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도 상품이 다양하지 않은 것은 시장 독과점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거래소 등이 지수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한 까닭에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수사업 독점하며 시장개방 방치…'상품 다양화' 손놓은 한국거래소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에서 지수 사업을 벌이는 곳은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 두 곳이다. 증권사와 운용사가 새로운 지수를 만들기 위해선 거래소에 요청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사실상 거래소 독점 시장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 등이 아이디어를 내고 지수를 산출, 상장할 때까지 최대 1년 이상 걸린다.

에프앤가이드도 지수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지수 산출 대행을 할 뿐 자체 발굴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해외지수, 부동산,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이 들어가면 산출 과정이 복잡해 거래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상품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만들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대책을 내놨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을 내놓으면서 신규 지수 사업자가 쉽게 등장할 수 있도록 문호를 터주기로 했다. 이게 가능하려면 한국거래소가 지수산출기관 요건에 대해 까다롭게 규정한 관련 시행세칙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6개월이 넘도록 거래소는 시행세칙을 바꾸지 않아 여전히 새로운 지수 사업자 진입이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지수시장에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가야 여러 지수가 나오고, 이를 반영한 ETF, EMP(ETF 자문 포트폴리오) 펀드 등 상품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하루빨리 시행규칙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기껏 민간에 개방한 한국 시장을 해외 지수사업자들이 선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시행세칙에 따르면 지수산출기관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상품화하기 위해선 △지수 사업 2년 이상 △5명 이상 전문인력 △20개 이상 지수 등이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하려는 곳은 사실상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이다.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곳은 해외 업체뿐이다. 홍콩, 미국 등의 지수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국계 지수 업체 관계자는 “한국 패시브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을 통한 간접 방식을 포함해 다양한 진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상품 다양화를 위한 세칙개정 필요성을 느끼고 준비하고 있다”며 “늦어도 올해 안에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