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더블딥' 우려에…월가 "한국 주식 사라"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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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액은 13억8000만 달러가 들어왔고요. 이런 매수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이달 들어선 지난 12일까지 3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외국인 매수가 쏠리는 이유를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국계 증권사 지점장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들은 헤지펀드 등 현지 투자자에게 한국 주식을 세일즈하는 게 핵심 업무여서 외국인 투자자의 시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 백신 개발 뉴스 등으로 위험자산 선호가 강해지고 있는 걸 외국인 매수세의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이런 거시경제적 요인에 따라 선진국에서 이머징마켓으로 자금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 중 코로나 바이러스 통제에 성공하고 산업 구조와 기술 수준이 탄탄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는 겁니다.
모 지점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가 통제 불능으로 빠져들면서 이머징마켓이 오히려 안전자산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특히 산업, 기술 수준이 높은 한국과 대만 주식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한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에선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더블딥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하루 감염자 수가 한 때 미국을 제쳤던 유럽에선 프랑스 벨기에 등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에선 아직 언제 정점을 지날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번지고 있습니다. 11일 기준 미국의 하루 감염자수는 14만2860명에 달합니다. 11월 들어 지속적으로 10만 명을 넘고 있으며 매일 새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사망자도 급증해 이날 1431명에 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뉴욕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곳곳에서 봉쇄 조치를 다시 강화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는 마이클 오스터홀름 미네소타대 감염병센터장은 지난 11일 4~6주간의 전국적 봉쇄가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뜻을 밝혔습니다.
이날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유럽중앙은행(ECB)포럼에서 백신과 관련“경제 경로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바이러스 확산으로 앞으로 몇 달은 험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경제 지표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전주보다 4만8000명 줄어 70만9000명(계절 조정치)을 기록했습니다. 예상보다 적었지만 여전히 개선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코로나 이전 한 주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0만 건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6월부터 이어져 온 넉 달 연속 오름세가 끝난 것입니다. 이런데도 미 정치권의 부양책 협상은 점점 더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부양책 협상에서 철수키로 했다는 뉴스가 나온데 이어 공화당 상원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말한)드라마틱하게 큰 부양책에 관심이 없다. 그 규모는 지난 9~10월 논의되던 수준이 되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공화당이 논의하는 5000억달러 수준을 언급한 겁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부양책이 내년 1월, 많아야 1조달러 이하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에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는 317.46포인트, 1.08% 하락한 29,080.17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S&P 500 지수는 1.00%, 나스닥 지수는 0.65% 내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힘이 빠지는 양상이었습니다. 월가의 행동주의 투자자인 빌 애커먼은 지난 11일 파이낸셜타임스 주최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겨울이 최근 증시 랠리가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할 수 있다"며 채권 지수 하락에 또 다시 베팅했다고 밝혔습니다.
애커먼은 지난 2월 코로나 1차 파동 직전 채권 지수 하락에 베팅해 100배 수익을 냈습니다. 2700만 달러 규모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를 사들여서 한 달 만에 역대급인 26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코로나의 계속되는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했고, 백신 뉴스에 대해서도 "마스크 착용이 느슨해질 수 있는 만큼 '약세 재료'"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처럼 미 경제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다변화하려는 욕구가 한국 주식 매수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한 증권사 지점장은 "바이든이 당선되자마자 코로나 TF를 만든 것에서 보듯, 월가 고객들은 봉쇄 등 각종 통제가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미 경제가 악화될 것으로 보는 고객들이 투자자금 일부를 이머징마켓으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까요? 지점장들은 최소 올해 연말까지, 길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지점장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돼 투자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거시 경제 흐름에 따라 자산을 재분배하는 것이어서 중장기적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며 "짧게는 올해 연말, 길면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점장도 "한국으로의 자금 유입은 한국이 잘해서가 아니라선진국 더블딥 우려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며 "이런 움직임은 (선진국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오면 많은 재정 지출로 인해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예상이 있습니다. 통상 달러 값이 싸지면 세계 경제에 돈이 돌고 무역도 살아나면서 이머징 마켓의 투자 매력이 커집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트럼프에 비해선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가 느슨해질 것이란 예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중국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덩달아 원화 가치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새로 한국 주식을 사는 외국인 투자자라면 향후 환차익을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화 강세는 월가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변수가 아니라는 지적이 대다수였습니다. 한 지점장은 "환율을 보고 매수 타이밍을 잡는 고객은 거의 본 적 없다"며 "원화 강세는 위안화 강세와 외인 매수세 유입의 결과물이지 원인은 아닌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2021년 10대 투자 테마'라는 보고서에서 이머징 마켓에 대한 투자를 추천하면서 "한국주식(원화)을 사고, 대만 주식(대만 달러)을 팔라"라고 제시했습니다. 또 씨티그룹은 바이든 시대에 주목할 만한 한국 주식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엔씨소프트 등 네 개를 꼽았습니다. 삼성전자는 미중 기술 경쟁에서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현대차는 바이든의 탄소제로 정책으로 수소차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배터리를 만드는 LG화학 마찬가지입니다. 지점장들에게 외국인 투자자가 눈여겨보는 한국 주식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공통된 답변은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외국인은 이 두 종목에 투자한다고 답했습니다.
LG화학도 단골 관심 품목이었고, 더불어 삼성SDI에도 관심을 가진 곳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대차의 경우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미국 내 판매량 회복, 수소차 등에 호재가 있지만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다는 겁니다. 미국이 또 봉쇄된다면 판매 실적도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 지점장은 "현대차나 기아차는 많이 올랐는데, 주요 부품주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부품에 관심을 갖는 헤지펀드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게임주인 엔씨소프트는 이미 많은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 겨울 새로운 게임 출시는 호재지만, 백신 개발이나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지점장은 "미국 금융주의 주가 회복에 따라 일부 한국 은행주를 사는 곳도 있고 백신 수혜 가능성이 있는 녹십자, SK케미칼 등을 지켜보는 곳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