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썰쩐] (7) 이건규 전 VIP자산운용 CIO "2000억→2조 비결은 가치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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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운용자산 10배 불린 이건규 전 VIP자산운용 CIO
"2010년 이전에는 자산 관점에서 가치투자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이익 성장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는 점이 핵심이죠."
지난 14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건규 매니저(사진)는 "이제 가치투자의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세계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경기가 좋아지면 자산가치 대비 싼 기업의 주가가 올랐다. 그러나 현재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경기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익 성장을 안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는 18년차 펀드매니저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옛 VIP투자자문)의 2003년 창립 초기부터 지난해 10월 초까지 16년간 근무했다. 그 중 9년은 최고투자책임자(CIO)였다. 그가 2010년 CIO를 처음 맡을 당시 VIP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2000억원 규모였고, 나올 때는 2조원 수준이 됐다. 운용자산이 10배로 불어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저평가 주식을 사는 가치투자라는 철학이다.
바뀐 것은 저평가 주식을 찾는 관점이다.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아닌, 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주가수익비율(PER)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 매니저는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이익이 증가하는 기업들의 희소성이 높아졌다"며 "이제는 단순 저평가가 아닌 미래의 성장성 대비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DB, 이익 성장이 확정된 가치주
그가 VIP자산운용 시절 이같은 기준을 적용해 발굴한 기업이 하이비젼시스템이다. 하이비젼시스템은 스마트폰 카메라 검사장비업체다. 애플의 아이폰 카메라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관련 장비의 수요 증가로 실적이 계단식으로 성장했다. 2017년 애플은 아이폰에 듀얼카메라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 매니저는 기업탐방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7년 75억~8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했는데 이는 보수적이라고 봤다. 2012년 기록했던 148억원의 달성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투자를 집행했다. 하이비젼시스템은 2017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204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주가도 급등해 1년 동안 2배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이 매니저가 현재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종목은 DB다. 그는 "DB는 지난해 10월 재미있는 공시를 냈다"며 "DB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동부 계열사 23곳으로부터 2018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공시에 따르면 DB 브랜드를 쓰는 기업은 2018년 11월부터 올해까지 매출의 0.1%, 내년부터 2021년까지 0.15%를 사용료로 DB에 내야 한다. DB 계열사들의 매출이 20조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2019년 200억원, 2020~2021년 300억원의 상표권 사용료 매출이 발생한다.
이 매니저는 "다른 변수가 없다면 DB는 내년까지 이익 성장이 확정적"이라며 "주가는 아직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원가 개선이 가능한 업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실적이 급감했다. 올해는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원가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또 필수소비재인 포장재 회사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이익이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종잣돈 마련까지는 허릿띠 졸라매야
이 매니저는 개인들에게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과거 고성장 시기에는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임금 인상으로 월급과 저축만으로도 자산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성장률이 축소되면서 임금상승률도 크게 낮아졌다. 또 연봉이 올라갈수록 세율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실질소득의 증가율은 크게 둔화된다.
그는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종잣돈)를 모으기 전까지는 소비를 억제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는 저축에 가중치를 두고 투자는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잣돈과 함께 경험이 생기면 부동산이나 주식, 금융상품 등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라는 주문이다.
주식투자 전문가인 이 매니저는 주식 시장은 종목 발굴과 검증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률이 좋은 펀드에 돈을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주식 발굴 능력이 있어야 좋은 펀드도 고를 수 있다"며 "펀드는 가입 전 투자자산군(포트폴리오)을 설명하는데, 이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좋다 안 좋다를 알아야 좋은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16년간의 VIP자산운용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4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내 일을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중소형주를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현재 자산운용사 인수를 검토 중이다. 여의치 않으면 신규 설립도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은 올 상반기에는 가시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회사는 가치투자를 기반으로 비상장 주식도 가져갈 계획"이라며 "비상장 주식은 시세 등락이 작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고, 상장이나 자금유치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계단식으로 기업가치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사진·영상=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2010년 이전에는 자산 관점에서 가치투자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이익 성장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는 점이 핵심이죠."
지난 14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건규 매니저(사진)는 "이제 가치투자의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세계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경기가 좋아지면 자산가치 대비 싼 기업의 주가가 올랐다. 그러나 현재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경기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익 성장을 안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는 18년차 펀드매니저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옛 VIP투자자문)의 2003년 창립 초기부터 지난해 10월 초까지 16년간 근무했다. 그 중 9년은 최고투자책임자(CIO)였다. 그가 2010년 CIO를 처음 맡을 당시 VIP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2000억원 규모였고, 나올 때는 2조원 수준이 됐다. 운용자산이 10배로 불어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저평가 주식을 사는 가치투자라는 철학이다.
바뀐 것은 저평가 주식을 찾는 관점이다.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아닌, 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주가수익비율(PER)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 매니저는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이익이 증가하는 기업들의 희소성이 높아졌다"며 "이제는 단순 저평가가 아닌 미래의 성장성 대비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DB, 이익 성장이 확정된 가치주
그가 VIP자산운용 시절 이같은 기준을 적용해 발굴한 기업이 하이비젼시스템이다. 하이비젼시스템은 스마트폰 카메라 검사장비업체다. 애플의 아이폰 카메라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관련 장비의 수요 증가로 실적이 계단식으로 성장했다. 2017년 애플은 아이폰에 듀얼카메라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 매니저는 기업탐방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7년 75억~8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했는데 이는 보수적이라고 봤다. 2012년 기록했던 148억원의 달성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투자를 집행했다. 하이비젼시스템은 2017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204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주가도 급등해 1년 동안 2배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이 매니저가 현재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종목은 DB다. 그는 "DB는 지난해 10월 재미있는 공시를 냈다"며 "DB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동부 계열사 23곳으로부터 2018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공시에 따르면 DB 브랜드를 쓰는 기업은 2018년 11월부터 올해까지 매출의 0.1%, 내년부터 2021년까지 0.15%를 사용료로 DB에 내야 한다. DB 계열사들의 매출이 20조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2019년 200억원, 2020~2021년 300억원의 상표권 사용료 매출이 발생한다.
이 매니저는 "다른 변수가 없다면 DB는 내년까지 이익 성장이 확정적"이라며 "주가는 아직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원가 개선이 가능한 업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실적이 급감했다. 올해는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원가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또 필수소비재인 포장재 회사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이익이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종잣돈 마련까지는 허릿띠 졸라매야
이 매니저는 개인들에게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과거 고성장 시기에는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임금 인상으로 월급과 저축만으로도 자산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성장률이 축소되면서 임금상승률도 크게 낮아졌다. 또 연봉이 올라갈수록 세율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실질소득의 증가율은 크게 둔화된다.
그는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종잣돈)를 모으기 전까지는 소비를 억제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는 저축에 가중치를 두고 투자는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잣돈과 함께 경험이 생기면 부동산이나 주식, 금융상품 등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라는 주문이다.
주식투자 전문가인 이 매니저는 주식 시장은 종목 발굴과 검증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률이 좋은 펀드에 돈을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주식 발굴 능력이 있어야 좋은 펀드도 고를 수 있다"며 "펀드는 가입 전 투자자산군(포트폴리오)을 설명하는데, 이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좋다 안 좋다를 알아야 좋은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16년간의 VIP자산운용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4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내 일을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중소형주를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현재 자산운용사 인수를 검토 중이다. 여의치 않으면 신규 설립도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은 올 상반기에는 가시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회사는 가치투자를 기반으로 비상장 주식도 가져갈 계획"이라며 "비상장 주식은 시세 등락이 작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고, 상장이나 자금유치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계단식으로 기업가치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사진·영상=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