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10 편입종목, 일반펀드와 판박이…ESG 투자 '그린워싱 주의보'
‘삼성전자 24.94%, SK하이닉스 5.19%, LG화학 5.03%’ vs ‘삼성전자 23.54%, SK하이닉스 4.69%, LG화학 3.33%.’

두 개 펀드가 많이 사들인 종목 세 가지를 비교해 봤다. 하나는 키움올바른ESG펀드, 다른 하나는 KB한국대표그룹주펀드다. 펀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종목 순서와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상위 10개 종목으로 늘려도 네이버,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상당수 종목과 편입 비율이 겹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끌려 투자하려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 펀드와 차이점이 없다는 비판이 나올 만한 종목 포트폴리오다. 한국뿐만 아니다. 세계적으로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를 앞세운 ESG가 기업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로 떠오르면서 무늬만 ESG를 표방한 사례가 급증한 탓이다.

삼성전자만 잔뜩 담은 ESG 펀드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ESG펀드 16개를 살펴본 결과 총 14개 펀드가 삼성전자를 가장 많이 편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입 비중은 최대 26%로 기존 대형주를 골고루 담고 있는 펀드와 비슷하다. 시총 2, 3위인 SK하이닉스와 LG화학도 필수 종목이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운용업계 관계자는 “ESG 평가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상품을 만들어내다 보니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대표주들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기업이 ESG 측면에서 뛰어나지 않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투자자에게 ESG전략에 따른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좇는 임시방편 펀드를 판매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문제는 국내 16개 액티브 국내주식형 ESG펀드 가운데 ESG 관련 지수를 벤치마크(비교지수)로 삼는 펀드는 세 개뿐이라는 점이다. 펀드를 평가하는 지표가 ESG에 맞춰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ESG를 포함한 전체 SRI(사회책임투자) 펀드는 최근 1년 새 38개에서 51개로 급증했지만 진짜 ESG펀드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ESG 투자 40조달러 돌파

ESG 열풍과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는 주요국에서 나오고 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세계 ESG 투자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40조달러를 돌파했다. 2012년 13조2000억달러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ESG 펀드를 선보이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ESG에 대한 충분한 분석 없이 펀드 정보를 포장하는 그린워싱 현상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간 ESG 관련 펀드가 기대에 못 미친 수익을 낸 탓에 무늬만 ESG인 펀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유럽 내 ESG 펀드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벤치마크보다 평균 1.2%포인트 낮은 수익을 냈다.

업계에선 ESG를 정확히 평가할 잣대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MSCI, 골드만삭스 정도를 제외하곤 기업의 ESG 등급을 제대로 평가하는 곳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내 ESG 투자는 이제 걸음마 단계 수준으로 이를 평가할 제대로 된 ESG지수조차 만들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상시 자체 모니터링 필수”

전문가들은 ESG와 관련된 투자 체계와 정부정책이 단순 유행을 좇는 게 아니라 친환경,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취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ESG펀드 조건으로 △투자종목 선정 과정에서 ESG 평가방법론 적용 △운용사 내에 별도의 ESG 리서치 인력 확보 △ESG 관련 지수를 벤치마크로 사용 등을 제시하고 있다.

ESG 펀드에 대한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Eurosif(유럽 지속가능투자포럼)의 SRI 투명성 코드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금융회사에서 자발적으로 ESG펀드에 대한 보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유럽 사회책임투자포럼은 ESG펀드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유럽 내 SRI 공모펀드 884개 중 800개가 해당 코드를 도입한 상태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SG지수를 벤치마크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기운용보고서와 투자설명서 등을 통해 펀드가 어떤 방법으로 투자하고, 얼마나 우수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는지 투자자에게 알려야 한다”며 “국내 ESG펀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점을 감안해도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한화자산운용 크레딧파트 과장은 “ESG 등급은 대략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보조 지표일 뿐”이라며 “제대로 된 ESG펀드 운용을 위해서는 상시 자체 모니터링과 사후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재원/전범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