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0일 사장단 인사를 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그 시기를 1주일 미뤘다. 사장단 인사 폭을 키우기 위해서다. 경제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기존 계획했던 규모의 인사로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인사를 연기하면서 교체 폭을 확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기아 ‘업그레이드 주역’ 퇴진


알버트 비어만
알버트 비어만
12일 경제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분야에서 대대적인 쇄신을 계획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두 사람은 현대차와 기아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 성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이 해외 시장에서 주행 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비어만 사장이 합류한 이후의 일이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도 비어만 사장의 작품이다.

후임 연구개발본부장 자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제기된다. 박정국 사장이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그는 지난달 신설된 수소연료전지담당을 맡기로 결정된 상태다. 외부 인사 영입설도 나온다.

피터 슈라이어
피터 슈라이어
슈라이어 사장은 2006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이후 현대차와 기아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 기아라는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알린 ‘호랑이코’ 라디에이터그릴 디자인이 그의 대표작이다. 슈라이어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담당(전무) 등의 역할이 더 커질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비어만 사장과 슈라이어 사장은 현대차와 기아를 글로벌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인 만큼 여전히 그룹 내 입지가 탄탄하다”며 “다만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깜짝 외부 인재 영입 이뤄질까


현대트랜시스 등 일부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도 교체될 전망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주력 계열사 CEO는 유임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의 CEO는 모두 지난해 말 교체됐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주요 계열사 CEO가 대폭 바뀌었기 때문에 올해 또 판을 흔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장단 일부가 부회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한동안 부회장 직급의 고위 임원을 줄여왔지만, 지난해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부회장 수를 늘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내외 다른 기업에서 인재를 영입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경쟁사인 포스코 고위 임원을 영입해 현대제철 사장(안동일)에 내정한 적이 있다. 정보기술(IT) 인재가 영입 1순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에서는 대폭 물갈이가 예상된다. 젊고 능력 있는 인재를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계열사에서는 임원진 중 30%가량이 퇴진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조직개편도 뒤따라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차는 국내외 사업 권역을 통폐합한다. 현재 9개로 나눠진 권역을 5개로 합치는 방식이다. 이른바 ‘대권역제’를 도입해 지금까지 판매가 부진했던 지역에서 도약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국내사업본부가 아시아태평양 권역을 맡고, 북미와 중남미 권역이 합쳐지는 게 대표적이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