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을 강조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한 ‘애국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릴레이 가입이 잇따르면서 일반 투자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정부가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작년 출범시킨 코스닥벤처펀드에선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펀드가 중장기 수익 추구라는 금융투자상품의 본질보다 정치적 시류에 따라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국펀드 규모 900억원 눈앞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아문디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필승코리아펀드’의 설정액은 886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명 애국펀드로 불리는 이 상품은 지난 8월 14일 출시돼 농협금융지주가 300억원을 태웠다. 출시 초기만 해도 시장의 관심이 적었지만 같은 달 26일 문 대통령이 가입한 이후 자금이 빠르게 들어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등 고위층이 릴레이 가입하면서 개인투자자의 관심도 커졌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탄생한 필승코리아펀드는 국산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부품·소재·장비 기업 등에 중점 투자한다. 운용 보수의 절반은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의 장학금과 연구소 지원에 쓰일 계획이다.

출시 이후 수익률은 7일 기준 2.37%다. 펀드가 출시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수익률을 평가하긴 이르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수익보다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일부 기업이 정책 수혜를 누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 실적 개선까지 나타나려면 최소 2~3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본질이 주식형 펀드인 만큼 전반적인 국내 증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필승코리아펀드가 담고 있는 종목을 살펴보면 ‘소·부·장’ 부품주보다는 삼성전자(전체의 19.67%), LG화학(4.70%), SK하이닉스(4.51%), 삼성SDI(3.99%), 한국전력(3.89%) 등 대형주 위주다. 애국펀드라고는 하지만 내용면에선 여느 주식형 액티브 펀드와 다를 게 없다.

찬밥 신세 된 코스닥벤처펀드

정부와 시장의 관심이 애국펀드로 쏠리면서 코스닥벤처펀드는 출시 1년 반 만에 ‘찬밥 신세’가 됐다. 펀드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2개 공모형 코스닥벤처펀드에서는 올 들어 1973억원이 순유출됐다.

작년 4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 당시 분위기는 애국펀드와 비슷했다. 정부가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세제 혜택을 내걸었고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금융계 고위직들이 릴레이 가입하면서 코스닥벤처펀드의 설정액은 7000억원대까지 불어났다. 금융사들은 직원을 대상으로 자사 상품에 가입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이 흔들리면서 부진한 성과가 이어지자 자금이 급격히 이탈했다. 코스닥벤처펀드의 최근 6개월 평균 수익률은 -13.03%다.

일각에서는 애국펀드와 코스닥벤처펀드가 정부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근’을 주며 끌어모았다가 수익률 부진으로 용두사미에 그친 ‘관치펀드’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 ‘녹색펀드’ ‘통일펀드’ 등도 정부 정책 기대로 단기간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됐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펀드를 설계할 때는 중장기 수익률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애국이란 이름으로 손실 가능성의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NH아문디자산운용 관계자는 “소·부·장 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기로 한 만큼 장기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면 충분히 기대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