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일론 머스크까지 가세한 '게임스톱' 공매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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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앙은행(Fed)의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개막된 26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관망세 속에 보합권에 머물렀습니다. 다우는 0.07%, S&P 500 지수는 0.15% 내렸고, 나스닥 지수도 0.07% 하락했습니다.
이날 장 마감 직후 마이크로소프트의 4분기 실적 발표가 대기하고 있었고, 다음날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뿐 아니라 애플 테슬라 페이스북 등 대형 기술주의 실적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FOMC의 경우 지난 12월과 변화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하반기 경기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지금 당장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뭔가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관심은 테이퍼링, 즉 자산 매입의 조기 축소 가능성에 파월 의장의 언급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테이퍼링에 대해 논의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이 밝혔듯 '2% 이상 인플레가 1년 이상 유지될 때 올리겠다'는 말을 파월 의장이 확인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기업들의 4분기 실적 발표는 매우 좋은 편입니다. 기술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장 마감 직후 4분기에 주당순이익 2.03달러(예상 1.64달러), 매출 430억8000만 달러(예상 401억8000만 달러)라는 호실적을 공개했습니다. 클라우드 매출이 전년동기보다 23% 급증하면서 전체 매출도 17% 늘었습니다. 이날 개장 전 실적을 내놓은 제너럴일렉트릭(GE), 존슨앤드존슨(J&J) 등도 예상치를 넘었습니다.
다음날 장 마감 뒤 실적을 내놓을 애플에 대해서도 희망적 관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날 기록적 분기 매출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과 함께 애플에 대한 목표주가를 135달러에서 150달러로 높였습니다. 테슬라의 경우 올해 작년의 두 배가 넘는 차량 100만대를 판매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관망세가 나타났지만 시장 한켠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게임스톱' 주식을 둘러싼 전쟁에 일론 머스크 등 억만장자들까지 속속 참여하면서 확전된 탓입니다.
게임스톱은 이날 아침에도 폭등세로 출발했습니다. 전날까지 헤지펀드 업계에서 27억5000만 달러의 긴급자금을 수혈받은 멜빈캐피털은 게임스톱 추가 공매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매도할 주식이 씨가 마른 가운데 연 139%란 기록적 수준까지 치솟은 공매도 이자율은 이날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멜빈은 게임스톱 공매도 등으로 올들어 지난주까지 운용자산(125억 달러)의 30% 가량을 날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WSB)를 중심으로 한 240만 명의 개미 투자자들도 "월가 헤지펀드와의 이번 전쟁에서 승전하면 역사에 남을 것이고, 물러서면 배신자가 된다"는 글을 돌리며 전의를 다졌습니다. 일부는 "주가가 50달러가 오를 때마다 500달러를 암병원에 기부하겠다"는 글도 올렸습니다. 멜빈캐피털에 돈을 댄 헤지펀드 시타델의 CEO 켄 그리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인 투자자 진영에 이날 벤처캐피털인 소셜캐피탈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설립자가 가세했습니다. 페이스북 부사장 출신의 거부인 그는 장 초반 게임스톱의 2월19일 만기인 행사가격 115달러 콜옵션 50개(5만주) 샀다고 트윗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에 주가는 순식간에 80달러에서 93달러로 치솟았습니다. 그는 전날 "내일 뭘 살지 알려주고 나를 확신시킨다면 장 시작과 함께 수십만달러를 던지겠다"고 트윗을 했었습니다. 차마스는 유명한 스펙(SPAC) 투자자이며 "비트코인이 20만 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비트코인 거래소인 제미니의 설립자인 또 다른 억만장자 캐머런 윙클보스도 "게임스톱을 사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트윗을 띄웠습니다. 그는 마크 저커버그를 상대로 '페이스북 창업 아이디어를 빼았겼다'고 소송해 수억 달러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에 게임스톱 주가는 이날 92.61% 급등한 147.98달러로 마감됐습니다. 이달에만 680% 가량 올랐습니다. 너무 큰 변동성 때문에 이날도 수차례 거래가 중단됐습니다.
개미들은 현물 주식뿐 아니라 옵션 시장에서 콜옵션을 대량으로 매수해 주가를 띄우고 있습니다. 최근 주식옵션 시장의 거래량은 매일 5000만개에 달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장이 끝나자 이번 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트윗으로 WSB 채팅방을 연결한 뒤 42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상대로 “Gamestonk!!"라는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머스크의 트윗 하나에 게임스톱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48% 추가 폭등(현지 오후 5시30분 기준)하고 있습니다. WSB 개미들의 습격은 게임스톱뿐 아니라 베드배쓰앤드비욘드, 블랙베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임스톱 주식을 둘러싼 '쩐'쟁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내일 파월 의장 기자회견의 핵심은 테이퍼링 시기에 대한 답변과 함께 게임스톱으로 상징되는 시장 버블에 대한 언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분명히 질문을 할 것이고 파월 의장이 어떻게 답변하는 지 지켜봐야한다는 겁니다.
지난 1996년 12월5일 앨런 그린스펀 당시 Fed 의장은 미국기업연구소(AEI) 연설에서 미국의 주가가 거침없이 상승한 데 대해 "증시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 빠졌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음날 뉴욕 증시는 2%대 곤두박질 쳤습니다. 조정은 열흘 정도 이어졌습니다. 혹시라도 Fed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었지요.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날 2월 증시 조정을 경고하면서 일부 차익을 실현하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2월은 계절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달인데다, 현재 시장 상황이 기술적으로 하락할 조짐이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즉 1928년부터 따지면 2월의 S&P 500 수익률은 -0.11%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1년 12개월 가운데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석 달(2, 5, 9월) 중 하나입니다. 기술적으로도 S&P 500 주식 가운데 10일 이동평균선을 넘는 주식들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고, 50일 이동평균선을 넘는 비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 골드만삭스도 바이러스 변종 위험 등을 들면서 소비경기 회복이 내년으로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 구글에선 '증시 버블'을 검색하는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