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릴랜드 골드만삭스 아·태 대표 "한국 PEF가 '금융의 삼성전자' 가능성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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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을 무대로 투자하고 있는 사모펀드(PEF) 업계는 한국 금융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토드 릴랜드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지역 공동대표 겸 투자은행(IB)부문 대표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금융업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미국 뉴욕에 세운 어음 거래회사를 모태로 한 골드만삭스는 올해로 창립 150주년을 맞은 세계 최고 IB로 꼽힌다. 미국 출신인 릴랜드 대표는 1992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금융·자본시장(FIG) 부문 글로벌 공동대표 등을 지낸 뒤 작년 10월부터 골드만삭스의 아태지역 공동대표를 맡아 IB부문을 이끌고 있다.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1위권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제조 대기업도 여럿 나왔습니다. 하지만 금융업에서는 아직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전세계의 감탄을 자아냈고 다른 국가들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수준의 ‘도약(leap frogging)’ 또는 ‘따라잡기(catching up)’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금융업에서도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금융업은 제조업과 다릅니다. 금융업의 주요 자산은 매일 같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소위 ‘전문 인력’입니다. 반면 제조업은 공장이 주요 자산이죠. 결국 금융업의 성패는 가장 중요한 자산인 사람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유치하고 육성·관리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깁니다. 그러기위해선 직원들에게 각종 트레이닝은 물론 최고 수준의 보상을 주고 커리어 개발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직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적절한 복리후생 체계와 함께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신념 등도 제공해야 하죠.”
▷아시아 최대 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을 비롯해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 이상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대표 등 국내 사모펀드(PEF)업계 리더 중 상당수가 골드만삭스를 거친 것으로 압니다. 한국 금융업의 잠재력을 판가름할 인력 수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짧은 기간 놀라운 발전과 성장세를 보여준 한국의 PEF는 바로 한국 금융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한국의 토종 PEF는 이제 글로벌 및 한국 연기금 등이 위탁한 수십억달러 규모 자금을 운용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PEF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 기업에 투자합니다. 우리는 골드만삭스 출신 뱅커 여러 명이 한국의 토종 PEF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금융 비즈니스에 있어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서울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금융허브의 글로벌 경쟁력은 법치주의 등 비즈니스 환경, 조세정책의 명료성, 숙련된 인적자원 풀, IT 등 인프라, 고객 등 시장접근성, 지리적 여건, 정부 규제 등 요소와 연관돼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잠재적인 금융허브로써 한 지역의 위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꼽히는 뉴욕, 런던은 이러한 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은 법체계와 사법권의 독립이 구축돼 있어 이미 오래전에 법치주의가 자리 잡았습니다.이는 투명한 규제 체계와 맞물려 자유로운 자본흐름을 가능케 합니다. 홍콩은 아시아와 서양을 연결하는 역동적인 커리어 기회를 제공합니다. 소득세율도 15%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싱가포르는 친기업 환경이 조성돼 있어 세계에서 비즈니스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입니다. 법인세율은 17%로 낮은 편입니다. 금융 분야 고급인력 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정부 인센티브와 정책들, 20% 수준의 낮은 소득세율, 우수한 학교와 가족 친화적 라이프스타일 등은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이처럼 홍콩과 싱가포르 두 곳이 금융허브로서 가진 공통적인 장점은 명확합니다.
서울이 속한 한국은 지난 몇 년간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하룻밤 사이에 홍콩·싱가포르 수준에 올라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각종 규제 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에 투자한 가장 오래된 외국계 투자자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과 인연을 어떻게 맺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투자된 기업들의 면모를 보시면 골드만삭스의 투자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주요 은행인 국민은행(투자액 5억5000만달러)과 하나은행(5억2000만달러)에 투자했습니다. 이들이 단순한 리테일 뱅킹을 넘어 금융지주로 거듭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셈입니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산업군에서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질 시점에서는 업종 내 대표기업이 될 만한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씨앤엠(1억211만달러)은 수도권 최대 케이블방송사로, 지오영(4000만달러)은 한국 최대 의약품 유통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요즘엔 한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기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까지 한국에 약 40억달러를 투자한 최대 외국계 투자자 중 하나입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글로벌 시장에서 우버,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핀터레스트 등 이름난 기업들을 포함해 수백개 이상의 파괴적 혁신기업에 투자해 그들을 성장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혁신 중심 경제 발전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에 발맞춰 주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유니콘에 등극할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 대표적인 배달앱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4000만달러)’과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동산 플랫폼인 ‘직방(3300만달러)’이 여기 포함됩니다. 뛰어난 IT 인프라와 높은 수준의 인재,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창출시킬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많은 IB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IB의 최근 성장세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이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떠오르는 플레이어로 부상한 것은 맞습니다.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는 영국 런던에 올해 새로 오픈할 유럽본사 건물에 대해 국민연금과 장기 SLB(매각 후 재임대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약 12억파운드(1조80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해당 부동산은 작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동산 딜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국민연금이 골드만삭스 유럽본사 건물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해당 딜이 한국 정부의 규제완화를 통해 한국 금융사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규제개혁으로 한국의 기관투자가들과 증권사의 해외투자가 용이해진 이후, 한국투자공사(KIC)와 같은 한국 기관들이 이제 글로벌 핵심상권 빌딩의 주요 매입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기관들이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규모로 투자한 결과 연간 투자액이 5년 전에 비해 6배 가까운 73억유로(9조6000억원)에 달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올해 초 한국의 미래에셋대우가 미국 뉴욕에서 골드만삭스가 주도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TSX 브로드웨이’에 3억7500만달러 규모 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TSX 브로드웨이 프로젝트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46층 높이, 25억 달러 규모 호텔 겸 상가 건물을 개발하는 부동산 프로젝트입니다. 미래에셋대우는 파이낸싱에 참여한 뒤 이자 수익을 노리는 한국의 주요 생명보험사들에게 대출채권을 신디케이트한 것으로 압니다.
자본시장법 제정과 같은 한국 정부의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과 규제완화는 금융업 전반의 성장과 리스크 관리 역량, 그리고 해외 진출 역량을 강화할 것입니다. 타이밍 또한 좋습니다. 중국의 해외투자는 엄격한 자본 통제와 규제 등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투자 공백은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 시장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하는데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규제는 분명 필요합니다. 시장 참여자 모두를 보호하고, 전 사업분야의 리스크가 관리되도록 해 모두에게 수혜가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규제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시장에서 준법감시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회를 적절히 추구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국가의 규제 동향과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금융시장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규제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합니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한 핵심요소로는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 우수한 법체계,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 대외무역에 대한 개방성과 높은 교육수준 등이 꼽힙니다. 한국은 그동안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왔고, 어떠한 점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요즘 한국은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호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이 세계에서 한국이 전도유망한 시장이 되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의 비즈니스가 적절히 성장할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에서 장기간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다른 곳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회와 도전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한국이 성장할 때, 우리도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홍콩=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토드 릴랜드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지역 공동대표 겸 투자은행(IB)부문 대표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금융업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미국 뉴욕에 세운 어음 거래회사를 모태로 한 골드만삭스는 올해로 창립 150주년을 맞은 세계 최고 IB로 꼽힌다. 미국 출신인 릴랜드 대표는 1992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금융·자본시장(FIG) 부문 글로벌 공동대표 등을 지낸 뒤 작년 10월부터 골드만삭스의 아태지역 공동대표를 맡아 IB부문을 이끌고 있다.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1위권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제조 대기업도 여럿 나왔습니다. 하지만 금융업에서는 아직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전세계의 감탄을 자아냈고 다른 국가들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수준의 ‘도약(leap frogging)’ 또는 ‘따라잡기(catching up)’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금융업에서도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금융업은 제조업과 다릅니다. 금융업의 주요 자산은 매일 같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소위 ‘전문 인력’입니다. 반면 제조업은 공장이 주요 자산이죠. 결국 금융업의 성패는 가장 중요한 자산인 사람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유치하고 육성·관리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깁니다. 그러기위해선 직원들에게 각종 트레이닝은 물론 최고 수준의 보상을 주고 커리어 개발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직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적절한 복리후생 체계와 함께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신념 등도 제공해야 하죠.”
▷아시아 최대 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을 비롯해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 이상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대표 등 국내 사모펀드(PEF)업계 리더 중 상당수가 골드만삭스를 거친 것으로 압니다. 한국 금융업의 잠재력을 판가름할 인력 수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짧은 기간 놀라운 발전과 성장세를 보여준 한국의 PEF는 바로 한국 금융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한국의 토종 PEF는 이제 글로벌 및 한국 연기금 등이 위탁한 수십억달러 규모 자금을 운용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PEF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 기업에 투자합니다. 우리는 골드만삭스 출신 뱅커 여러 명이 한국의 토종 PEF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금융 비즈니스에 있어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서울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금융허브의 글로벌 경쟁력은 법치주의 등 비즈니스 환경, 조세정책의 명료성, 숙련된 인적자원 풀, IT 등 인프라, 고객 등 시장접근성, 지리적 여건, 정부 규제 등 요소와 연관돼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잠재적인 금융허브로써 한 지역의 위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꼽히는 뉴욕, 런던은 이러한 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은 법체계와 사법권의 독립이 구축돼 있어 이미 오래전에 법치주의가 자리 잡았습니다.이는 투명한 규제 체계와 맞물려 자유로운 자본흐름을 가능케 합니다. 홍콩은 아시아와 서양을 연결하는 역동적인 커리어 기회를 제공합니다. 소득세율도 15%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싱가포르는 친기업 환경이 조성돼 있어 세계에서 비즈니스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입니다. 법인세율은 17%로 낮은 편입니다. 금융 분야 고급인력 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정부 인센티브와 정책들, 20% 수준의 낮은 소득세율, 우수한 학교와 가족 친화적 라이프스타일 등은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이처럼 홍콩과 싱가포르 두 곳이 금융허브로서 가진 공통적인 장점은 명확합니다.
서울이 속한 한국은 지난 몇 년간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하룻밤 사이에 홍콩·싱가포르 수준에 올라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각종 규제 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에 투자한 가장 오래된 외국계 투자자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과 인연을 어떻게 맺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투자된 기업들의 면모를 보시면 골드만삭스의 투자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주요 은행인 국민은행(투자액 5억5000만달러)과 하나은행(5억2000만달러)에 투자했습니다. 이들이 단순한 리테일 뱅킹을 넘어 금융지주로 거듭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셈입니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산업군에서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질 시점에서는 업종 내 대표기업이 될 만한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씨앤엠(1억211만달러)은 수도권 최대 케이블방송사로, 지오영(4000만달러)은 한국 최대 의약품 유통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요즘엔 한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기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까지 한국에 약 40억달러를 투자한 최대 외국계 투자자 중 하나입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글로벌 시장에서 우버,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핀터레스트 등 이름난 기업들을 포함해 수백개 이상의 파괴적 혁신기업에 투자해 그들을 성장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혁신 중심 경제 발전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에 발맞춰 주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유니콘에 등극할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 대표적인 배달앱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4000만달러)’과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동산 플랫폼인 ‘직방(3300만달러)’이 여기 포함됩니다. 뛰어난 IT 인프라와 높은 수준의 인재,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창출시킬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많은 IB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IB의 최근 성장세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이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떠오르는 플레이어로 부상한 것은 맞습니다.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는 영국 런던에 올해 새로 오픈할 유럽본사 건물에 대해 국민연금과 장기 SLB(매각 후 재임대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약 12억파운드(1조80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해당 부동산은 작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동산 딜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국민연금이 골드만삭스 유럽본사 건물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해당 딜이 한국 정부의 규제완화를 통해 한국 금융사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규제개혁으로 한국의 기관투자가들과 증권사의 해외투자가 용이해진 이후, 한국투자공사(KIC)와 같은 한국 기관들이 이제 글로벌 핵심상권 빌딩의 주요 매입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기관들이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규모로 투자한 결과 연간 투자액이 5년 전에 비해 6배 가까운 73억유로(9조6000억원)에 달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올해 초 한국의 미래에셋대우가 미국 뉴욕에서 골드만삭스가 주도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TSX 브로드웨이’에 3억7500만달러 규모 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TSX 브로드웨이 프로젝트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46층 높이, 25억 달러 규모 호텔 겸 상가 건물을 개발하는 부동산 프로젝트입니다. 미래에셋대우는 파이낸싱에 참여한 뒤 이자 수익을 노리는 한국의 주요 생명보험사들에게 대출채권을 신디케이트한 것으로 압니다.
자본시장법 제정과 같은 한국 정부의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과 규제완화는 금융업 전반의 성장과 리스크 관리 역량, 그리고 해외 진출 역량을 강화할 것입니다. 타이밍 또한 좋습니다. 중국의 해외투자는 엄격한 자본 통제와 규제 등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투자 공백은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 시장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하는데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규제는 분명 필요합니다. 시장 참여자 모두를 보호하고, 전 사업분야의 리스크가 관리되도록 해 모두에게 수혜가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규제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시장에서 준법감시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회를 적절히 추구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국가의 규제 동향과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금융시장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규제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합니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한 핵심요소로는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 우수한 법체계,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 대외무역에 대한 개방성과 높은 교육수준 등이 꼽힙니다. 한국은 그동안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왔고, 어떠한 점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요즘 한국은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호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이 세계에서 한국이 전도유망한 시장이 되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의 비즈니스가 적절히 성장할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에서 장기간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다른 곳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회와 도전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한국이 성장할 때, 우리도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홍콩=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