에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지요. 따라서 독자로서의 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중간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곧 제가 글을 쓰면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현대극보다 역사극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현대극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정말 현대극으로 인사드릴 날이 온다면 저로선 영광일 것 같습니다.
▲ 강미강이라는 이름은 필명인가요?
예, 상당히 안이한 생각으로 제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랑 이것저것 섞어서 대충 지은 필명입니다.
▲ 앞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에 소개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금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현재로서는 장편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는 가벼운 현대극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과는 방향이 다른 역사로맨스입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2022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기 위해서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