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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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반도체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거라던 2차전지를 만드는 기업들이 최근 증시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한 때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2위 자리도 넘볼 기세였던 LG화학은 8위로 밀려나 ‘배터리 대장주’ 자리마저 삼성SDI에 내주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삼성SDI 주주들이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현재 주가가 고점 대비 20%가량 하락한 수준이거든요.

시장에서 거론되는 하락의 이유는 ▲일부 회사들의 배터리 부문 물적분할 및 상장 ▲공급망 차질 이슈로 인한 매출 차질 ▲2차전지 시장의 경쟁 심화 조짐 ▲미국 전기차 업체들의 주가 급락 등이 꼽힙니다. 이유가 여러가지라는 건 그만큼 무엇 하나 딱 떨어지는 원인을 찾기도 어렵다는 거겠죠.

최근에는 이차전지 기업들 주식의 성격이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과거에는 성장주 성격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 올렸지만, 이제는 시장이 그 동안의 기대가 합리적이었는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고점 대비 낙폭…LG화학 40%, 삼성SDI 20%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4일 LG화학은 2.05% 하락한 62만1000원에, 삼성SDI는 1.24% 오른 65만1000원에, SK이노베이션은 3.23% 상승한 22만35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테슬라가 이틀째 급등세를 보인 덕에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올랐지만, LG화학은 나홀로 하락하면서 시가총액 규모 면에서 삼성SDI에 추월당했습니다.

삼성SDI의 지난 24일 종가는 올해 8월13일의 고점 81만7000원과 비교하면 20.31% 낮은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LG화학의 낙폭이 30%가량으로 더 컸을 뿐입니다. LG화학의 현재 주가를 올해 2월5일의 102만8000원과 비교하면 낙폭이 39.59%로 커집니다.

낙폭이 10% 미만인 SK이노베이션은 올 여름부터 시작돼 가을까지 이어진 국제유가 랠리가 주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LG화학이나 삼성SDI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한 달여를 놓고 보면 미국 전기차기업들의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한국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도 흔들었습니다. 가장 큰 원흉은 글로벌 1위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였습니다. 세금을 내야 한다며 보유 주식을 10%를 매각하겠다고 선언한 뒤 실제로 주식을 팔면서 지난달 초 1200달러를 넘어섰던 테슬라 주가가 900달러선을 내주기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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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머스크가 지난 22일(현지시간) 주식을 더 이상 팔지 않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테슬라 주가도 1000달러선을 회복했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주가도 23~24일(한국시간)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LG화학도 지난 23일에는 회복세를 보였지만, 24일에는 하락하며 장중 62만1000원까지 빠지며 52주 신저가를 다시 썼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주에 23일을 제외하고 매일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결정된 물적분할 이은 상장 때문?

왜 LG화학만 급격히 빠지는 걸까요. 이차전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앞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다음달 11~12일 기관 대상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가를 확정한 뒤 같은달 18~19일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을 진행합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 규모 3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주를 받기 위해 투자자들이 LG화학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희망 공모가밴드는 25만7000~30만원으로 당초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이라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되면 전기차·2차전지 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서 LG화학의 비중이 축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 1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둔 LG에너지솔루션 본사 로비.(사진=한경DB)
내년 1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둔 LG에너지솔루션 본사 로비.(사진=한경DB)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회사가 탄생한 것 자체에 반감을 갖는 투자자도 많습니다. 2차전지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LG화학 주식을 샀는데, 투자 목적이었던 2차전지 사업을 쏙 빼내 다시 상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간접적으로만 LG에너지솔루션에 투자하는 꼴이 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과 기업공개(IPO)가 LG화학 주가를 끌어 내린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 분할은 작년 11월 결정됐습니다. 이미 알려진 내용인데 1년 후에 주가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겁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과 상장계획이 확정된 뒤인 올해 2월에 LG화학 주가는 100만원을 넘어 고점을 찍습니다.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 시도…2차전지 기업 도움 없인 어려워

올해 2월의 고점 바로 이후에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를 찍어 누른 건 2차전지 시장의 경쟁 격화 조짐이었습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 파는 폭스바겐그룹이 지난 3월 개최한 ‘파워데이’ 행사가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폭스바겐은 당시 행사에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셀(4대 핵심 부품이 들어간 2차전지의 기본단위)을 각형으로 통합하고, 유럽에 6개 기가팩토리를 구축해 배터리 내재화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우선 가장 큰 자동차 회사가 2차전지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나선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2차전지 공장(기가팩토리) 구축을 위한 파트너로 스웨덴의 노스볼트라는 신생 2차전지 회사를 내세우기도 했죠.

각형 통합 셀 도입은 한국 배터리 회사를 배재하려는 행보 아니냐는 우려을 낳았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당시 SK이노베이션)은 물렁물렁한 형태의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SDI가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긴 하지만, 폭스바겐이 보급형 전기차의 배터리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도 내세우면서 삼성SDI보다는 중국 2차전지 업계에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메리 바라 GM 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LG화학
메리 바라 GM 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LG화학
하지만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도 기존 2차전지 업체를 완전히 배재하고는 현실화가 어렵습니다. 폭스바겐보다 한발 앞서 전기차를 출시한 미국 GM이 배터리 물량 확보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공장을 세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또 다른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도 SK이노베이션과의 합작법인을 통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중국,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 본격화

2차전지 산업 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 2차전지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 기세가 무섭습니다. 이전까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경쟁력을 키운 중국 2차전지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겁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CATL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 12.5%를 기록해 3위를 차지했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점유율을 6.3%포인트 높여 삼성SDI와 SK온의 위로 올라섰죠. 점유율 1위는 36.2%를 차지한 LG에너지솔루션입니다.
중국 CATL의 LFP 배터리.  사진=한경DB
중국 CATL의 LFP 배터리. 사진=한경DB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작년 1~10월에 점유율 1위였던 파나소닉이 2위로 밀려난 건 테슬라에 공급되는 배터리 물량을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배터리기업들에 빼앗겼기 때문인데, 최근 테슬라가 발주한 내년 배터리 물량 55기가와트시(GWh)를 중국 CATL과 BYD가 싹쓸이 했습니다.

중국 배터리기업들은 리튬인산철(LFP) 양극재가 들어간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합니다. 한 때 개발된지 오래된 LFP 배터리는 무게가 무겁고 에너지밀도가 낮기에 한국 기업들이 주력으로 만드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열등한 기술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더 검증된 LFP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더해 LFP 관련 특허도 조만간 만료되면서 이를 앞세운 중국 2차전지 기업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신약 성공 직후 주가 빠지는 바이오기업과 비슷한 모습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모델이 속속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2차전지 기업들도 ‘꿈’이 아닌 ‘실적’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가 몇백만대 보급될 것이라는 식의 전망이 통하지 않게 된 거죠.

신약 개발에 공식적으로 성공하고 난 뒤 오히려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바이오기업의 주가와 비슷합니다. 보통 신약 개발에 나선 바이오기업들의 주가는 신약 개발 성공이 공식화되기 전에 가장 높습니다. 기대감에 매수세가 몰리면서죠.

그러나 긍정적인 임상 3상의 결과를 발표하거나 의약품당국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아 내면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 허가된 신약을 팔아서 얼마나 남길 수 있느냐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경쟁약이 있는 신약이라면, 경쟁을 뚫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죠. 실제 한 국내 제약사는 항암신약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아내기까지 했지만, 결국 다국적제약사의 경쟁약에 밀려 후속 개발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2차전지 기업들의 올해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에 차질이 생긴 탓입니다. 이에 더해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분담금을 물게 되면서 모회사인 LG화학의 연결 기준 실적을 갉아먹기까지 했죠. 작년 말부터 올해 여름까지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증권가에서는 전기차 산업이 아직 개화 단계로 여전히 성장 여력이 많이 남아 있다는 판단에 2차전지 기업들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2차전지 기업들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