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입지의 명성이 높은 고급 호텔은 불황을 이길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한 말이다. 2013년부터 미래에셋그룹은 해외 유명 호텔을 잇달아 인수했다. 지난해 9월 중국 안방보험과 맺은 15개 미국 호텔 인수 계약은 그 정점이었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JW메리어트 에식스하우스를 비롯해 미국 9개 도시의 고급 호텔만 모아놓은 자산이었다. 인수 대금만 58억달러(약 7조1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모두 없던 일이 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3일 안방보험에 매매계약 해지 통지서를 보냈다고 4일 발표했다.
“소유권 불확실하다”

미래에셋은 이날 “안방보험이 계약을 어긴 부분이 드러나 지난달 17일 이를 15일 내에 해소하라고 통지했지만 별다른 소명이 없어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해지권을 행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해선 “안방보험이 호텔 매매계약과 관련해 제3자와 소송 중인 것으로 드러나 안방보험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안방보험이 호텔 소유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기당한 것을 거래 무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안방보험이 모르는 사이 6개 호텔 소유권이 SHR그룹이란 유령 기업에 넘어갔다. 안방보험은 현재 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등기가 전산화돼 있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국 보험사로부터 ‘소유권은 안방보험에 있다’는 보증서를 받지 못했다”며 “이는 완전한 소유권을 제공하겠다는 계약 내용을 매도인이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매매 과정에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보증하는 보험이 필요해 보험사가 거래에 개입한다. 이를 권원 보험이라고 한다.

총 7조원 규모의 이번 거래는 지난달 17일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래에셋운용이 안방보험이 거래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은 인수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지난달 27일 안방보험은 미래에셋에 계약을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이 인수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미래에셋은 “자금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소송전 불가피

미래에셋은 안방보험 측 문제가 해결됐다면 원만히 거래를 마무리 지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거래가 무산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호텔·여행업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미스트래블리서치(STR)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1주간 미국 고급 호텔 객실점유율은 9.9%로, 지난해 같은 기간 73% 대비 급감했다.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도 여행업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며 “인수 계약이 마무리되기 전에 코로나19가 터진 것이 미래에셋으로선 다행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은 2013년 호주 시드니와 서울 포시즌스호텔을 시작으로 보유 호텔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여기에 미국 15개 호텔이 더해질 예정이어서 인수가 마무리되기 전부터 경고음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외부 차입을 뺀 2조6000억원 규모의 자체 투입금이 재무 부담을 높일 것으로 지적됐다. 미래에셋대우 부담금 15억687만달러(약 1조8500억원)는 지난 3월 말 자기자본의 21.7%에 해당한다.

앞으로 약 7000억원의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래에셋은 계약금을 보관하고 있는 에스크로 대리인에게 계약금 반환 요청서를 전달했지만 계약금 반환 소송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방보험 측은 “미래에셋을 상대로 낸 소송이 계약을 이행하라는 소송인 만큼 단순히 계약금을 받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소송에서 지면 미래에셋은 호텔을 계약대로 인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은 원만한 해결을 희망하고 있지만 안방보험이 소송을 제기한 만큼 매매계약상 권리를 기반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임근호/이현일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