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 영어도 아닌 일상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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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11일 개봉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어른들의 이야기 다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어른들의 이야기 다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와 노력이 함께 모여져야 한다는 뜻이다. 성미산 마을이 그런 마을과 닮았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성미산 마을은 공동육아로 유명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들과 교사들과 이웃들이 모두 나선다. 마을에 있는 ‘도토리마을방과후’(이하 도마방)에선 교사들 다섯 명이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먹고, 놀고 일상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교사들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대신 ‘친구들과 싸웠을 때 화해하는 법’ ‘자전거 타는 법’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노는 법’을 가르친다. 교사들은 선생님이라기보다 친구 형 누나 같은 존재다. 호칭도 아이들이 다가오기 쉽게 분홍이(박민영 분) 오솔길(박상민 분) 논두렁(손요한 분) 자두(한은혜 분) 언덕(정지윤 분) 보름달(김도현 분) 등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과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이하 나마교)가 오는 11일 개봉된다.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육과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학교와 가정을 대신해 지켜준 방과후 교사들의 분투를 담았다.
공적인 ‘돌봄’과 ‘교육’ 사이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마을방과후 교사들을 스크린에 담아낸 건 처음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소개돼 주목받기도 했다.
영화 ‘간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촬영감독인 박홍열과 영화 ‘작업의 정석’과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작가 황다은 부부가 함께 제작하고 연출했다. 갑작스레 닥친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도마방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도마방으로 등교했다. 선생님들은 반나절 돌봄시간을 오전까지 늘려 종일 돌봄으로 전환, 사실상 비상 근무태세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교사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만들었다. 하지만 길어지는 회의에다 종일 돌봄으로 체력은 바닥나기 시작하고 지쳐만 갔다.
방과후 교사들은 교사이면서 교사가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와 달리 10년을 일해도 1년의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최저임금 수준에다 사회적으로 교사로 호명 받지 못하는 비인가 방과후 교실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교사로서의 삶과 자긍심을 꺾을 때가 많다.
교사들은 교사 자격증은 없지만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교육에 진심이며 돌봄과 놀이 전문가다. 아이들이 자연 어른 이웃 친구 등 다양한 관계 안에서 자라도록 이끌어준다.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서로 배우고 성미산을 오르며 사계절의 변화를 체험한다. 세상과 건강한 관계맺기를 놀이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며 스스로 커나가는 것이다.
얼마 전 로버트 윌딩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국내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은 부-명예-학벌 아닌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행복의 열쇠란 ‘사람들과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해에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라”고 했다.
방과후 교사 분홍이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면 가끔 내가 더 배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서로 성장하는 느낌 속에서 얻는 행복감이 교사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끝나도 언제 어디서든 친구들과 놀 수 있고, 생활 속에서 배우고, 아이들이 다양관 관계 안에서 자라도록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교사가 아니라면 누가 교사일까.
박홍열 감독은 “방과후 교사들이 학교를 대신해 아이들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라며 “우리가 누리는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빚지고 있는지를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동 연출을 맡은 황다은 작가는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저평가된 필수 근로자들”이라며 “이들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호명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대안교육 시스템도 공교육처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가 길어지며 1년이고 10년이고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던 선생님들이 한두 분씩 그만두는 일도 생겼다. 남자 교사 논두렁도 개인 사정으로 예기치 않게 그만두게 됐다. 도마방을 떠나는 논두렁에게 아이들이 오랜 친구에게 얘기하듯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논두렁, 재미있는 놀이 많이 알려줘서 고마워. 나중에 또 놀자”
이철민 기자 presson@hankyung.com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성미산 마을은 공동육아로 유명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들과 교사들과 이웃들이 모두 나선다. 마을에 있는 ‘도토리마을방과후’(이하 도마방)에선 교사들 다섯 명이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먹고, 놀고 일상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교사들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대신 ‘친구들과 싸웠을 때 화해하는 법’ ‘자전거 타는 법’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노는 법’을 가르친다. 교사들은 선생님이라기보다 친구 형 누나 같은 존재다. 호칭도 아이들이 다가오기 쉽게 분홍이(박민영 분) 오솔길(박상민 분) 논두렁(손요한 분) 자두(한은혜 분) 언덕(정지윤 분) 보름달(김도현 분) 등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과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이하 나마교)가 오는 11일 개봉된다.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육과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학교와 가정을 대신해 지켜준 방과후 교사들의 분투를 담았다.
공적인 ‘돌봄’과 ‘교육’ 사이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마을방과후 교사들을 스크린에 담아낸 건 처음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소개돼 주목받기도 했다.
영화 ‘간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촬영감독인 박홍열과 영화 ‘작업의 정석’과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작가 황다은 부부가 함께 제작하고 연출했다. 갑작스레 닥친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도마방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도마방으로 등교했다. 선생님들은 반나절 돌봄시간을 오전까지 늘려 종일 돌봄으로 전환, 사실상 비상 근무태세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교사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만들었다. 하지만 길어지는 회의에다 종일 돌봄으로 체력은 바닥나기 시작하고 지쳐만 갔다.
방과후 교사들은 교사이면서 교사가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와 달리 10년을 일해도 1년의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최저임금 수준에다 사회적으로 교사로 호명 받지 못하는 비인가 방과후 교실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교사로서의 삶과 자긍심을 꺾을 때가 많다.
교사들은 교사 자격증은 없지만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교육에 진심이며 돌봄과 놀이 전문가다. 아이들이 자연 어른 이웃 친구 등 다양한 관계 안에서 자라도록 이끌어준다.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서로 배우고 성미산을 오르며 사계절의 변화를 체험한다. 세상과 건강한 관계맺기를 놀이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며 스스로 커나가는 것이다.
얼마 전 로버트 윌딩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국내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은 부-명예-학벌 아닌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행복의 열쇠란 ‘사람들과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해에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라”고 했다.
방과후 교사 분홍이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면 가끔 내가 더 배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서로 성장하는 느낌 속에서 얻는 행복감이 교사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끝나도 언제 어디서든 친구들과 놀 수 있고, 생활 속에서 배우고, 아이들이 다양관 관계 안에서 자라도록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교사가 아니라면 누가 교사일까.
박홍열 감독은 “방과후 교사들이 학교를 대신해 아이들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라며 “우리가 누리는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빚지고 있는지를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동 연출을 맡은 황다은 작가는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저평가된 필수 근로자들”이라며 “이들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호명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대안교육 시스템도 공교육처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가 길어지며 1년이고 10년이고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던 선생님들이 한두 분씩 그만두는 일도 생겼다. 남자 교사 논두렁도 개인 사정으로 예기치 않게 그만두게 됐다. 도마방을 떠나는 논두렁에게 아이들이 오랜 친구에게 얘기하듯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논두렁, 재미있는 놀이 많이 알려줘서 고마워. 나중에 또 놀자”
이철민 기자 pres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