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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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證 호주펀드' 계약위반 사고
현지 사업자가 당초 사기로 한
아파트 아닌 다른 토지 매입
3200억 중 1200억 회수 못해
현지 사업자가 당초 사기로 한
아파트 아닌 다른 토지 매입
3200억 중 1200억 회수 못해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투자 손실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이번에는 해외 부동산 펀드에서 고객 손실이 우려되는 일이 터졌다. KB증권과 JB자산운용이 각각 판매와 운용을 맡은 3200억원 규모 호주 부동산 사모펀드가 현지 투자사의 계약 위반으로 손실 위기에 처했다. KB증권은 긴급히 자금 회수에 나서 원금의 62%는 돌려받았다. 나머지는 호주 법원을 통한 소송을 거쳐야 해 원금을 100%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펀드에 투자한 개인과 법인 고객의 손실로 이어진다. 최근 증권사들이 대체투자 일환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나서는 사례가 많아 일각에선 예고된 사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호주 사업자가 약속 위반”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과 JB자산운용은 ‘JB호주NDIS’ 펀드의 현지 사업자인 LBA캐피털이 당초 계약과 다르게 자금을 운용한 것을 파악하고 긴급 자금 회수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 펀드는 호주 정부의 장애인 임대주택사업과 관련한 아파트에 투자해 임대 수익을 얻는다.
KB증권은 지난 3~6월 이 펀드를 기관투자가에 2360억원, 법인과 개인에 904억원 등 총 3264억원어치 판매했다. 전체 투자자 수는 160여 명이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펀드 운용사인 JB자산운용을 통해 LBA캐피털에 대출됐다. 대출 약정에 따라 LBA캐피털은 장애인을 위한 아파트를 매입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아 임대 수익을 올려야 한다. 펀드 이름에 NDIS(호주 국가장애보험제도)가 들어간 이유다.
하지만 지난달 이뤄진 현지 실사 과정에서 LBA캐피털이 JB운용에서 빌린 돈을 다른 토지를 매입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KB증권 관계자는 “당초 사려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장애인 아파트로 리모델링하는 비용도 과다할 것이란 판단에 LBA캐피털이 임의로 투자 대상을 바꾼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대출 계약 위반에 해당해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KB증권과 JB운용은 호주에 현장 대응반을 급파하고, 현지 법무법인인 앨런스(Allens)를 선임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 원금의 62%인 2015억원을 현금으로 회수해 국내로 이체했다. 나머지 자금 중 882억원의 현금과 부동산은 호주 빅토리아주법원의 명령으로 자산 동결했다. KB증권 관계자는 “소송과 강제 집행을 통해 원금의 89%인 2897억원까지는 회수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나머지 300억원 넘는 자금은 LBA캐피털과 이 회사 등기 임원 3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받아낼 것”이라고 했다.
규모 급증한 만큼 불안한 해외 부동산 투자
KB증권은 펀드 운용 과정에서 손실이 난 게 아니라 계약 위반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송을 통해 원금을 100% 돌려받을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손실 가능성을 말하기도 이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것”이란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가 경쟁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서면서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고 투자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인프라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한 증권사 임원은 “지금 해외 투자한다고 돌아다니는 사람 중 부동산 딜 소싱(물건 발굴)부터 언더라이팅(수익증권 최종 총액인수)까지 전부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변수가 발생했을 때는 대응 실력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데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뛰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 경험이 거의 없어도 영어를 잘하거나 기업금융(IB) 등 다른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 해외 대체투자 업무를 맡는 일이 많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KB증권에서 원래 해외 부동산 딜 소싱을 담당하던 부서가 아닌, 리테일 담당 부서에서 JB호주NDIS 펀드를 취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문성 부족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와 해외에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 순자산은 현재 91조9309억원으로 국내·해외 주식형 펀드 순자산(75조5652억원)을 크게 웃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펀드 순자산은 2014년 8조9049억원에서 현재 50조5952억원으로 다섯 배 넘게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주요 도시 상업용 빌딩 입찰에서 한국 증권사끼리 경쟁이 붙는 사례도 많다”며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탓에 잘 알려진 한정된 매물에만 몰리면서 입찰 가격도 예상보다 크게 오르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KB증권과 JB운용으로부터 사고 발생 보고를 받은 금융감독원은 일단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순 투자 판단 잘못으로 손실이 발생한 것이라면 당사자 간 분쟁 조정 등 민사 절차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다만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서 절차, 형식 요건을 거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이현일/오형주 기자 eigen@hankyung.com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과 JB자산운용은 ‘JB호주NDIS’ 펀드의 현지 사업자인 LBA캐피털이 당초 계약과 다르게 자금을 운용한 것을 파악하고 긴급 자금 회수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 펀드는 호주 정부의 장애인 임대주택사업과 관련한 아파트에 투자해 임대 수익을 얻는다.
KB증권은 지난 3~6월 이 펀드를 기관투자가에 2360억원, 법인과 개인에 904억원 등 총 3264억원어치 판매했다. 전체 투자자 수는 160여 명이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펀드 운용사인 JB자산운용을 통해 LBA캐피털에 대출됐다. 대출 약정에 따라 LBA캐피털은 장애인을 위한 아파트를 매입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아 임대 수익을 올려야 한다. 펀드 이름에 NDIS(호주 국가장애보험제도)가 들어간 이유다.
하지만 지난달 이뤄진 현지 실사 과정에서 LBA캐피털이 JB운용에서 빌린 돈을 다른 토지를 매입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KB증권 관계자는 “당초 사려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장애인 아파트로 리모델링하는 비용도 과다할 것이란 판단에 LBA캐피털이 임의로 투자 대상을 바꾼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대출 계약 위반에 해당해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KB증권과 JB운용은 호주에 현장 대응반을 급파하고, 현지 법무법인인 앨런스(Allens)를 선임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 원금의 62%인 2015억원을 현금으로 회수해 국내로 이체했다. 나머지 자금 중 882억원의 현금과 부동산은 호주 빅토리아주법원의 명령으로 자산 동결했다. KB증권 관계자는 “소송과 강제 집행을 통해 원금의 89%인 2897억원까지는 회수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나머지 300억원 넘는 자금은 LBA캐피털과 이 회사 등기 임원 3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받아낼 것”이라고 했다.
규모 급증한 만큼 불안한 해외 부동산 투자
KB증권은 펀드 운용 과정에서 손실이 난 게 아니라 계약 위반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송을 통해 원금을 100% 돌려받을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손실 가능성을 말하기도 이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것”이란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가 경쟁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서면서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고 투자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인프라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한 증권사 임원은 “지금 해외 투자한다고 돌아다니는 사람 중 부동산 딜 소싱(물건 발굴)부터 언더라이팅(수익증권 최종 총액인수)까지 전부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변수가 발생했을 때는 대응 실력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데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뛰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 경험이 거의 없어도 영어를 잘하거나 기업금융(IB) 등 다른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 해외 대체투자 업무를 맡는 일이 많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KB증권에서 원래 해외 부동산 딜 소싱을 담당하던 부서가 아닌, 리테일 담당 부서에서 JB호주NDIS 펀드를 취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문성 부족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와 해외에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 순자산은 현재 91조9309억원으로 국내·해외 주식형 펀드 순자산(75조5652억원)을 크게 웃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펀드 순자산은 2014년 8조9049억원에서 현재 50조5952억원으로 다섯 배 넘게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주요 도시 상업용 빌딩 입찰에서 한국 증권사끼리 경쟁이 붙는 사례도 많다”며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탓에 잘 알려진 한정된 매물에만 몰리면서 입찰 가격도 예상보다 크게 오르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KB증권과 JB운용으로부터 사고 발생 보고를 받은 금융감독원은 일단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순 투자 판단 잘못으로 손실이 발생한 것이라면 당사자 간 분쟁 조정 등 민사 절차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다만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서 절차, 형식 요건을 거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이현일/오형주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