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 불안했는데…순식간에 주가 두 배로 뛴 회사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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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일가 뒤늦은 사퇴, 결국 피해는 주주 몫
뿔난 소액주주들, 직접 오너리스크 방어 나서
"오너리스크, 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 필요"
뿔난 소액주주들, 직접 오너리스크 방어 나서
"오너리스크, 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 필요"
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최대주주'라고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의 경우 대주주인 오너의 입김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 좌지우지 된다. 요즘과 같은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선 결단력 있는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명한 오너가 있는 반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위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오너도 있다. 이 경우 '오너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이 생긴다. 오너리스크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오너 자신은 물론이고 애꿎은 소액주주들까지 피해를 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오너 한명 때문에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우선 오너리스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대주주 등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사실 오너리스크는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어이가 없네"라는 명대사와 함께 영화 속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조태오는 그동안 오너가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집약한 캐릭터로 나온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개인 투자자도 오너리스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오너리스크가 심각한 경영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변곡점 삼아 '동학개미' 군단이 주식시장에 대거 입성한 후 소액주주들이 오너리스크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통상 '최대주주가 지분을 팔면 고점신호'라는 말이 있다. 최대주주가 갑자기 회사를 매각한다고 하거나 주식을 팔 경우 주가나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을 깬 종목이 있다. 주인공은 오너리스크로 논란이 빚던 '남양유업'이다. 이 회사는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아이러니하게도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27일 장 마감 직후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가진 회사 지분 전체를 국내 사모투자 전문 회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내용의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인 28일 남양유업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다. 이어 31일에는 22% 넘게 오르며 주당 70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코로나19와 관련 '불가리스' 제품의 효능을 과장 발표한 데에 따른 논란으로 주가가 최저점을 찍었던 4월28일(종가기준 31만9500원) 대비 119.0% 높은 수준이다. 논란 당시보다 두 배 이상 주가가 오른 셈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남양유업 매각 소식 직후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개인은 168억원 어치 주식을 매수한 반면, 외국인은 211억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기관은 19억원 순매수하는데 그쳤다.
남양유업 오너일가는 2013년 대리점 갑질 논란에 이어 외손녀 황하나씨의 거듭된 마약투약 혐의 등으로 연일 구설에 올랐음에도 경영권을 유지했다. 당시 홍 전 회장은 친인척으로서 외조카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통감했지만 남양유업 경영인으로서는 황 씨와의 선긋기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코로나19 불가리스 효능 과장 발표 논란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오너일가가 보유주식 전부를 한앤컴퍼니에 넘겼다. 이미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르면서 소비자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을 상대로 분쟁을 벌이는 등 오너리스크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소액주주들도 있다. 지난 3월 사조산업 소액주주 연대는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와 법률 자문계약을 맺고 사조산업 경영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사조산업이 2월 캐슬렉스CC 서울과 캐슬렉스CC 제주 합병안을 공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합병으로 인해 오너가 소유인 캐슬렉스 제주의 손실을 사조산업으로 전가한다는 이유였다. 소액주주 연대가 감사위원 선임을 준비 중이라고 압박하자 사조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이 합병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처럼 오너리스크는 기업의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 됐다. 주가하락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상장 이후에도 폐지사유가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페리카나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경영 정상화 발판을 마련한 MP그룹도 과거 대표적인 오너리스크 기업으로 불렸다. '미스터피자'로 프랜차이즈 창업 성공 신화를 썼던 MP그룹은 정우현 전 회장의 '갑질 논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이 경우 남양유업처럼 오너일가의 잦은 일탈이 아닌 정 전 회장 개인의 일탈로 회사 전체가 흔들렸다.
MP그룹은 2000년대 후반까지는 피자업계 1위로 올라서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16년 경비원 폭행 사건과 2017년 가맹점 대상 갑질이 논란이 되면서 불매 운동을 맞았다. 게다가 정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다.
당연히 주가는 요동을 쳤다. 갑질 등 오너리스크가 불거지기 전 2015년말 3320원이던 주가는 2017년 7월 상장폐지 사유 발생에 따라 1315원에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이후 거래소가 2018년 MP그룹의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정 전 회장 등 오너일가는 뒤늦게 경영권을 포기해 구사일생으로 상폐 위기에서 벗어났다. 다만 그 사이 본업이 흔들리면서 현재 주가는 9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너 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은 아직 우리 기업들에겐 낯선 이야기다. 대규모 투자나 책임경영 등에서는 오너 경영 체제가 유리한 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오너리스크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총수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일반 투자자들이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 비해,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무거운 페널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현명한 오너가 있는 반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위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오너도 있다. 이 경우 '오너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이 생긴다. 오너리스크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오너 자신은 물론이고 애꿎은 소액주주들까지 피해를 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오너 한명 때문에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우선 오너리스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대주주 등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사실 오너리스크는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어이가 없네"라는 명대사와 함께 영화 속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조태오는 그동안 오너가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집약한 캐릭터로 나온다.
각종 논란에도 꿈쩍않던 남양유업, 이번에는 지분매각
현실에서도 이러한 오너리스크가 있다. 과거 개인의 일탈 내지는 책임으로만 치부됐던 오너리스크는 이제 회사 경영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일반인들이 시각이 달라진 이유가 크다. 개인의 사과로 회사를 비판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불매운동'이나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회사 이미지에 보태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다.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개인 투자자도 오너리스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오너리스크가 심각한 경영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변곡점 삼아 '동학개미' 군단이 주식시장에 대거 입성한 후 소액주주들이 오너리스크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통상 '최대주주가 지분을 팔면 고점신호'라는 말이 있다. 최대주주가 갑자기 회사를 매각한다고 하거나 주식을 팔 경우 주가나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을 깬 종목이 있다. 주인공은 오너리스크로 논란이 빚던 '남양유업'이다. 이 회사는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아이러니하게도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27일 장 마감 직후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가진 회사 지분 전체를 국내 사모투자 전문 회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내용의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인 28일 남양유업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다. 이어 31일에는 22% 넘게 오르며 주당 70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코로나19와 관련 '불가리스' 제품의 효능을 과장 발표한 데에 따른 논란으로 주가가 최저점을 찍었던 4월28일(종가기준 31만9500원) 대비 119.0% 높은 수준이다. 논란 당시보다 두 배 이상 주가가 오른 셈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남양유업 매각 소식 직후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개인은 168억원 어치 주식을 매수한 반면, 외국인은 211억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기관은 19억원 순매수하는데 그쳤다.
남양유업 오너일가는 2013년 대리점 갑질 논란에 이어 외손녀 황하나씨의 거듭된 마약투약 혐의 등으로 연일 구설에 올랐음에도 경영권을 유지했다. 당시 홍 전 회장은 친인척으로서 외조카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통감했지만 남양유업 경영인으로서는 황 씨와의 선긋기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코로나19 불가리스 효능 과장 발표 논란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오너일가가 보유주식 전부를 한앤컴퍼니에 넘겼다. 이미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르면서 소비자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을 상대로 분쟁을 벌이는 등 오너리스크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소액주주들도 있다. 지난 3월 사조산업 소액주주 연대는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와 법률 자문계약을 맺고 사조산업 경영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사조산업이 2월 캐슬렉스CC 서울과 캐슬렉스CC 제주 합병안을 공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합병으로 인해 오너가 소유인 캐슬렉스 제주의 손실을 사조산업으로 전가한다는 이유였다. 소액주주 연대가 감사위원 선임을 준비 중이라고 압박하자 사조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이 합병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오너리스크로 상폐 위기까지…대책 없나
이처럼 오너리스크는 기업의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 됐다. 주가하락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상장 이후에도 폐지사유가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페리카나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경영 정상화 발판을 마련한 MP그룹도 과거 대표적인 오너리스크 기업으로 불렸다. '미스터피자'로 프랜차이즈 창업 성공 신화를 썼던 MP그룹은 정우현 전 회장의 '갑질 논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이 경우 남양유업처럼 오너일가의 잦은 일탈이 아닌 정 전 회장 개인의 일탈로 회사 전체가 흔들렸다.
MP그룹은 2000년대 후반까지는 피자업계 1위로 올라서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16년 경비원 폭행 사건과 2017년 가맹점 대상 갑질이 논란이 되면서 불매 운동을 맞았다. 게다가 정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다.
당연히 주가는 요동을 쳤다. 갑질 등 오너리스크가 불거지기 전 2015년말 3320원이던 주가는 2017년 7월 상장폐지 사유 발생에 따라 1315원에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이후 거래소가 2018년 MP그룹의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정 전 회장 등 오너일가는 뒤늦게 경영권을 포기해 구사일생으로 상폐 위기에서 벗어났다. 다만 그 사이 본업이 흔들리면서 현재 주가는 9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너 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은 아직 우리 기업들에겐 낯선 이야기다. 대규모 투자나 책임경영 등에서는 오너 경영 체제가 유리한 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오너리스크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총수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일반 투자자들이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 비해,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무거운 페널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