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를 떠났다.

1년2개월여 만에 1500억원,원금 대비 50% 가까운 수익을 움켜쥐고서다.

첫 번째 '한국 나들이' 치고는 아주 짭짤한 성과다.

이에 따라 미국식 '기업사냥꾼'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 적극적인 경영 참여를 통해 경영 투명성과 주주가치 제고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경영진을 위협해 자사주 매입과 고배당을 실현시키고 인수·합병(M&A) 재료로 주가가 오르자 '먹튀'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또 소버린에 이어 아이칸도 경영 투명성 제고 등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으나 속으로는 제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천민 펀드'적 모습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경영권 위협으로 1500억 챙겨

5일 칼 아이칸은 개장 전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창구를 통한 시간외 대량매매로 KT&G 696만주(4.72%)를 매각했다.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한 거래는 700만주(4.75%)에 달했지만 4만주는 다른 기관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각 가격은 전일 종가보다 3.8% 낮은 6만7000원이다.

이로써 칼 아이칸은 4225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아이칸은 지난해 9월28일부터 올 1월9일까지 KT&G 776만주를 사들였다.

총 매입금액은 3351억원이다.

이에 따라 아이칸은 이날 매각분에 대한 차익 874억원과 남은 지분의 평가차익(추정) 480억원을 합쳐 1354억원의 주식 매매 차익을 얻게 됐다.

여기에 2005회계연도 배당액 124억원을 더하면 KT&G 투자로 1478억원의 이익을 낸 셈이다.

또 투자 기간 중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도 덤으로 얻게 됐다.

아이칸쪽이 KT&G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건 작년 9월부터며 올 2월3일 스틸 파트너스와 함께 이 회사 지분 6.6%를 보유하고 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아이칸 연합은 KT&G의 자회사인 인삼공사의 매각과 부동산 처분 등을 요구했으며 3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사외이사 1명을 확보,이사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아이칸의 공격을 받은 KT&G는 급기야 8월9일 자사주 소각 등 최대 2조8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이 포함된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아이칸의 경영권 공격과 회사측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덕에 올해 초 4만원대에 머물던 이 회사 주가는 6만원대로 올라섰다.

◆ '주주가치 제고' vs 'M&A 재료 부각 뒤 먹튀'

주가가 오르자 한켠에서는 아이칸의 공격으로 KT&G의 기업 투명성과 주주가치가 제고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운운하며 경영권 장악을 시도한 지 10개월 만에 주식을 팔아 치운 데 대해 '먹튀의 전형'이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회사측은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치러야 했으며,M&A 재료를 부각시킨 뒤 단기 차익을 실현한 아이칸의 투자 행태가 증시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KT&G 현 경영진이 너무 쉽게 기업사냥꾼의 전략에 말려든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소버린이 SK를 공격할 때만 해도 기업의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아이칸의 사례에서는 그런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G는 지분이 분산돼 있어 상대적으로 지배구조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상무도 "아이칸은 투기성 투자자금의 투자형태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며 "민영화된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노린 투자였다"고 말했다.

KT&G 한 사외이사는 "아이칸이 스틸 파트너스와 손잡고 사외이사를 선임해놓고도 이사회에 참석한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며 "주주행동주의를 표면에 내세워 회사 장래야 어찌됐든 자기 이익만 챙긴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스틸 파트너스도 보유 주식(448만주,3.03%)을 매각할지 주목된다.

강현철·서정환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